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공복公僕
[데스크칼럼] 공복公僕
  • 승인 2024.01.09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연청 부국장
요즘의 국회는 고삐 풀린 말이다. 국민들의 생각이나 국민이 처한 상황 같은 기초적인 환경은 무시한 채 다만 제 진영의 정치적 잇속을 위해 함부로 재량권을 남발하기 일쑤다. 자신들이 가진 입법권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맹렬히 휘두르며 제 입맛에만 맞는 희한한 법을 만들어 낸다.

검수완박법, 쌍특검법,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다수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은 넘쳐난다. 이 법안들은 특징이 뚜렷하다. 오로지 정략적 이익만을 위해 강행, 처리된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국민의 삶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이다. 법을 만들기 위한 토론이나 협상 등 협치의 과정은 항상 생략된다. 오로지 자신을 비호하기 위해, 또는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만드는 이런 법들은 도데체 선인가, 악인가.

민생이라는 기초가 빠진 이같은 공정이 과연 정의인가.

하긴 요즘 정치에서 국민의 삶이 모든 것에서 우선하는 광경은 몹시 드물어 참 생소하기 까지 하다. 어려운 말을 할 것도 없다. 정치의 이유와 목적, 이런 것의 근본은 오직 더 나은 국민의 삶을 위하는 게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치의 생리상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을 만들고 그 수단 중에 국민은 배제되는 경우가 왕왕 있기도 할 터이다. 하지만 오로지 한 진영이 살기 위해 타 진영을 깨부수고, 온갖 모략으로 정쟁을 위한 정쟁을 일삼는 일이 민생을 살피는 일보다 급선무가 되는 판국에 이르렀다면, 이미 그 정치는 진정한 가치와 의의를 상실한 그저 저잣거리 무뢰배의 진흙탕 싸움에 불과한 것 아닌가. 이런 상황인데도 과연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여의도 문법이라는 생소한 말을 요즘 자주 듣는다. 누가 만든 것인지 참 잘 만든 말인 것 같다. 여의도는 여의도끼리만 따로 겉돈다는 느낌도 이 말에 상당히 배어있다. ‘민생 외면’이라는 조건도 내포되어 있다.

국민의 삶이 모든 것에서 우선하는 정치는, 여의도 문법은 없을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판과 함께 밝은 새해. 그의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문에서 모처럼 여의도 문법이 아닌 말들이 속사포처럼 튀어나왔다.

“정치인은 국민의 공복이지 국민 그 자체가 아닙니다. ‘국민의 대표이니 우리에게 잘해라’가, 아니라 ‘국민의 공복이니 우리가 누구에게든 더 잘해야’ 합니다. 무릎을 굽히고 낮은 자세로 국민만 바라봅시다. 정치인이나 진영의 이익보다 국민 먼저입니다. 선당후사라는 말 많이 하지만, 저는 선당후사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선민후사’해야 합니다. 분명히 다짐합시다. ‘국민의힘’보다도 ‘국민’이 우선입니다”

수락 연설문에서 그가 표현한 이런 말. 요즘 정치인은 이런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너무 당연해서 하지 않는 것인지, 애써 기본을 피해 가려 일부러 이를 외면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의 힘보다 국민이 우선’이라는 그 말, 대단치 않은가. ‘×, ××보다 못한 국민’이 아니라 ‘정치인이 국민의 공복’이라는 그의 말, 서슬이 푸르지 않은가.

그는 “최근 언론 보도나 정치인들 사이에 공개적으로 주고받는 말들을 통해 정치를 보면, 정치가 게임과 다를 게 없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고도 표현했다. 마치 누가 이기는 지가 전부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는 그는 “게임과 달리 정치는 ‘누가 이기는지’ 못지 않게, ‘왜 이겨야 하는지’가 본질이기 때문에 그 둘은 전혀 다르다”면서, “이겼을 때 동료 시민과 이 나라가 어떻게 좋아지는지에 대한 명분과 희망이 없다면 정치는 게임과 똑같거나 정치인의 출세 수단일 뿐이고, 정작 주권자 국민은 주인공이 아니라 입장료 내는 구경꾼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며 명분을 내세웠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면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경쟁의 문턱을 낮춰 경쟁에 참여하는 것을 권장해야 한다고도 했다.

총선이 코 앞이다. 총선의 승부는 공천 과정에서 왕왕 엇갈린다. 그가 이 공천 과정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키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면서도 경쟁의 문턱을 낮출 수 있을지 사뭇 기대가 된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