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귀천: 죽음을 대하는 자세
[달구벌아침] 귀천: 죽음을 대하는 자세
  • 승인 2024.03.17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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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봄꽃이 화사하게 장보러가는 홍희의 눈길을 뺏는다. 수십개의 화분이 모여 분홍빛, 노랑빛의 꽃잎이 어우러져 먼 곳에서 보아도 봄이 왔음을 알려 준다. 장보러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씩 하나씩 눈맞춤을 한다. 멀리서 볼 때 더 예뻐보인다. 한 개씩 사 갈 생각으로 바라보니 선뜻 살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주인할머니는 작은 의자를 밖으로 꺼내 당겨 앉아서 같이 꽃들을 보고 있다. 누가 마음에 더 들어 사갈까 기다리는 눈치다. 구경만 하고 가겠다고 말씀드리니 고개를 끄덕인다. 올 봄에는 구경만 하리라 굳게 마음을 먹어보지만 결국 노란 프리뮬라를 찜해 두고서 발걸음을 옮긴다.

작년에 샀던 꽃들은 1년생이 많아서 아무리 오래 살려보려고 애썼지만 결국 죽었다. 흙만 남은 화분이 여러개이다. 한겨울 노지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시 잎이 생기기 시작하는 다년생 꽃나무처럼 앙상한 나무에 초록색 잎이 싹트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았지만 두 나무는 아직도 마른 채 그대로이다. 아마도 싹을 틔우지 않으리라. 끝내 뿌리채 뽑아서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려야 할 것이다. 죽어가는 것들이 자연적이건, 병들어서건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생명체로 태어난 순간부터 겪어야할 운명이지만 늘 죽어가는 것들이 안타까운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다. 꽃이 죽고 흙만 남은 화분은 빈 화분처럼 느껴진다.

직장에 다니다 보면 동료들의 부모, 조부모, 형제의 부음을 자주 접한다. 직장이 전국규모이고 인원이 많다보니 경조사가 매일같이 일어난다. 죽음과 결혼과 탄생. 결혼과 탄생은 기쁜 일이고 축하한다. 부음을 접하면 홍희가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의 슬픔을 감히 미루어 짐작하며 애도를 표하게 된다.

슬픔의 깊이는 자신과 얼마나 자주 보고, 가깝게 지내며, 마음을 주고받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자주 보지 않는 먼 친척은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을 볼 때 슬픔이 가장 크다. 왜 좀 더 자주 보지 못했는지, 그들과 함께 했던 짧은 순간들의 얼굴과 그들의 말과 웃음이 생기발랄했던 기억으로 되살아나며 더 이상 그런 순간은 올 수 없다는 것이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상주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의 자녀들의 초췌한 얼굴을 보며 눈시울이 불거진다. 말보다는 맞잡은 두 손과 눈빛으로 마음을 전한다. 그러나 장례식장을 나오면서 대개 슬픔이 끝난다. 일상에서 원래 그들이 차지한 시간과 공간이 적었으므로 일상으로 복귀하는 순간부터 슬픔이 서서히 사라져간다.

1년이 지나도 슬픔이 끝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의 죽음을 맞이한 지 1년째 그 날이 다가오자 봄기운 속에서 봄처럼 피어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부엌 창문으로 봄바람이 살랑 불어올 때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갑작스레 이모의 죽음을 대한 동료가 있다. 엄마처럼 가까웠고, 엄마가 매우 슬퍼하기에 눈물샘이 연결되어있는지 같이 눈물이 나고 마음이 힘들다고 했다. 1년전 암이 발견되었고, 4기지만 치료를 했는데 최근에 갑작스레 입원하게 되었고, 입원한지 2주만에 결국 돌아가셨다고 했다. 얼굴이 웃음기를 잃었다. 홍희의 작년이 생각났다. 직장으로 출근하던 날 아침, 웃을 수 없는 자신이지만 우울한 표정으로 출근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분명 웃을 수 없었다. 아직 슬픔이 가슴을 지배하고 있었다. 애써 감추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이 힘들었다. 동료들은 위로를 해 주었으나 곧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홍희만 계속 슬픔에 머물러 있었다. 홍희는 그 슬픔을 이기기 위해 엄마가 떠오를때마다 되뇌었다. “엄마, 꼭 좋은 곳에 가. 우리 엄마 좋은 곳에 가게 해 주세요”

죽음이 완전한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곳으로 돌아간다는 믿음과 기원이 슬픔을 이겨내게 해 주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시인의 말처럼 엄마도 우리와 함께한 세상소풍이 아름다웠다고 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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