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마흔, 잔치는 끝났다”
<대구논단>“마흔, 잔치는 끝났다”
  • 승인 2011.07.10 14: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 민 건(대구대 영어교육과 교수)

20년 넘게 알고 지내는 가까운 친구가 있다. 대학과 대학원 시절, 문학을 꿈꾸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질타하며 희망이 부재하던 시절 동지가 되어 같은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집안 형편으로 대학원을 그만 두었고, 그러던 와중 결혼을 하였고, 생계를 위해 모 유명회사에 들어갔다. 워낙 조용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그 친구가 회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허울 좋은 사회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대개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공간을 찾아가기 보다는 자본을 따라 자신의 직장을 강요당한다. 그 친구 역시 자기 색깔에 맞지 않은 직업을 선택했지만 가족의 생계와 `세상에 쉬운 것이 뭐 있나’하는 너털웃음으로 가끔 소식을 전하기도 했고, 출장을 핑계로 상경을 하면 제일 먼저 만나 선술집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술을 권하기도 했다. 제도권에 어울리지 않는 그 친구의 직장생활이 자의였든 타의였든 그럭저럭 안정되어가고 있을 무렵, 늦둥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과 승진소식을 전해 받았다.

연락이 뜸했던 최근, 그 친구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는다. “나 회사 그만 두었어”라는 목소리와 함께 홀가분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앞으로의 일은 미리 걱정하지 않으리라는 다짐도 한다. 나는 염려와 함께 근간의 소식을 묻는다. 그는 집 근처에 조그만 방 하나를 구해놓고 대학원 시절 묵혀놓았던 책들을 다시 읽으며 지낸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백수생활’의 시작이다.

여러 가지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공한다하더라도, 상사의 일에 대한 다그침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내하는 조건으로 꼬박꼬박 월급을 넣어주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좋은 의미에서 `프리랜서’가 된 그의 일상이 불안해 보인다. 치솟는 물가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카드 값을 걱정하고, 아이들의 교육비를 고민하는 그의 삶을 온전히 지켜본 나로서는 사실 마흔이 넘어 회사를 거두어 낸 그의 일상이 애틋하다.

잔인한 현실과는 아랑곳 하지 않고 `회사 안다니고 하고 싶은 일 하는 네가 부럽다’고 말하는 주변의 지인들의 속없는 위로가, 사실 겨우 견고하게 다진 그의 마음에 상처만을 줄 뿐이다. 직장생활의 반을 넘어가는 지인들은 회사를 그만 둔 그를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제 돈 없이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요즘의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이제 가난해지기 시작했지만 값지고 아름다운 오늘과 일상을 얻었다고 한다. `돈 없이 살다보니 다른 일상이 보이고 행복해지기 시작 했어’ 라는 그의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걱정에 위로를 더해주는 그가 아름다워 보인다.

매일 아침 부산스럽게 출근준비를 하고 시간에 쫓기던 모습과는 달리 한가로운 오전을 보내고, 큰 아이의 학교 가는 길을 아이의 보폭으로 동행하고, 점심을 직접 차려 막내 아이와 같이 식사를 하고, 자기와 똑 같은 표정과 모습으로 누워 한낮의 달콤한 잠을 청하는 아이를 보며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때 묻은 아이의 옷을 빨고 베란다에 널어 오후 햇살에 카랑카랑하게 말라가는 아이들의 옷들을 바라보며 `행복하다’며 소식을 전하는 그의 목소리가 여름의 잔광처럼 눈이 부시다.

남들 눈에는 그의 일상의 시간들이 `지질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쪼개고 아껴 쓰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가 마흔이 넘어 선택한 낯선 일상들이 빛나는 순간이다. 도발적이기도 하고 얼핏 보기에 사람을 적이 당황스럽게 하는 그의 새로운 삶의 시작이 나이 마흔 넘어 행복하지 않은 `잔치를 끝낸’ 듯 보인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지금의 더딘 그의 삶이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그의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모두가 똑같이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요즘의 사람들의 일상은 마치 24시 편의점 안의 진열장처럼 하루의 긴 시간을 똑같이 반복하며 살아가는 듯하다. 자유로운 듯 괴롭고, 즐거우면서도 슬퍼 보이는 `마흔, 잔치를 끝낸’ 그의 삶이 더디지만 꾸준히 걸어가 주기를 희망한다.

오늘 아침, 큰 아이의 도시락을 챙겨 조그만 아이의 손을 잡고 더딘 보폭으로 아이와 함께 학교를 동행하고 있을 그 친구를 떠올리며, 문득 지금 내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미안해지는 상상을 한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