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가장 한국적인 맛이 가장 세계적이다
[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가장 한국적인 맛이 가장 세계적이다
  • 윤덕우
  • 승인 2024.01.2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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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민족의 DNA, 이제는 글로벌로
한국인 정서와 감성 담긴 국밥
저렴한 가격에 든든한 한 끼 제공
뉴욕타임스 ‘최고의 요리’ 선정
인도의 커리·태국 Œc양꿍처럼
국밥도 세계적 소울푸드될 수도
뜨거운 국물 붓기 반복하는 ‘토렴’
정치인들도 초심이 식지 않도록
지속 견제·감시하는 ‘토렴’ 필요
민생 녹이고 든든한 한 끼 돼줄
대구따로국밥2
따로국밥. 국 따로 밥 따로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었고, 산업화시절에는 든든한 한끼가 되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날이 추워지면 온몸은 꽁꽁 어는 듯하고 마음은 왠지 움츠러든다.

그래도 직장인들은 출근을 해야 하고, 상인들은 장사를 해야만 한다. 정신없이 일과를 보내다 보면 한겨울 추위를 녹여 줄 따듯한 국밥 한 그릇이 생각나는 건 ‘당연지사’다.

국밥은 장터 음식을 떠올릴 때도, 골목길이나 모퉁이 맛집을 생각할 때도, 24시간 해장국집을 찾아 다닐 때도, 언제나 생각나는 메뉴라는 점에서 우리 식생활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사실 국밥은 국에 밥을 넣어 말아먹는 우리 민족의 특유의 음식이라는 점에서 많은 국민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 음식을 손꼽을 때 ‘국밥’을 생각할 정도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으며 역사도 깊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면 ‘나그네’가 주막에서 국밥을 먹는 모습이 자주 묘사되며, 바쁜 보부상들이 ‘국밥 한 그릇’ 후딱 먹고 얼른 바쁜 길을 떠나는 모습과 장터에서 백성들이 울고 웃는 인생사의 장면을 보여줄 때도 국밥은 빠지지 않는다. 근현대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허기진 독립군들의 배고픔을 달래줄 때도,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의 고된 삶 속에서도, 산업화의 주역들인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만든 그 역사적 시간 속에서도 국밥은 늘 등장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뭘 먹을까 고민할 때마다 가장 무난한 선택지로 국밥은 빠지지 않는다. 끼니때를 놓치기 쉬운 배달업 종사자나 택시 기사들에게도 국밥은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한 끼 음식’이 되기에 기사식당이나 국밥집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한다.

고된 농사일에 신음을 달래주는 농민의 밥상에도 국밥은 오랜 친구였고, 도시의 바쁜 직장인들에게도 국밥 한 그릇은 사회생활의 냉정함을 데워주는 온기 같은 역할을 할 때가 있다.

간혹 국밥은 시대의 정서를 대변하기도 한다. 국밥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으로 늦은 식사를 하는 중년남성의 뒷모습, 허겁지겁 국밥으로 한 끼 때우며 분주히 움직이는 상인들의 일상적인 모습들, 북적이는 시골 장터나 재래시장에서 국밥 한 그릇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어르신들, 해장 국밥으로 쓰린 속을 달래며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하는 듯한 샐러리맨들의 눈빛 등을 볼 때면 국밥 한 그릇이 만들어 내는 이 시대의 자화상을 엿볼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밥의 민족’이라 불릴 만큼 정말로 국밥을 좋아하는 것 같다. 추운 날에는 춥다는 이유로, 쌀쌀한 날에는 쌀쌀하다는 이유로, 비가 내리는 날엔 비가 온다는 이유로, 전날 술을 먹은 날엔 술독을 푼다는 이유로, 2차·3차 계속된 술자리에서는 술을 깬다는 이유로, 국밥을 찾는다. ‘국밥 DNA’라는 있는 걸까? 우리나라 음식에는 유독 국물 음식이 많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가난’과 ‘전쟁’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고기와 야채를 넣고 만든 국물에 밥을 말면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 수 있어 가난한 시절,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데 국밥보다 더 좋은 음식은 없었던 것 같다.

국밥은 높은 호환성으로 인해 국밥의 종류는 놀라울 정도로 많아진다. 국에 소고기를 넣으면 소고기국밥이 되고, 돼지고기를 넣으면 돼지국밥이, 순대를 넣으면 순대국밥이, 황태를 넣으면 황태국밥이, 콩나물을 넣으면 콩나물국밥이 된다. 곰탕, 설렁탕, 육개장 등 국이 있는 모든 음식이 국밥이 될 수 있으므로 국밥의 종류는 무궁무진한 셈이다. 또, 3분 내 먹을 수 있는 ‘간편식’에도 국밥 시리즈는 놀라운 정도로 많고 야식의 유혹에 못 이겨 먹는 라면에 밥을 말아 먹는 경우 ‘라밥’이 되므로 국밥 DNA의 발현은 거의 무한대이다. 그래서 ‘국’이 있는 곳에는 ‘국밥’이 있다는 논리가 성립될 정도이다.

