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깡통
[좋은 시를 찾아서] 깡통
  • 승인 2024.01.1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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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욱 시인

걷어차이면 안다

옆구리 찌그러지고 생입 터져 내장 쏟아 보면

세상에 몸 하나 충실히 산다는 거

입신 갖추고 행세하기 어려운 줄 안다

깡그리 깡다구 심지어 깡패처럼

왜 깡통인지 안다

모나면 다칠세라 둥글게 깎아 세우는 데 십 년

틈이 있어 바람 들까 가려 막는 데 십 년

남이 몰라줄까 꽃단장 두르는 데 십 년

구르는 곰 재주보다 긴 세월이지만

정작 필요한 건 알맹인지라

세상 사람들 용하게 속엣것만 파내간다

나비 떠난 허물처럼 길바닥에 버려져

바람이나 들여 둥지나 틀고

일그러진 밤길 같은 동굴놀이에 지쳐보면

안다, 세 살배기 발길에도 와지끈 구겨질 때

된통 꼴통 혹은 먹통처럼

왜 내가 깡통인지 안다

◇권용욱= 경북 경주 출생. 2016년 <포엠포엠> 등단. <시작나무> 동인 전)부산작가회의 사무처장. 시집 『작곡 이전의 노래』가 있음.

<해설> “걷어 차이면 안다”는, 깡통의 말이다. 내용물을 변질 없이 오래 보관하기 위해 인류가 개발한 깡통이라는 매개물은 하찮음의 상징이면서도 용도 측면에서는 무시될 수 없는 나름의 유용성을 갖고 있다. 시인들이 깡통을 왜 시로 쓰는지, 깡통을 다루는 시각이 어떻게 변천을 거듭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나름은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깡통은 시인 자신이고 그런 깡통의 입장에서 세상을 향한 일갈을 쏟아내는 이 시 깡통은 세상을 입신 갖추고 행세하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비관적으로 노래한다. 알맹이를 위해 살았지만 결국 알맹이를 빼앗겨 버리는 게 깡통의 운명? 그렇게 찌그러짐을 통해 존재의 허무를 잘 이야기하고 있는 시이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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