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자작나무를 바라보며...곱게 단장한 모시적삼 입고 하얗게 빛나는 고고한 자태, 선비를 닮아 아름답구나
[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자작나무를 바라보며...곱게 단장한 모시적삼 입고 하얗게 빛나는 고고한 자태, 선비를 닮아 아름답구나
  • 채영택
  • 승인 2023.11.3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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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의 땅에서 태어난 숙명
추운 곳서 잘 견디도록 진화
껍질 속 성분이 불 잘 붙어
원주민들에게 고마운 존재
방수 기능 있어 배 제작에 쓰거나
잘 썩지 않아 종이 대용 활용
사포닌 성분 많은 나무 수액
사진1
사계절 하얀 껍질로 둘러싸인 피부가 신비로운 자작나무.

또 다시 눈을 그리워하는 계절이 어느새 우리 곁에 와 있다. 사실 말하자면 눈이 잘 오지 않는 지역의 특성상 눈보다는 겨울이면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가 더 반갑고도 그리울 때가 많다. 불에 태우면 꽝꽝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인 꽝꽝나무처럼 나무 껍질을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해서 이름을 붙였다는 자작나무, 북유럽과 러시아 동토의 세상에 펼쳐진 설원의 하얀 광야에도 투명하게 빛나는 고고한 모습이 마치 왕자의 품격 같다.

많은 시인들이 자작나무의 아름답고 맑은 품성을 노래했다. 시인 도종환은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자라온 고향의 풍경에서 바라본 자작나무를 닮아 맑으나 창백했다고 고백한다. 세상의 나무들이 모두 두껍고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을 때 자작나무는 오로지 곱게 단장한 하얀 모시적삼 얇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 고고한 선비의 정신을 나무 결 속 깊이 감추고 있는 것 같다.

나무의 성숙하고 겸손한 모습을 노래한 시인 문정희도 「나무는 나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라고 읊었다. 나이테는 속에 새겨지기 때문에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없지만 커갈수록 점점 겸손하고 의젓해지는 모습에서 인간이 아닌 나무에서 나이듦의 의미를 배우고자 했다.

북극 동토의 땅에서 더욱 빛나는 자작나무는 껍질에 테르펜(terpene)인 베툴린이라는 유지 성분이 있어 불을 잘 얻지 못하는 그곳 설원의 특성상 척박한 환경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살아온 원주민들에게 자신의 몸 일부를 희생해 쉽게 불을 얻을 수 있도록 비정한 생물과의 공생의 삶을 허락해온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작나무는 겨울이면 더욱 환하게 빛난다. 또한 봄날에 시작하여 가을 낙엽이 지기 전 떨어지는 물방울 모양과 같은 잎은 바람에 찰랑거리며 어두운 숲속에서도 자신의 곧고 우뚝 솟은 빛나는 존재를 드러내며 새벽을 맞이하기도 한다. 겨울밤 희미한 별빛만 깜빡거리는 숲속에서 등불을 밝히는 자작나무,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비감과 경외감을 갖게 해서 오랜 세월 자신도 모르게 자작나무 숲에 매료되어 찾아가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닥터지바고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하얀 눈이 덮힌 설원의 풍경 속에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작나무 숲이 여러 번 등장한다. 사랑하는 지바고의 연인 라라와의 마지막 사랑을 나누고 떠나는 얼음성 같은 집 창가에 눈부시게 서 있는 자작나무를 뚫고 밤이면 음산하게 들리는 늑대 울음 소리가 헤어짐의 슬픈 예언을 말하고 차디찬 동토의 땅에 뿌리 내리고 있는 자작나무의 숙명처럼 인간의 숙명도 자신이 뿌리 내린 그곳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감동적인 영화다.

많은 팬들은 이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또 서양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을 얇게 벗겨 연인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면 이루어진다는 속설도 전해온다. 종이에 써도 될 것을 애써 자작나무 껍질을 조심스럽게 벗겨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던 젊은 청춘 남녀들의 애틋하면서도 순수했던 시대적 사랑을 이해할 듯 싶다. 노란 은행잎이나 너른 갈잎에 연서를 써서 보내던 지난날 입안 가득 쌉싸름해지는 우리의 시대를 추억해 본다면 말이다.

컴퓨터 자판으로 두들겨 글을 쓰는 일과 펜이나 붓으로 글을 쓰는 것은 다르다. 자판으로 두들기면서 쓰는 글은 소리로 인해 우리의 영혼과 정서의 흐름을 조각조각 깨트려버린다. 그런데 펜이나 붓은 소리가 거의 없어 우리의 상상이나 정신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한겨울 내가 자작나무를 또 다시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이유중 하나다. 옥에도 티가 있듯 자작나무는 봄날 꽃가루로 인해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알레르기 유발로 유명한 나무는 소나무나 참나무 그리고 자작나무 등인데 자작나무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연원은 식물분류학상 참나무목으로 후손에게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준 결과라 볼 수 있다.

