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최수앙 개인전…윤선갤러리 17일까지
조각가 최수앙 개인전…윤선갤러리 17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12.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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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인 조각 작품에 동적인 움직임 부여”
근육·뼈 등 인체 각종 장기 조각
작가적 상상 더해 비정형 재조합
수직에 수평적 개체 연결 새 시도
고정관념 균열 내는 게 예술 역할
완벽한 예술 아닌 예술적 상태로
최수앙 작가 작
최수앙 작
Assemblage H1
최수앙 작 ‘Assemblage H1 ’

때로는 수많은 미사여구보다 몸짓 하나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폐부를 찌르는 함축의 힘인데, 함축이 현실을 뛰어넘어 초현실의 세계로 인도하기도 한다.

조각가 최수앙의 윤선 갤러리 전시작들에서 해체를 통한 함축의 흔적이 역력하다. 인체의 내부 장기나 조직들을 하나하나 해체했기 때문이다. 해체하자 상상하는 자의 해석에 따라 현실이 되기도 하고, 초현실이 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해체와 함축으로 경계는 허물어지고, 인식의 지평은 한껏 넓어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극사실적인 인체를 조각했다. 일그러지거나 고통스러운 표정의 남녀를 조각하며 사회의 다양한 병리현상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불안정하고 뒤틀린 벌거벗은 인체를 통해 개인의 내면과 외면,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표현했다. 인체를 조각한 것은 인간의 벌거벗은 몸이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서사 때문이었다. “사회학적이거나 심리학적인 맥락으로 접근했을 때 함축적인 서사를 인체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윤선 갤러리에 걸린 조각들에서 형식적인 변화가 감지된다. 인체의 외부에서 내부로 탐구의 대상이 변화했고, 형식에서 극사실로부터도 탈피했다. 살갗 깊숙이 들어가 내부 기관들을 관심권에 두고, 골격이나 장기를 하나하나 분리해 변형했다. 근육, 신경, 뼈, 각종 장기 등 내부의 모든 장기나 조직들이 조각의 대상이 된다. 각각의 장기들은 주제에 따라 작가적 상상이 더해지며 비정형적으로 재조합된다.

인체의 외부에서 내부로 대상을 확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지만 내부 장기의 형태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유도 작용했다. “신체의 기관들을 기능이나 감정으로부터 분리시켜 자율적인 상태로 인식했을 때 매우 아름답다는 발견을 했어요.” 내부 장기나 조직들의 형태적인 가변성은 또 하나의 매력 지점이었다. 신체 외부와 달리 내부 장기나 조직들은 종류가 다양하고 분절적이어서 형태적 변형이 자유로울 수 있고, 장기들을 연결할 때 자신의 상상력을 수용할 여지도 높다고 평가했다.

조각의 대상이 인체 외부에서 내부로 변화하자 작품에서 작가의 의도는 희석됐다. 감상자가 조각가의 의도를 즉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 인체 외부 조각의 경우 얼굴 표정이나 일그러진 피부에서 작가의 의도를 쉽게 인지할 수 있지만, 인체 내부 기관들의 유기적인 재구성에서는 동물의 뼈인지, 식물의 구조체인지 분간이 어렵다.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 그의 새로운 조각에서 작가의 의도는 보다 모호해진다.

이런 모호함은 작업의 지시성을 떨어트린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은 작업의 차원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장치가 된다. 작가의 의도가 조각의 표면에서 모호해지면 감상자의 해석이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는 조각가가 아닌 감상자의 직관이 살아 숨 쉬는 조각을 추구한다.

“조각은 직관의 대상입니다. 감상자의 감수성이 즉각적으로 발현되는 매체죠. 저는 그 본질에 충실한 조각을 추구했고, 인체 내부 조각을 통해 그것에 다가가려 합니다.”

