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배내골 시인, 첫돌쟁이 ‘배꽃아기’에게 배우는 ‘인생수업’
[화요칼럼] 배내골 시인, 첫돌쟁이 ‘배꽃아기’에게 배우는 ‘인생수업’
  • 승인 2024.03.2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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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문학박사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갖자

-미셀 드 몽테뉴-

산이 병풍으로 둘러쳐진 수성구의 오지, 배내골 시인의 집에는 배꽃아기가 산다. 아침 7시 무렵이면 꼬끼오~ 꼬꼬꼬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도 눈을 뜬다. 이제 갓 말을 배우기 시작한 배꽃아이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새까만 두 눈을 반짝이며 '아침!'이라고 첫 운을 떼고, 팔을 하늘 향해 쭈욱 뻗어 만세하며 '아함, 잘 잤다!'고 세상을 향해 경의의 인사를 보낸다.


아침을 맞은 배꽃아기의 1일 일정의 시작은 조용히 닫혀있는 시인의 집 방문을 하나 둘씩 열어젖히는 일이다. 덩달아 식구들도 잠에서 깨어난다. 방문을 연 배꽃아이는 누운 식구들 머리맡으로 다가가 '아침! 일어나!' 단호하게 외치며 어깨를 흔든다. 아이의 말은 작고, 짧지만 힘이 세다. 조금만 더 자게 해 달라거나, 못 들은 척 돌아눕거나, 알았다고 미적대거나 그 어떤 것도 기상대장인 배꽃아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른들이 '공주님! 사랑해요, 뽀뽀해주면 일어날게요.' 응석을 부린다. 방울새 부리같은 고 작은 입술로 내리는 입맞춤 세례를 기다린다.


아침 식사 후 배꽃아기는 분주해진다. 어린이집 등원 시간이다. 첫돌쟁이의 외출에는 영아로서 선택의 여지가 어려운 의복이나 기저귀 착용 등에는 어른의 선택과 도움이 필요하지만 모자, 양말, 신, 물통, 손수건 등 일상 생활용품은 배꽃아기의 의견을 물어 준비한다. 배꽃아이가 물통이 든 가방을 메고, 모자를 쓰고, 애착인형 곰돌이를 품에 안으면, 현관문이 열리고 아기의 나들이가 시작된다. 기족에게는 한 세계가 보여주는 세상관측법을 엿볼 수 있는 멋진 기회가 생긴다. '해님 안녕', '비 안녕', '눈 안녕', '짹짹', '깍깍', 꼬꼬', '야옹', '할머니꽃', '할아버지풀', '곰나무', '고모색연필', '아빠상어빵빵(버스)', '설탕이(흰개)' 등 사물들에게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고, 쓰다듬고, 만지며 새로운 이름을 얻은 사물들에게 정성껏 다정하게 호명해 준다.

배꽃아이가 다니는 국공립예은어린이집이 보이면 안고 있던 곰돌이에게도 인사한다. 인형을 의자에 앉히고 쓰다듬어주며 '기다려', '갔다올게', '안녕' 인사를 건네고 차에서 내린다. 이런 행동은 어린이집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친구들이 울면 휴지 뽑아서 눈물 닦아주고, 코흘리는 친구는 코 닦아주고, 잠자는 시간에는 친구 가슴에 손 올려 토닥토닥 다독이며 '넨네~ 넨네~' 자장가를 불러주기도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다. 아직 첫돌쟁이 영아인 작은 영혼의 따뜻한 심성괴 행동이 놀랍고 경이로워 뭉클해질 때가 많다.

배꽃아이는 어린이집에서도 친구들과 외계인 같은 언어로 대화하며 까르르끼르르 함박웃음 나누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귀한 생명체와의 인연이다. 세상에서 새로운 한 우주를 맞이하는 일은 꿈만으로는 될 수 없는 축복이다. 배꽃아이를 기다리며 배내리 가족은 아이를 중심에 두고, 그동안 쌓아두고 살던 묶은 짐들을 덜어내는 작업을 했다. 특히 2층 공간은 배꽃아이의 체취로 채워갈 수 있도록 통편집하였다. 그리고 가족의 일상도 개인 중심이던 세상에서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시계바늘과 추에 저속장치를 달고, 곳곳에는 환승역을 준비해 두었다.


캄캄한 우주를 떠다니다가 아름다운 소행성을 만난 우주인처럼, 살아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시간을 서로 배려하고 향유하기 위해 노력한다. 배꽃아이와의 동고동락에 주파수가 맞추어진 시간에는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웃어주고, 더 많이 이름 불러주고, 더 많이 노래부르고, 많이 이야기 나누고, 많이 춤춘다. 벌써 배꽃아이의 지구생활이 22개월째다. 신체와 영혼이 폭풍 성장하는 아이 곁에서 내 영혼도 쬐금씩 자라나고 있다는 것일까? 감사하고 감사한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정현종 시인의《방문객》이란 시처럼 사람이 온다는 것은어마어마한 일이고 사람이 떠나는것은 더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에는 부서지기 쉬운, 그리고 수없이 부서지기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 그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일 때, 깊은 산속 옹달샘처럼 목을 축여주고, 잠시 쉬어가게 하는 사람, 늘 기도해 주던 사람이 있었다는 기억, 그 모퉁이에 티끌만하게라도 존재하다가,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서게 할 수 있었음하는 바람으로 배꽃아이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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