요즘 결혼식장에서 쓰이는 용어 중에서 신랑과 신부의 어머니가 함께 촛불을 켜는 ‘화촉을 밝힌다’라는 의식이 있는데 樺燭(화촉) 즉 ‘화’는 자작나무를 뜻하는 말이다. 껍질에 기름 성분이 많아 불이 잘 붙는다는 것을 옛 조상들은 알았던 것이다. ‘촉’ 역시 등불을 밝히다라는 의미인데 지금은 화촉의 화가 나무 목(木)변이 사라진 다른 의미의 한자인 華(화), 즉 꽃이 피다, 혹은 빛나다라는 의미로 현대식 결혼 풍습을 반영한 한자로 바뀌게 됐다. 그런데 자작나무를 뜻하는 樺가 ‘인문학으로 본 나무 이야기’의 저자 나영학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벚나무를 뜻한다고 해석하는데 아무튼 기름 성분이 많은 관계로 불에 잘 타 주위를 밝고 환하게 비춘다는 의미에서 일시에 피는 벚꽃의 속성과 닮았다. 그리고 벚나무의 앵(櫻)자는 앵두나무 혹은 벚나무와 같이 쓰는 한자다. 나무 곁에 두 눈을 크게 뜨고 서 있는 아름다운 여자를 상징하는 나무가 바로 벚나무 ‘앵’이다. 즉 이 나무의 속성인 아름답고 환하게 일시에 꽃이 무리지어 피는 개화 특성상 불이 잘 붙는 자작나무의 속성을 닮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생리적으로 바라본 자작나무의 특성은 추운 곳에서 잘 견디도록 진화해 왔는데 추운 겨울에는 나무의 세포 내에 결빙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을부터 서서히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물을 최대한 줄이고 낙엽이 지기 전 태양 에너지를 최대한 이용해 당분 즉 탄수화물을 많이 만들어 자신의 몸에 저장해야 한다. 그래야만 빙점이 최대한 내려가서 결빙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결빙이 일어난다는 뜻은 얼음 결정에 의해 세포가 파괴된다는 의미로 곧 세포가 죽는다는 뜻이다. 많은 탄수화물이 만들어져 몸 안의 수분과 섞이면 수액의 어는점이 최대한 내려가 동결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동화작용으로 만들어진 탄수화물의 일부가 지질로도 변해 더 추운 온도에서도 견딜수 있도록 환경에 철저히 적응하고 진화해온 자연 선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더욱 특이한 것은 자작나무 껍질은 매우 얇아 벗겨도 벗겨도 또 다른 껍질이 그 속에 있다. 이러한 여러 겹의 수피의 구조가 단순한 한 겹의 두꺼운 수피로 있는 나무보다 훨씬 더 추위를 잘 견딜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자작나무 껍질은 다양한 용도로 쓰였는데 기름 성분이 많다는 것은 껍질이 방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을 물이 닫는 배의 바닥 소재로 쓰기도 했다. 이렇듯 방수는 물론 벌레와 곰팡이에도 강했으니 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고 알려진 자작나무 껍질은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천마총의 천마도 중에서 말 안장 부분에 그려진 그림이 종이 대용으로 이 자작나무 껍질을 이용해 그렸고 습기가 많은 땅속 고분에 지금까지도 오랜 세월 잘 보관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자작나무는 봄에 일찍 뿌리에서 물을 흡수하기 때문에 사포닌 성분이 많은 수액을 채취해서 마시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이러한 수액이 진해 거담 항균 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서울대학교의 한 연구에서는 수액에 대장암 억제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도 밝혀냈다. 생활면에서는 수액이 들어간 된장 제조나 수액으로 만든 막걸리 등 자작나무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임새가 풍부한 나무임을 알 수 있다.

굳이 등불을 밝히지 않아도 어둠을 밝혀주는 나무, 동토의 땅이 태생인 자작나무가 햇빛을 반사하고도 그 몸 속에는 어찌 뜨거운 불꽃이 타고 있는지,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몸매에 검은 눈동자는 또 어찌 그리도 크고 맑은지, 겨울 자작나무 숲 속으로 들어가면 한 나무 한 나무가 그 커다란 맑은 눈으로 우리를 반겨줄 것 같다.

올 한해도 오염된 오탁 악세의 더러운 먼자를 털어내줄 순백의 자연 속 자작나무 숲으로 가볼 생각이다. 마른 잎 떨어지는 초겨울, 땅 속 잔뿌리는 물올림을 멈추고 다가오는 봄을 위해 겨우내 움츠리고 있을 가지의 눈에서는 불꽃으로 피어 올라 나무는 또 다시 비상을 준비할 것이다. 땅속 깊이 발가락을 오므리고 고단한 겨울의 시작점에서 꿋꿋이 견뎌 저마다 아름다운 세상의 꿈들로 영글어 가기를 기대해 본다.
 

 

임종택<생태환경작가·다숲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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