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선평역에서 하룻밤
[좋은 시를 찾아서] 선평역에서 하룻밤
  • 승인 2023.11.1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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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순 시인

낯선 사내 같은 밤,

저 어둑한 밤과 함께

바람 센 구릉에 드네

붉은병꽃나무 꽃술 속에도

밤이 들어가 누우면

검디검은 그의 팔 슬쩍 당겨 베고

평생의 전설 하나 빚어 보겠네

나뭇가지에 열매처럼 달린 별이

금계국 노란 얼굴과 눈 맞출 때

바람의 가는 허리 마구 흔들리는 걸 보았네

곁에 쌓아놓은 밤 다 쓰고 나면

어둑한 사내만 두고 어떻게 돌아서야 하나

젖은 풀 내음만 번져오고

스쳐 지나가는 선평역

바람 사이로 기차는 들어오고

어떻게 돌아섰다 해도 다시 돌아서야 할 곳

◇박천순= 2011년 ‘열린시학’ 등단. 열린시학상, 시산문학상, 정읍사문학상 대상 등. 시집 ‘달의 해변을 펼치다’, ‘나무에 손바닥을 대본다’.

<해설> 이 시를 읽으니 정선아라리가 흘러나오는 선평역에 가보고 싶다. 굵고 검디검은 팔은 아니어서 망설여지지만, 왠지 낯선 사내가 되어 붉은병꽃나무 꽃술 속 같은 밤이 들어가 눕고 싶다. 아마도 선평역은 바람이 드센 곳인가 싶은데, 실은 별이 금계국과 눈을 맞출 때 바람의 허리가 흔들린 것이지, 바람이 무엇을 흔든 건 아니다. 선평역은 그러니까 어떻게 돌아섰다 해도 다시 돌아서야 할 곳이라니, 두고 돌아서기엔 온통 풀냄새가 나는 어둑한 사내를 닮은 역인 것이다. 고백하자면 대구에서 가장 바람이 드센 곳이 가창의 냉천 골짜기 아니던가. 그곳에서 몇 년 살아보니, 몸에도 마음에도 헛바람이 들더라는 사실, 나이가 들수록 바람은 피해서 안온한 마을을 찾아 살아야 할 것이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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