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겨울방학
  • 여인호
  • 승인 2024.02.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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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야 방학숙제 다 했나?” “일기도 덜 썼고 다른 숙제도 덜 했는데.”

“선생님한테 혼날 텐데.” “교실에 가서 다른 친구들 것 보고 대충 하자.”

“그래도 다 못할 건데.” “그러면 선생님한테 혼나면 되잖아.”

지금은 폐교가 된 경북 김천시 아포읍 대신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가는 길에 같은 동네의 친구와 나눈 이야기입니다. 2킬로미터 정도를 걷는 학교 가는 길입니다. 김천에서 구미를 왕복하는 버스는 구름 같은 먼지를 일으키면서 지나가곤 하는 길입니다. 6학년 때 같은 마을의 남자 친구 7명 모두가 6학년 1반이 되었습니다. 6학년은 2반까지 있었는데 한 반에 50명이 넘었습니다. 우리 동네의 여자 동기들은 13명인데 절반이 같은 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남자 7명은 학교를 갈 때는 모두가 함께 신작로를 걸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매일같이 축구를 하는 영호만 다른 동네의 친구들과 겨울바람이 휑하니 지나가는 신작로를 걸었습니다.

겨울이 시작되면 겨울방학을 할 때까지 7명은 남자 동기들은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에 갔습니다. 가끔 도시락을 싸서 가기도 했지만 반찬 걱정, 김치 국물 등이 책가방에 흐르는 등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4교시를 마치자마자 7명은 마을을 향해서 뛰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도 같이 생긴 마을의 남부지방에 사는 친구들부터 집으로 들어갑니다. 영호의 집은 개마고원 부근이었습니다. 허겁지겁 점심을 먹은 7명은 다시 마을 입구에 모여서 학교로 달려서 턱까지 차오른 숨이 조금 진정될 때면 교무실 앞에 걸린 쇠종이 5교시를 알렸습니다.

겨울방학이 되면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친구들이나 아버지와 함께 산에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영호가 5학년 때 아버지가 만들어 준 지게를 지고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나무를 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시레기국에 밥을 말아서 국물을 먹다가 고추장을 넣어서 비벼 먹었던 게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개울이나 저수지에 얼음이 꽁꽁 얼 때면 썰매를 타고 바람이 많은 날은 연을 날렸습니다. 그러다보면 겨울방학 숙제는 미루고 미루어서 거의 손도 대지 못한 체 개학을 맞이했습니다.

지금은 공사 등 학교의 사정에 따라서 겨울방학을 늦게 해서 봄방학이 없이 3월에 새로운 학년을 시작하는 학교도 많습니다. 겨울방학 숙제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었습니다. 도시의 아이들은 대부분 학원 몇 곳을 다니기도 합니다. 영호가 다닐 때 우리 마을에만 100여 가구에 100여 명의 초등학생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고향 마을은 84가구에 초등학생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차를 몰고 고향 마을을 지나서 대신초등학교 앞에 잠시 정차해서 50년도 더 된 6학년때 겨울방학을 생각합니다.



김영호 <전 대구교대대구부설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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