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 작가 개인전…호텔 수성 로비 갤러리
이경희 작가 개인전…호텔 수성 로비 갤러리
  • 황인옥
  • 승인 2023.12.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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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백팔번뇌·오욕칠정 꽃잎으로 형상화
꽃 소재는 자연예찬·확장성 때문
반짝임은 빛나고 싶은 인간 본성
왕관 그림자는 이면의 아픔 표현
교사 조기 퇴직 후 그림 갈증 해소
작가사진1
이경희 작가
이경희작-Resized-Flowers
이경희 작 ‘Resized-Flowers in the Space’

활짝 핀 꽃 한 송이에서 아름다운 기운이 넘쳐난다. 여러 송이가 어우러진 꽃무리 앞에선 눈을 떼지 못한다. 황홀하리만치 아름답고 탐스럽다. 꽃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데, 꽃의 일부에 금가루까지 입혔다. 반짝임은 다이아몬드나 왕관을 그린 화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꽃처럼,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세계를 추구하는 이경희 작가의 예술세계다.

이경희 개인전 ‘BLOOM and FLEX’전이 호텔 수성 로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꽃과 왕관, 다이아몬드 등 빛나는 소재들을 자신만의 조형세계로 구현한 작품 30여점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첫 작업은 활짝 핀 벚꽃 나무 아래 걸려있는 청사초롱이었다. 청사초롱이라는 소재와 오방색 계열로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했다. 이 작품에선 ‘새로운 출발을 알리고 특별한 날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아냈다. 벚꽃나무와 청사초롱에서 꽃으로 소재의 변화를 꾀한 것은 2008년 즈음이다. 우연히 꽃을 자세히 바라보게 됐는데, 보면 볼수록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꽃을 소재로 삼았다.

흔히 꽃을 보면 ‘아름답다’는 감상으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그는 지극하게 바라보게 되었고, 꽃망울, 만개한 꽃, 시든 꽃 등 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의 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파란만장한 인간의 삶과 꽃의 여정이 다르지 않았다. “꽃도 인간처럼 생로병사의 굴레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꽃을 소재로 채택한 직접적인 이유는 자연예찬과 소재의 확장성이라는 두 가지에 맞춰졌다. 그는 꽃에서 자연의 위대함과 숭고함을 새삼 발견하고 자연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았다. 자연예찬이라는 가치적인 측면 외에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했다. 당시 그는 일상에서 무시로 만나는 소재로 자연만한 것도 없을뿐더러, 자연은 소재의 무한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는 판단이 섰다.

“자연 속에는 수많은 대상들이 존재하고, 그 모든 것은 모두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으니 자연만큼 좋은 소재는 없죠.”

화면 속 꽃들은 모두 활짝 핀 상태다. 빛을 받아 만개한 꽃에선 반짝임도 묻어난다. 반짝임에 대한 확신은 소재의 확장을 이끌었다. 그는 왕관이나 다이아몬드를 반짝임의 상징으로 확장해갔다. 그가 “반짝임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주목받으며 빛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꽃이나 보석을 통해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일종의 경외심, 공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다시 찬란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창작이 신비하고 오묘하며 어떤 때엔 알 수 없는 비의(悲意)를 지니기도 합니다.”

화가로 살았지만 그는 그림에 있어 갈증상태에 놓여졌다. 화가 외에도 교사와 주부 역할까지 병행해야 했다. 1인 3역에서 늘 그림이 밀리는 느낌이었다. 정작 좋아하는 그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그는 허전함을 느껴야 했다. 자신이 빠져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도 다시 빛나며 행복하고 싶다”라는 갈망이 내면에 깔리던 시절이었다.

결국 그는 조기 퇴직을 했고, 아이들은 자라 양육의 짐을 벗게 되면서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빛나는 왕관이나 다이아몬드, 활짝 핀 꽃은 언젠가 찬란한 삶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나에 대한 은유”라고 했다.

사실 그림에 대한 갈증은 일찍부터 경험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곧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교사가 됐다. 그러나 교육대학에 미술교육을 받으며 미술에 대한 꿈을 놓치지 않았고, 결국 계명대 미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 미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며 미술 공부는 원 없이 했다. 10여년 전에 조기퇴직하고 이제는 전업 작가로 살며 그림에 대한 아쉬웠던 마음을 원없이 풀어내고 있다.

꽃이나 왕관, 보석을 소재로 하지만 재해석은 필수다. 그의 감수성과 사유체계가 꽃을 형상화하는데 반영된다. 그는 꽃이나 왕관에 환희와 기쁨의 정서에 국한하지 않는다. 왕관이 놓여진 탁자 아래 비치는 왕관을 그림자처럼 표현한 작품에선 화려함 이면의 아픔까지 담아낸다. “제가 표현하는 화려함은 그 자체로 빛나지만, 그 이면에는 거기까지 가기 위해 겪어야 하는 치열한 삶의 여정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정서적인 재해석 못지않게 통념을 깨는 자유분방함도 발견된다. 통상 꽃병에 꽂힌 꽃을 정물화로 그리는 법인데, 그는 도자기 표면에 꽃을 그린다. 구성에 있어 발상의 전환이다. 꽃이라는 구상적인 소재를 추상의 대상으로 해석하는 것도 탁월함이다. 그는 겹겹이 피어나는 꽃잎을 미술의 조형요소인 색과 면으로 해석한다. 주로 붉은 계열의 색을 반짝임의 상징으로 상정하고 수많은 색면의 조합을 통해 하나의 꽃으로 형상화한다.

인간의 백팔번뇌와 오욕칠정을 겹겹이 이어지는 꽃잎으로 형상화한다. 꽃잎 하나에 눈물이, 꽃잎 하나에 환희가 배어든다. 하지만 색면이 하나의 활짝 핀 꽃으로 갈무리되면 꽃은 빛나는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흡사 진흙 속에서 영롱한 연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저 자신 화가로 살아가며 찬란하게 빛난다고 생각하듯이, 제 그림을 보는 누군가도 자신의 삶이 찬란하기를 바랍니다.” 전시는 3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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