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투혼의 정치는 없는가
[데스크칼럼] 투혼의 정치는 없는가
  • 승인 2024.02.0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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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택 편집위원
한국의 투혼(鬪魂)이 빛나고 있다.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는 제18회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불굴의 기백으로 국민을 감동시키고 있다. 자랑스러움을 넘어 경외심이 들 정도다. 승리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기에 불꽃같은 투혼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한국인 특유의 정신이라며 세계인들도 감탄하고 있다.

한국이 선진국이 된 발전 경로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대로 따라오는 개도국은 거의 없다. 비결은 알지만 따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속에는 한국인이 가진 특유의 정신적 DNA가 숨어 있기 때문이란다. 그중 하나가 포기를 모르는 백절불굴의 정신이다. 태극전사들이 보여준 투혼은 다른 말로 ‘될 때까지’ 정신이다. 한국인에게는 삼세판이라는 것이 있다. 내기를 해도 세판은 해야 한다. ‘고객이 OK 할 때까지’라는 광고 슬로건도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는 말은 바로 한국인의 끈질긴 속성을 잘 보여준다. 대통령도 될 때까지 출마한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한국은 간절함을 동인(動因)으로 투혼의 질주를 경험한 3세대가 공존하는 나라다.

1세대는 일제강점기와 광복의 혼란 즈음에 태어났다. 지금 20~30대의 조부모 세대다. 이 세대는 세상을 알게 됐을 때쯤 보니 ‘나라 없는 백성’이었다. 식민지 백성으로 설움과 차별 속에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징용과 태평양 전쟁의 상흔을 보고 살았다. 해방공간의 혼란과 남북분단, 그리고 6·25 전쟁을 고스란히 몸으로 겪었다. 1960년대 초부터 산업화가 시작되자 가난 탈출을 위한 국가적 행렬에 전력 질주로 동참했다.

2세대는 1세대의 자녀 세대다. 6·25 전쟁 휴전 후 태어난 1,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주류를 이룬다. 나라는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국민으로 출발했다. 빈곤 극복을 위해 질주하는 부모를 보면서 성장기를 보냈다. 가난 속에서도 부모의 헌신과 희생의 덕으로 교육의 수혜를 이전 세대보다 많이 누렸다. 그 힘을 바탕으로 부모가 일군 산업화 초기의 기반을 이어받아 후기 산업화를 완성하고 민주화를 이루었다. 정보화. 지식기반사회 진입까지 전력 질주했다.

3세대는 2세대의 자녀 세대로 오늘날 청년 세대들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로 우리 사회는 절대 빈곤을 벗어나 물질적으로는 선진국 기반에 근접했다. 이 시기에 태어난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다. 아파트 숲, 넘쳐나는 자동차, 각종 전자기기, 인터넷 등 지금 세상을 움직이는 기반 환경을 유년기부터 보고 체험하며 자랐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중심 세대로 성장하면서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했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세계적 위상에 도달한다. 꿈의 크기도 글로벌하게 커졌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며 게임, 문화, 예술, 스포츠 등 각종 국제무대에서 거침없는 파워를 발산하고 있다. K-콘텐츠와 함께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짊어지고 나갈 핵심 세대다.

투혼의 질주를 통해 1세대는 산업화 감동을, 2세대는 민주화 감동을, 그리고 3세대는 글로벌화 감동을 중첩되게 쌓았다.

서구에서 150년 이상에 걸쳐 진행된 선진화 과정이 한국에서는 50여 년 만에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확연히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진 3세대가 한국에서는 함께 살고 있다.

‘빨리빨리’를 앞세운 질주는 빠른 성과와 감동을 가져왔지만 여러 후유증도 남겼다. 저출산, 지방소멸, 공동체 해체, 세대 간 단절 등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많은 문제는 질주로 이룬 성공의 그늘이다.

질주 사회가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에서 유를 이뤘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은 세대를 넘어 전수되고 있다. 두려움을 모르고, 포기를 모르며, 가치있는 것에 헌신·기여하는 DNA가 돼 계승되고 있다.

호주와의 8강전 역전승 후 주장 손흥민 선수는 “나라 위해 뛰는데 힘들다는 건 핑계다”며 왜 전력 질주하는 지를 전했다. 조부모, 부모 세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달렸다는 것이다.

최근 문경 육가공공장 화재를 진압하다 하늘의 별이 된 두 젊은 소방관의 헌신과 희생처럼 세상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맡은 바 위치에서 정성을 다하는 다수가 있기에 돌아간다.

4·10 총선이 6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거리 곳곳에는 건물을 감싸듯 한 예비후보들의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감동을 만들어 온 질주 세대에게 선택을 받겠다고 한다. 이역만리서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한 태극전사를 보면서, 현수막 휘날리는 정치인에게 묻고 싶다. 그대는 국민에게 어떤 투혼을 보여줄 수 있는가, 어떤 감동을 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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