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일당에서] 길고양이, 매일 찾아와 ‘두리번’…네가 호일당의 또다른 주인이구나
[호일당에서] 길고양이, 매일 찾아와 ‘두리번’…네가 호일당의 또다른 주인이구나
  • 윤덕우
  • 승인 2024.02.2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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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친구이자 영물
9천년 전 이집트 신으로 숭배
고양이 머리 여신 다산 상징
중세 유럽 마법·미신과 연관
오늘날 애완동물로 사랑받아
지난달 하순부터 시골집 호일당에 출근하다시피 하고 있다. 홀로 거처하던 어머니가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되면서, 1주일에 한두 번 오가다가 거의 매일 가야 하는 상황으로 변한 것이다. 호일당에서 낮 동안 머물다 대구 집으로 돌아온다.

빈 시골집에 혼자 텃밭을 관리하고 책을 보거나 글도 쓰면서 보내는데, 매일 찾아와 주인처럼 집안을 둘러보며 놀다가 가는 이들이 있다. 길고양이들이다. 처음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매일 보다보니 이제는 그들이 궁금해질 때도 있다.
 

길고양이-시골집-20240215
시골집 호일당을 주인처럼 드나드는 길고양이 중 한 마리.

◇호일당의 또다른 주인

그동안 호일당에서 한번 이상 본 고양이가 여섯 마리 정도가 된다. 그중 두 마리, 검은 무늬가 섞인 누런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가 가장 많이 찾아온다. 매일 한번 이상 보는데, 찾아오는 시간대도 거의 일정하다. 점심시간에 대문으로 들어와서 음식 찌꺼기를 두는 돌 위와 그 주변을 살펴보고, 수돗가와 재래식 부엌을 거쳐 뒤뜰까지 둘러본 뒤 다시 대문 아래로 나간다. 두 마리는 아직 자라고 있는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것 같은데, 보통 따로 오지만 같은 시간대에 와서 마주치자 서로 얼굴을 부비며 장난치는 장면도 보았다.

호일당 생활을 하면서 마을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점을 확인하게 된다. 그 중 어릴 때 그렇게 많던 쥐와 구렁이들은 구경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참새도 그렇다. 대신 잘 보이지 않던 길고양이들이 마을을 점령하고 있다.

애완동물을 좋아하지는 않아 호일당을 찾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일부러 준비해 주지는 않는다. 남은 음식을 가끔 마당에 내놓기는 한다. 그러면 고양이들은 먹을 만한 것을 골라 먹는다. 하루는 과메기를 먹다가 양이 많아 고양이 먹이로 돌 위에 얹어두었다. 얼마 후 누런 고양이가 와서 과메기를 발견하더니 너무나 좋아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대로 먹지 않고, 한 입 물고는 돌 아래에 내려와 계속 주위를 경계하며 먹었다. 그렇게 반복하며 많은 과메기를 다 먹어치웠다. 매우 양이 많았는데,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기회 있을 때 많이 먹어두는 듯했다. 나중에 검은 고양이가 와서 과메기 냄새를 맡았는지 누런 고양이에게 으르렁댔다. 왜 혼자 다 먹었느냐며 따지는 듯했다.

다음날에는 검은 고양이가 먼저 와서 평소 둘러보던 곳을 다 돌아보고 있었다. 일부러 실외로 나가서 그 고양이를 마주보았는데도 고양이는 달아나지 않았다. 먹을 것을 좀 달라는 듯했다.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는데도 고양이는 나를 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고양이에게 손짓으로 그냥 가라고 하자 천천히 등을 보이며 걸어 나갔다. 고양이들은 보통 나와 마주치면 도망을 가는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고양이들이 호일당의 또 다른 주인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들과 담백한 한 사이의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물’로 대접받기도 하는 고양이가 아닌가.
 

