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읽기] 당쟁이 가장 치열한 시기인 조선 숙종의 천기와 가계
[류동학의 세상읽기] 당쟁이 가장 치열한 시기인 조선 숙종의 천기와 가계
  • 승인 2024.02.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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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한국 정치사에서 정치세력들이 가장 치열하게 경쟁한 시기는 1575년 을해당론(乙亥黨論)이후 1589년 기축옥사(己丑獄事)로 인한 정철이 주도한 정여립 옥사와 1674년 숙중의 즉위 후인 남인과 서인의 환국정치와 노론과 소론의 정쟁 및 1945년 해방정국하의 좌우대립과 작금의 한국정치의 여야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숙종의 치세는 경신환국,기사환국,갑술환국등,병신처분 등의 수많은 정치 논쟁으로 하루도 조용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 환국정치로 인한 피해는 심각하여 정권이 변할 때 마다 보복성 숙청이 이루어져서 피바람이 났다.

숙종은 1661년 10월7일(음8월15일) 묘(卯)시경에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사이에서 1남3녀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숙종(肅宗)의 재위기간(1674년~1720년)은 영조다음으로 긴 조선의 제19대 국왕이다.

숙종의 외가는 청풍김씨이다. 숙종의 모후는 명성왕후 김씨로 청풍부원군 김우명의 따님으로 대동법을 시행한 영의정 잠곡 김육(1580-1658)의 손녀이다.

숙종의 사주에서 어머니는 10대의 시기를 나타내는 ④축토(丑土)편인이다. 편인은 편애적인 사랑으로 고독과 외로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숙종의 모후 명성왕후는 어이없게도 무당의 말을 듣고 1683년(숙종9년) 12월5일 비교적 젊은 나이인 42세를 일기로 승하했다. 승하 후 그녀의 무덤은 현재 동구릉 내에 소재한 현종의 능인 숭릉이다. 숭릉은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정자각(보물)에 팔작지붕을 얹고 있다.

그녀는 지능이 비상하고 총명하였으나 성격이 거칠고 사나워 현종이 후궁을 한 명도 두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서인 한당출신으로 남인과 대립하며 현종의 사촌형제이자 인평대군의 세 아들 삼복 형제(복창군 · 복선군 · 복평군)와 대립하였다. 아버지 김우명과 홍수의 변(紅袖之變)을 일으켜 이들 삼복 형제를 제거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홍수의 변(紅袖之變)은 숙종1년(1675년) 3월, 복창군과 복평군이 궁녀와 간통하여 자식을 보았다는 청풍부원군 김우명의거짓 고발로 발발한 사건이다. 홍수의 변은 숙종 6년에 발생한 탁남의 영수 허적과 허견 및 삼복 형제 복창군 · 복선군 · 복평군이 제거되는 삼복의 변의 발판이 되었다. 공작정치의 원조 김석주와 김익훈이 일으킨 삼복의 옥은 1680년 윤휴와 허적이 제거되는 경신환국의 발판이 되었다.

명성왕후는 또한 숙종이 총애하던 궁인 장씨(희빈 장씨)가 남인과 연통한다는 이유로 내쫓기도 하였다. 이 밖에 다양한 정사에 관여하며 노골적인 언사와 감정 표현 등으로 사가와 유림(儒林)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숙종은 사주상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모습인 ①유금(酉金)월의 ②신금(辛金)일간으로 사주구조가 유금과 신금의 비견(比肩)이 너무 강한 건록격사주이다. 건록격은 장남의 지위를 계승하는 역할로 매우 독립적이다. 그는 정통성이 명확한 군주였다. 이렇게 일간과 같은 오행인 비견이 너무 강하면 형제문제가 불리하고 부친과 여자를 극하는 모습이 된다, 소위 군겁쟁재(群劫爭財)의 구조로 특히 배우자궁이 묘유충(卯酉沖)이니 더욱 이런 현상이 극대화된다, 이런 유형의 남자를 만나는 여자는 불행을 자초할 가능성이 높다. 숙종은 아버지 현종의 이른 사망으로 14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친정(親政)을 하는 특이한 케이스이다.

그의 형제인 명선공주와 명혜공주는 일찍 죽었고 명안공주(1665~1687) 역시 해주 오씨 오태주에게 시집을 갔으나 2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숙종의 정비는 인경왕후(仁敬王后) 김씨(1661~1680)로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로, 서인의 영수이자 송시열과 송준길의 스승인 김장생의 현손이다,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며『사씨남정기』를 지은 김만중은 숙부이다. 그녀는 숙종대의 노론 김춘택의 고모이자 영조대의 영의정 이천보의 이모이다. 그녀는 적장녀와 적차녀를 두었으나 요절하였다.그녀는 1680년(숙종 6년) 10월 26일, 천연두를 앓은지 8일만에 승하하여 서오릉의 익릉(翼陵)에 모셔졌다. 숙종의 제1계비는 정적인 희빈 장씨와 더불어 드라마틱한 생애의 인물로 유명한 인현왕후 민씨이다. 그녀의 사주는 왕조실록에 정미년 을사월 정묘일 병오시 생이다.인현왕후는 민유중(1630~1687)과 그의 첫 번째 계실인 은진 송씨(1637~1672) 사이의 넷째이자 적차녀로 태어났다. 생모 은진 송씨는 효종~현종 때의 서인 산당 당수이자 민유중의 스승이었던 송준길의 딸로, 일찍이 순화군(선조의 서자)의 외손녀 덕수 이씨와 혼인했던 민유중이 자식을 얻지 못한 채 상처(喪悽)한 후 맞이한 재취 부인이다. 노론의 민진후와 민진원은 오빠이다.

제2계비인 인원왕후 김씨(1687~1757)는 경주김문의 소론계열의 김주신의 따님이다. 인원왕후 김씨는 영조의 양어머니로 정성왕후와 정빈 이씨, 영빈 이씨, 숙의 문씨의 시어머니이다. 효장세자, 사도세자, 화평옹주, 화협옹주, 화완옹주의 할머니이다. 구한말 조선의 내각을 이끌며 개화 정책을 이끈 김홍집은 인원왕후의 형제인 김후연(김주신의 장남)의 4대손이다. 희빈장씨의 아들은 경종이고 숙빈 최씨의 아들은 영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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