[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폭포 물 쏟아지자 골짜기는 모두를 귀머거리 만들었네”
[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폭포 물 쏟아지자 골짜기는 모두를 귀머거리 만들었네”
  • 김종현
  • 승인 2023.10.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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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백가지 다하겠다고 행동하지 말라(百弗行)”
용솟음치는 미래 꿈 시로 표현
팔공산 자락 암자 하나 웅장하네
단청 누각 우뚝하게 창공 찌르네
세상에 묻은 온갖 때 씻어버리려
이렇게 세상 온갖 일 하겠다 다짐
금호강폭포
농연벽동천 폭포, 영남유림의 풍유선경(風流仙境)이다. 그림 이대영

백불암(百弗菴) 최흥원(崔興源) 선생이 사셨던 백불고택(百弗古宅)이 있다. 이곳은 지난 영조41(1765, 乙酉)년에 중용(中庸)의 한 구절 “온갖 것 다 알고자 하지도 말고, 온갖 일 다 하겠다고 하지도 말라(百弗知, 百弗能)”라는 송나라 주자(朱子, 1130~1200)의 말씀 한 구절에서 백불암(百弗庵)이라는 편액을 만들어 걸었고, 자신의 호를 백불암(百弗庵)이라고도 했다.

백불(百弗)이란 오늘날 젊은이들은 100$(달러)로 알겠지만 “백 가지 다하겠다고 행동하지 말라(百弗行)”라는 뜻이다. 필자도 이를 알고부터 “하나라도 똑 부러지게 잘하라”는 각오를 하게 됐다. 백불암 선생도 16세 10월 팔공산 산자락 보재사(寶齋寺)에서 사서삼경 가운데 맹자(孟子) 공부를 시작하면서 용솟음치는 미래 꿈을 한 폭 그림처럼 담아 시로 ‘팔공산 자락 아래 암자 하나 웅장하네. 단청 누각 우뚝하게 창공을 찌르네. 낙엽이 땅에 떨어지니 산봉우리도 여위어졌도다. 폭포 물 쏟아지자 골짜기는 모두를 귀머거리 만들었네. 세상 물정 몰라서인지라, 새로운 마음다짐을 하노라. 세상에 묻은 온갖 때나 씻어버리고자 하노라. 가장 이렇게도 신령스러운 곳에서 끝없는 뜻을. 몇 마디 학 울음이 하늘 끝에 닿겠는데(最是靈區無限意, 數聲鳴鶴九天通).” 이렇게도 세상 온갖 일을 다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의 나이 35세 되는 영조15(1739, 己未)년 3월, 아무것도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는 심정을 ‘매화꽃을 노래함(梅花詩)’에 담아 읊었는데 “해마다 해 묻은 매화 가지마다 차가운 빛 매화가 피어났네. 눈에 생생하게 만물의 이치가 이다지도 기이한가. 어찌 단지 이 사람은 이런 섭리를 못 하는가? 외톨이 이슬방울처럼 마음 상해 눈물이 나는구먼(斯人何獨無斯理, 孤露傷心涕自垂).” 40세에 영조 20(1744, 甲子)년 3월 형제들과 떨어져 살면서 소감을 ‘붉은 박태기의 노래(紫荊詩)’에 담았다. “지난밤에 바람이 불지 않았는데도, 붉은 박태기 꽃부리가 응당 아름다우리. 무슨 일인지 뜰 앞에 있는 나무는. 시들어 꽃이 피려고도 하지 않는가? 스스로 부끄럽게 내 마음씨 야박해서 그런건가? 북돋아 기름에 온갖 정성을 다하지 못했음이구나(自愧心力薄, 培養未以誠).”고 자신의 박덕함을 술회(述懷)해 보았다.

45세 영조 25년(1749, 己巳)년 8월에 ‘귀 먼 연못의 노래(聾淵詩)’를 지었으니 “이 몸의 세상살이는 대자연 속 초당에서 살아간다네. 마음속엔 다만 옛 거문고와 서책이 있을 뿐이라네. 언젠가는 이 풍진(風塵) 세상을 벗어나겠는가? 팔공산 대자연 속에 뛰어들어 물과 바위틈에 살아가겠는가.”로 소풍 온 아이들처럼 소요유(逍遙遊)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옻골 비경, 농연구곡(聾淵九曲)을 더듬어

농연(聾淵), 농연암(聾淵岩), 농연정(聾淵亭, 臺巖先生講學堂), 농연서당(聾淵書堂, 聾淵亭址,百弗庵 講學堂)은 최씨 문중의 ‘하늘이 감춘 비경’이 아니라 영남유림의 풍유선경(風流仙境)이었다.

농연비경(聾淵秘境)을 모두 읊었던 농연구곡(壟淵九曲)은 대암(臺巖) 선생의 9세손, 백불암(百弗庵)의 3세손(曾孫) 지헌(止軒) 최효술(崔孝述 혹은 崔都正, 1786~1870)에 의해서 창작되었다.

