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사실 너머의 진실을 마주하길
[의료칼럼] 사실 너머의 진실을 마주하길
  • 승인 2024.03.1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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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대구시 의사회 논설위원
의학 교육 방법의 패러다임이 변화하였다. 강의실에서 교수가 강의하고 학생들이 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문제 중심 학습으로 교육방식이 바뀌었다. 강의실에 책상만 더 놓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소규모 토론식 그룹수업으로 임상강의가 변했다. 그러기에 갑작스럽게 대규모로 증원하면 기초의학을 교육할 인력도 부족하지만, 임상 교육을 담당할 인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필수인 해부학실습, 병원에서의 임상 실습 과정 등은 학교와 수련병원 모두에서 갑자기 대비할 수가 없는 사안이다.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 선전포고 같다. 각 학교의 교수 및 학장 차원에서는 증원의 반대 목소리가 나왔지만, 대학 총장으로서는 학생 수가 감소하는 시점에서 의대생 증원으로 재정 여건이 개선되고,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받을 수 있으므로 경쟁적으로 신청했던 것 같다.

경북대는 의대 정원을 현재 110명에서 250명으로 늘려달라고 교육부에 신청했다. 의대 학장단은 입장문을 통해 “정부의 의대 학생 정원 증원 시책에 관해 교육 가능한 증원 규모를 논의해 그 결과를 대학 본부에 제시했다”며 “그러나 대학 본부와 총장은 의대의 제안을 존중하지 않았으며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입학 정원 증원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에 대해 강력한 반대 의견을 여러 번 공개적으로 표명했음에도 대학 본부와 총장은 의대에서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증원 규모를 교육부에 신청했다”며 “교육자로서 의학 교육의 파행을 더는 묵과할 수 없기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재학생들도 성명을 내고 “학생과 교수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정치적 증원 신청”이라고 규탄하며 총장에게 “학생들과 구성원들에게 사죄하고 총장직을 내려놓으라”고 촉구했다.

밤낮없이 환자 곁을 지키며 일하던 전공의는 병원을 떠나고 의사가 되겠다고 꿈에 부풀어 입학한 학생들은 학교를 떠났다. 전공의는 업무 복귀명령에 불응하면 면허를 박탈하겠다고 한다. 자기 일에 누구보다 자긍심이 강하다고 알려진 MZ 세대인 전공의들, 겁박하는 이들에게 향하는 그들의 소리 없는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냐?!” 등교하지 않은 학생은 시일이 지나가니 유급 통보까지 받고 있다, 한 대학은 내부 공지로 휴학계 수리 절차를 알리고 있다니.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껴야 할 교육자가 제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신경을 곤두세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되다니.

모순점이 있어도 나름의 균형 속에서 의료 시스템이 유지되고 돌아가고 있었는데 일순간 개혁의 대상이 된 듯하다, 필수 의료패키지를 들고나오지만, 의료계의 문제점에 대한 진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치료가 이어지는 법이다, 전공의들과 학생들뿐 아니라 의료계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진단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의 일이 가치 있고 사회에 기여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MZ세대인 전공의는 공정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 더 중하게 여긴다. 따라서 자신이 기여한 일에 공정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누가 뭐라고 하든 언제든지 그 일을 그만둘 각오다. 더는 성장할 전망이 없다면 다른 일을 찾는 것도 MZ 세대의 특징이다.

필수 의료를 살리겠다고 내놓는 대책 하나하나가 역설적으로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를 자리에서 떠나게 하고 있다. 현 사태를 타개할 유일한 방법은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논의를 시작하는 일이다. 의료 시스템이 무너지면 누구도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선수는 사이다에 신경 쓰지 말기를, 사실을 그대로 밝히고 그 너머의 진실을 마주하여 다시 대화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이 의료 사태를 잘 풀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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