변상벽 국정추묘
‘변고양이’로 불릴 정도로 고양이 그림에 뛰어났던 변상벽의 ‘국정추묘’. 간송미술관 소장

고양이 화가 변상벽
묘작도 잘 그린 조선후기 화가
세세한 털 표현까지 독보적
나도 그처럼 한가지에 집중해

◇고양이 화가 변상벽

고양이는 오랫동안 사람과 각별한 관계를 맺어 왔다. 9천 년 전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신으로 숭배했다. 고양이 머리를 한 여신 바스테트를 다산과 풍요의 신으로 섬겼고, 이 바스테트가 파라오를 보호한다고 믿었다. 중세 유럽 사람들은 고양이가 마법이나 미신과 연관되어 있다고 믿어 수많은 고양이를 죽이기도 했다.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의 애완동물로 사랑받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개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런 고양이는 우리나라 유명 화가들의 작품 소재로도 사랑을 받았다. 고양이와 참새를 함께 그린 묘작도(猫雀圖)는 특히 많은 이들이 좋아한 그림이다. 묘작도 중 조선후기의 화가 화재(和齋) 변상벽(1730~?)이 그린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 그는 고양이와 닭을 특히 잘 그렸다. 그래서 ‘변고양이(卞猫)’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동물 그림은 세세한 털 표현,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몸동작 등 섬세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묘사하기 힘든 동물들의 특징을 누구보다 잘 담아낸 것으로 평가받았다.

고양이 그림의 대가라 불리던 그도 처음부터 고양이 그림을 잘 그리지는 않았다. 처음에 산수화를 그렸다. 그는 자신보다 산수화를 잘 그리는 화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들보다 더 잘 그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집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고양이에 매료되어 매일 고양이를 관찰하며 그리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노력한 변상벽은 겉으로 드러나는 고양이의 모습 뿐 아니라, 고양이의 습성과 감정 내면까지도 묘사할 수 있는 독보적 화가가 되었다.

그는 숙종 때 화원(畵員)을 거쳐 현감(縣監) 자리의 직위를 얻기도 했다. 그의 작품을 얻고자 그의 집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섰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 이러한 말을 남겼다.

“재주란 넓으면서 조잡한 것보다는 차라리 한 가지에 정밀하여 이름을 이루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나도 산수화를 배웠지만, 지금의 화가를 압도하여 그 위로 올라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사물을 골라서 연습했다. 고양이는 가축인지라 사람과 친근하다. 굶주리고 배불러하며 기뻐하고 성내는 모습들에 익숙해지니 고양이의 생리가 내 마음에 있고 그 모습이 내 눈에 있어, 고양이의 모습이 내 손을 통해 나오게 되었다.”

변상벽은 고양이 그림을 적지 않게 남겼는데, ‘국정추묘(菊庭秋猫)’도 유명하다. ‘국화 핀 정원의 가을 고양이’를 그린 그림이다.

가을 들국화를 배경으로 얼룩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수염과 터럭 한 올의 묘사에도 조금의 소홀함이 없다. 눈동자의 미묘한 색조와 귓속 실핏줄, 심지어 가슴 부분의 촘촘하고 부드러운 털과 등 주변의 성긴 듯 오롯한 털의 질감까지 정교하게 잡아내고 있다. 놀라울 만큼 사실적인 묘사력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고양이 모습의 묘사는 물론, 고양이의 심리까지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以形寫神)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 화가들이 남긴 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黃猫弄蝶)’(노란 고양이가 나비와 장난치다), 겸재 정선의 ‘추일한묘(秋日閑猫)’(가을날의 한가로운 고양이), 현재 심상정의 ‘패초추묘(敗蕉秋猫)’(찢어진 파초와 가을 고양이), 오원 장승업의 ‘묘작도’, 긍재 김득신의 ‘야묘도추(野猫盜雛)’(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다) 등도 멋진 작품들이다.

이 중 특히 인기 있는 작품인 ‘야묘도추’는 어미닭과 놀고 있는 병아리 4마리 중 한 마리를 물고 달아나는 순간 포착하고 있다.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쳐 달아나자 그 고양이에 반응하는 어미닭과 부부의 모습 등을 생동감 있게 그린 작품이다.

나른한 봄날, 병아리를 훔쳐 가는 검은 길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평화롭던 공간이 한순간에 야단스런 소동의 현장으로 변했다. 병아리를 입에 물고 도망가는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는 고양이, 병아리를 구하기 위해 고양이에게로 달려드는 어미닭과 주인 부부의 긴박한 순간이 묘사되고 있다. 남편은 긴 담뱃대로 고양이를 후려치는데, 머리에 쓴 탕건은 벗겨지고 자리를 만들고 있던 도구들은 넘어지는 순간이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그대로 보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진다.

변상벽처럼 앞으로 한 가지에 집중해 고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일상적이면서 흥미로운 무엇을 찾아 매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사진=김봉규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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