‘지헌선생문집(止軒先生文集)’에 게재된 ‘농연구곡(聾淵九曲)’을 제목만이라도 들춰보면 : i) 가루 바위(粉巖, 生龜巖), ii) 푸른 연못(俯碧淵), iii) 백길 물 쏟아짐(百尺懸流), iv) 귀먹은 것처럼 고요한 연못(聾淵), v) 거랑 섶 오동과 버들 숲(溪梧柳), vi) 맑은 물 금호(晴川琴湖), vii) 물에 둘러싸인 성벽(繞水城), viii) 물안개에 싸인 옻 골 동네(碧洞天), ix) 용이 승천하는 문(龍門)을 노래했다.

달구벌 선인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의 정서 속에서 고요하게 흐르는 “농연구곡(聾淵九曲)”을 살펴보면, “첫 번째 노래는, 동네 들머리를 지키고 있는 하얀 쌀가루 바위(粉巖, 今日 生龜巖)이라. 바람과 물안개가 하늘과 땅을 온통 다 차지했네. 헤매면서 찾았더니 작은 오솔길이 이곳 언덕에 시작되었다. 맑은 물덤벙 섶 자리 잡고 앉아 술독 하나를 비웠다네(一曲粉巖立洞門, 風烟已占別乾坤. 尋眞小路玆邱始, 對坐澄潭擧一樽).”, “두 번째 노래는, 작은 언덕 부벽연(俯碧淵)이라네. 눈앞에 펼쳐진 풍광은 넓고도 끝이 없다데. 가장 즐거운 바람과 봄날임에도 날이 저물어가니, (용왕의) 어린 왕자관을 쓴 물결이 예닐곱 번이나 회오리친다.”

그리고 “세 번째 노래는, 쏟아져 내리는 물이 백 척 깊이는 깊다네. 맑은 하늘에 우레치고 비가 쏟아내리니 그윽하게도 어둠이 짙어 오네. 개울에 다가가니 비취색 돌들은 올라갈 곳을 내어주는데. 삼라만상을 모두 관리 명령할 명분과 오지랖이랑 넓히게 되겠구만(三曲懸流百尺深, 晴空雷雨滌幽陰. 臨溪翠石成臺處, 管領名區萬象森).”

이어 “네 번째 노래는, 귀먹은 것처럼 고요한 연못(聾淵, 不聽無聲得聾淵)이란 잔잔하고도 깊다네. 온 산에 소나무와 계수나무는 백년단심(百年丹心)의 나무라지. 남창을 향해 고요히 앉아 푸른 냇물에 빠진 달을 대하니, 머릿속에는 과거를 향한 묘한 곳으로 찾아드네”, “다섯 번째의 노래는 개울을 따라 늘어선 오동나무와 버드나무들이, 사시사철 즐거움 주고 푸름을 줌은 무궁무진이라네. 조화옹(造化翁)은 앉아 있지 못하고 온종일 분주하다네. 갈매기와 왜가리는 저녁바람에 서로들 희롱하면서 둥지를 날아드네”, “여섯 번째 노래는, 맑은 강물이 스스로 탄금성을 낸다는 금호강, 이 같은 사연에는 깊이 있게 지음지인(知音知人)하는 사람이 적다네. 구름도 개고 안개도 맑아지더니 방금 참모습을 드러내었다네. 뜻을 얻으라는 걸 잊지 말게나 지금 앉아 있는 그 푸른 그늘 자리가 바로 꽃자리(花席)라는 사실을!(六曲晴川自作琴, 祇緣深僻少知音. 雲開霧豁方眞面, 得意忘言坐綠陰).”
 

 
마지막으로 이어가면 “일곱 번째 노래는, 푸른 숲과 바위 그리고 물로 둘러싸인 왕성(王城) 같다네. 정자이고 정자 밖이고 맑고 깨끗함이야 이 보다 더하라? 일과 싸움을 한다고 깊은 뜻이 생기는지. 인생의 참살이는 공들여 쌓아서야 성공할 수 있는지 누구 알겠소(七曲蒼巖繞水城, 亭亭物外十分淸. 誰知兢業臨深意, 進得工夫這裏成)?”, “여덟 번째 노래는, 구름과 연기로 하늘의 구멍을 틀어막고, 뽕나무와 삼밭에 비 내리게 하여 풍년을 점지하여주소서. 맑고 맑은 아침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섰다가. 뭇 산들이 삐죽삐죽하게도 나란히 천태만상의 조화로세.” 그리고 “아홉 번째 노래는, 하늘 문이 열리고 용이 승천하려는 기세로다. 봄바람에 화평한 기운에 아지랑이 피워 감돌고 있네. 흐르는 물 머리에는 물이 살아 움직이고, 청량도 거와 같은지라. 더욱 깊은 조화를 보니 본질을 되찾음을 방금 알겠네(九曲龍門勢欲開, 春風和氣靄然來. 源頭活水淸如許, 深造方知本地恢).”

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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