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박성 선생의 송담서원 앞에서
<대구논단>박성 선생의 송담서원 앞에서
  • 승인 2011.09.1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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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광역시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

달성 구지에서 도동서원을 향해 대니산을 끼고 돌면 오른편 산중턱에 또 하나의 서원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바로 대암(大庵) 박성(朴惺, 1549-1605) 선생을 모신 송담서원(松潭書院)이다. 선생은 어릴 적 이름을 덕응(德凝)이라 했고, 휘는 성(惺), 호는 대암(大庵)이라고 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1549년(명종 4년) 현풍의 솔례(率禮)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에 곽죽제(郭竹濟)와 배낙천(裵洛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24세 때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함께 심경(心經)을 토론한 뒤 학문적으로 깊이 교류하였다.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곧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열중하였으며, 34세 이후 영남팔현(嶺南八賢)혹은 중외칠현(中外七賢)의 일원으로 천거되어 왕자사부(王子師傅), 공조정랑(工曹正郞), 익찬(翊贊) 등의 내외직(內外職)에 15차례 정도 임명되어 화려하게 벼슬길로 나아갈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 사임하고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초유사(招諭使) 학봉(學峯) 김성일(金誠一)의 막료로서 직접 의병활동에 참여하였으며, 훗날 정유재란 때에는 청송 학안재(學顔齋)로 이거(移居)하여 청송(靑松), 진보(珍寶), 영덕(盈德) 지역의 의병장으로 맹활약을 하였다. 이 때 체찰사(體察使)였던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이 선생을 보고 `언제나 선생’이라고 호칭하면서 공경하였다고 한다,

1605년(선조 39년) 청송에서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현풍으로 운구되어 이곳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232-2번지의 송림(松林) 선영(先塋) 아래로 모셔졌다. 이에 선생의 학덕과 국난 극복 정신을 숭앙한 지방 유림 75명이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발기에 동참하여, 1634년 비슬산 기슭 쌍계에 서원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위패 봉안이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친왜분자의 소행으로 불타고 말았다.

그 후, 1694년 지방 유림에서는 다시 선생의 유택(幽宅) 앞인 이곳에 서원을 세우고 당호를 송담서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서원도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친일분자의 소행으로 다시 불에 타고 마는 비운을 겪는다. 그러나 유림들과 후손들은 이에 굴하지 아니하고 1993년 외삼문인 덕양문(德陽門)과 강당인 경의당(敬義堂)을 다시 세움으로서 서원은 복원되었다.

또한 서원 왼편에는 웅장한 신도비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데 비두는 웅장한 용틀임으로 장식되어 있고, 높이는 구판에서 비두까지가 3미터가 넘으며 폭이 90센티미터나 되는 웅장한 자태를 가지고 있다. 비문은 영의정을 지낸 김세렴이 찬하였고 글은 전진사 영이 썼다.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는 비문에 따르면 선생이 얼마나 의로운 길을 걸어왔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이러한 선생의 일생과 서원에 얽힌 일련의 과정을 미루어 볼 때 몇 가지 교훈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의로운 길은 결코 외롭지 않다는 점이다. 선생은 벼슬에 나아가 일신의 부귀를 꾀하기 보다는 의병장 등으로 나아가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 하였다. 그리하여 유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서원이 건립되고 신도비가 세워지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둘째, 큰 가르침에는 반드시 따르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친왜분자, 일제강점기 때에는 친일분자의 방해를 받아 서원이 불에 타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선생의 큰 가르침은 기어코 서원을 복원시켰고 명예를 드높였다.

셋째, 향토의 위인들이 더 널리 소개되고 교육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위인들이 걸어 다녔던 길을 그대로 걸어 다니면서도 그 분들의 정신이나 가르침은 잊고 산다. 일찍이 퇴계 선생도 `옛사람이 가던 길을 아니 가고 어찌할꼬?’라고 읊은 바 있지 아니 한가.

서원의 문이 활짝 열리고 경의당 마루에서 선생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열강과 토론이 활발하게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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