요즘 같은 추운 날, 뚝배기 안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마주할 때, 왠지 모를 따스함이 느껴지고 한술한술 뜨다 보면, 허전했던 속은 금세 포만감으로 채워진다. ‘팔도진미’라고 했던가! 전국 각지를 여행할 때마다 맛보게 되는 지역 특유의 국밥을 통해 그 지역만의 문화와 감성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이제는 국밥집도 ‘프렌차이즈’들이 존재하고 국밥 맛도 전국적으로 비슷해져 지역적 차별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국밥에 담긴 지역의 역사와 감성은 맛과 레시피를 넘어 지역의 고유한 ‘정서’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큰 의미가 있다. 그래서 지역마다 대표되는 국밥들과 밥을 말아먹는 탕류의 음식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수도권에서는 국밥이 해장 국밥을 뜻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울식 해장국밥, 인천식 해장국밥, 수원식 해장국밥, 양평식 해장국밥 등 다양하고, 설렁탕, 소머리 국밥 등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대표하는 국밥들이다. 충청권에서는 순대국밥과 올갱이 해장국밥 등이 유명하며, 강원도에서는 황태국밥과 한우국밥 등이 대표적이다. 전라도의 경우, 전북지역은 콩나물국밥으로 대표되고, 광주 등 전남지역에는 내장국밥과 나주곰탕이 유명하고, 경상도에는 얼큰한 소고기국밥의 상징인 대구 따로국밥과 부산 사람들의 ‘소울푸드’라고 불리는 돼지국밥 등이 유명하다.

이처럼, 전국 어디를 가든 그 지역만의 국밥을 맛볼 수 있다. 국밥의 춘추전국시대라 불릴 만큼 국밥은 ‘일상식’이고 ‘다양화’되었고 우리나라 밥상에 ‘국물’은 절대 빠질 수 없다는 ‘국룰’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듯 하다. 젊은 세대들이 사용하는 말들 중 ‘국밥충’이라는 말이 있다. 외식 메뉴를 정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 늘 가성비를 따지며, 저렴한 가격에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국밥을 ‘식사다운 식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국밥충’이라고 한다. 결국 이 신조어도 고물가 시대와 점점 더 부담스러워져만 가는 외식비가 만들어 내었다는 점에서 그 만큼 국밥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든든한 한끼를 제공하는 가성비 최고의 음식인 셈이다.

이제 국밥을 좋아하는 것은 한국인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 뉴스를 보니, 서울에서 돼지국밥으로 유명했던 ‘옥동식’이 미국 뉴욕 맨해튼에 진출한 이후, 뉴욕타임스(NYT)가 선정한 ‘2023년 뉴욕시 최고 요리 8선’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한국 음식이라면 ‘코리아타운’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 수준의 음식이었지만 ‘옥동식’의 돼지곰탕(Dwaeji-Gomtang)은 세계의 수도라고 불리는 ‘뉴욕’에서 최고 음식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국밥의 글로벌화도 멀지 않은듯한 기대감을 심어준다.

이런 점에서, 국밥을 비롯한 한식들이 이제는 글로벌 미식 세계의 한복판으로 뻗어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K팝과 K드라마 같은 K콘텐츠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인도의 ‘커리’, 태국의 ‘Œc양꿍’, 일본의 ‘돈코츠라면’ 등은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글로벌 음식’이 되었다. 이제 우리나라 국밥도 세계인들의 ‘소울 푸드’가 될 차례라고 본다. 진한 국물이 만들어 내는 그 깊은 맛과 국밥을 즐기는 한국인들만의 정서와 감성을 세계인들이 느낄 수만 있다면 ‘국밥의 세계화’는 멀지 않았다고 본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어설픈 ‘현지화 전략’보다는 국밥 본래의 맛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 오히려 ‘한식의 세계화’에 유리하다고 생각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국밥을 조리할 때는 뜨거운 국물을 부은 다음 그 국물을 따라내고 다시 뜨거운 국물 붓기를 반복한다. 이는 고기나 건더기에 국물맛이 배어나게 할 뿐 아니라 국물을 따듯하게 하여 뜨끈한 국밥을 식당 손님에게 대접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을 ‘토렴’이라고 한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각 지방마다 선호하는 국밥이 달라도 ‘토렴’은 반드시 필요하다. 국밥처럼 정치인들을 선출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국민이나 주민을 위하고 봉사하겠다는 초심이 식지 않도록 주권자들은 끊임없이 그들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토렴’을 반복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따뜻한 국밥 한 그릇보다 못한 정치인들을 ‘상전’으로 모실 수는 없지 않는가?

권력을 탐하는 자들은 움추린 ‘민심’을 녹여주고 ‘민생’의 든든한 한끼가 되어 줄 가성비 높은 국밥 한 그릇과 같은 정치인이 되기 위해 매일 다짐해 보는 것은 어떨까? ‘국밥 정신’이야 말로 이 시대를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인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인지도 모르겠다.
 

 

이상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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