인체 외부에서 내부로 조각의 대상을 변화한데는 “작가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조각을 하고 싶다”는 갈증도 작용했다. 지금까지 그가 했던 매끈한 표면의 조각들에서 작업 과정에 수없이 가해진 작가의 흔적은 사라진다. 작가의 흔적이 남는 조각은 “조각에서 작가의 흔적이 사라지는 방식이 온전한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작가가 작품에 투자한 시간과 물리적인 흔적들이 작품에 오롯이 살아남아 감상자와 소통할 수 있는 조각을 염두에 두었고, 시선을 인체의 내부로 돌리는 것으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갔다. 그것을 가능하도록 이끈 개념이 관계성이었다. 분절한 각각의 조각들을 유기적인 관계성으로 맺을 경우 개체와 개체 사이에 시간과 공간이 남게 되고, 그것은 곧 가시적으로 작가의 흔적들을 발견하는 단초가 된다. 그가 성공적인 관계성을 위해 확보한 장치는 수평이다. “일반적으로 조각은 중력의 영향을 인정하는 수직적인 관계성을 추구하지만 저는 수직에 수평을 추가했어요. 수평적으로 개체들을 연결할 때 조각가인 저의 흔적들이 남게 되죠.”

변화의 분수령이 된 것은 점토로 완성된 인체 조각의 부분을 충동적인 손짓으로 문지른 경험이었다. 정교하게 마감된 작품에 거칠게 문지른 작가의 손자국이 남게 됐고, 그는 그 모습에서 작가 본인이 작업한 과정의 시간들을 확인했다. 조각에 시간성을 확보한 것은 물론이고, 조각의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다양한 층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이런 새로운 방법으로 제작한 시리즈가 ‘Under the skin’(2017~2019)이다. 이 작업의 일부는 봉산문화회관에서 열린 개인전 ‘몸을 벗은 사물들’(2019)에서 소개됐다.

‘Under the skin’ 연작은 인체 내부 조각으로 변화하기 전 과도기적인 작업이다. 이 때만 해도 그에게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있었고, 설상가상 양 팔목이 고장이 났다. 너무 무리한 탓이었다. 결국 수술을 했고, 수술 이후 불편한 손목 때문에 작업은 원활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습관적으로 해 왔던 조각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답답하고 불편했지만 그것이 조각에서 발상의 전환을 하는 계기가 됐다. 손목 부상이 사회적인 갈등 현상처럼 인식했고, 부정적으로만 바라봤던 갈등에 대한 생각이 변했다.

“갈등은 극복해야 할 부정적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관계에 늘 상존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불편한 손목은 기존과 다른 조각 방식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지만 그보다 더 큰 수확은 그가 굳건하게 믿고 있던 통념에 균열을 낸 것이다. 손목 불편이라는 새로운 환경 때문에 기존의 방식에서 한 걸음 떨어져 조각을 바라보게 됐고, 다른 방식으로도 조각할 수 있다는 깨달을 얻은 것이다. 그때 그의 세계관은 보다 통합적으로 변화했다. “우리의 신체를 분자 단위로 쪼개면 결국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을 했어요. 세계를 보다 통합적으로 보게 된 것이고, 조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죠.”

통합적인 세계관으로 인식의 차원이 변화하면서 조각의 방법론이나 태도, 과정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사회 문제를 바라보던 날선 시각들도 보다 유연해졌다. 더 객관적인 시선과 높은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볼 때 오히려 유연하고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인식이었다.

“개인과 사회에 현존하는 수많은 갈등, 예를 들면 당면한 인류세나 환경문제들을 통합적인 시선으로 접근한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더불어 제 예술의 잠재성을 높아질 수 있다는 생각도 했죠.”

조각은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예술이다. 그러나 인체 내부를 형상화한 그의 조각에선 동적인 움직임이 살아 있다. 인체의 부분들을 의미로부터 떼어내고, 그것들을 마치 평범한 사물처럼 늘어놓은 결과다. 그는 완벽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 보다는 “예술적 상태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런 상태에서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거나 낯설게 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을 모색한다. 완결보다 과정을 중시하며 예술적 상태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는 그의 전시는 17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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