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보이는 이웃
연말이면 보이는 이웃
  • 승인 2012.12.1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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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대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연말이다. 지내온 한 해 삶이 팍팍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의미 있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뮤지컬이나 영화, 음악회 공연을 함께 보면서 송년회를 하기도 하고 골목길 연탄 나르기와 같이 불우이웃돕기 노력봉사로 송년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회원으로 있는 한 모임에서는 연말마다 경매 형식의 바자회를 열어 송년회를 대신한다. 바자회로 모은 돈은 대개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으로, 보호시설이나 단체에 위문금으로 쓴다. 올해는 혼자 사는 노인의 집을 수리해 주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올해 바자회에도 50여명의 회원이 온갖 물품을 갖고 와서 경매에 부쳤다. 일식집을 하는 친구는 자기 식당의 식사권을 경매에 내놓았다. 사진작가와 화가는 직접 찍고 그린 작품을 전시회에서 팔지 않고 이 날 경매 바자회에 내 놓았다. 해외여행 사업을 하는 분은 해마다 먼 나라에서 수집한 진귀한 물건을 갖고 온다. 한 여성 회원은 털실을 사서 직접 짠 스웨터를 갖고 왔고 옷 가게를 하는 젊은 후배는 자기 가게에 진열된 외투를 가져왔다.

연세 높은 어른들은 학창시절 모아 둔 기념우표나 음반, 집에 오랫동안 걸어두었던 현판이나 액자를 가져왔다. 울릉도 과메기를 바리바리 포장해서 혹시 상할까봐 아이스박스에 담아 온 분도 있고,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의 분양권을 경매에 내놓은 분도 있다. 나는 해마다 발품을 팔아 디자인이 세련된 장식용 벽시계를 사서 경매에 내놓는다. 올해는 내가 실제로 구매한 값보다 더 높은 값에 낙찰이 되었다.

경매 물품에는 초콜릿이나 와인과 같이 먹고 마실 수 있는 물건도 있는데 이런 것은 구매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 나누어 함께 먹고 마셔 없애준다. 모임을 이끄는 사람은 삐에로나 산타 분장을 하고 나타나 자칭 국제경매사라고 소개한다. 삐에로, 산타 경매사는 행사를 재미있게 하면서 호가를 유쾌하게 끌어올린다. 값싼 물건이라도 참여한 사람들이 기꺼이 서로 높은 가격에 살 수 있도록 분위기를 돋운다. 경매 바자회에서는 수익금이 아니라 판매금 전액을 봉사활동과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한다.

연말 불우이웃을 도우려면 성금을 전할 수도 있고 노력봉사를 할 수도 있다. 모두 귀한 모습이다. 누군들 이 팍팍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돈과 시간이 모자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 귀한 것을 쪼개고 나누어서 이웃을 위해 성금으로, 노력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나처럼 돈도 아까워하고 노력봉사에도 게으른 사람에게는 우리 모임에서처럼 재미있게 공동 모금을 하고 이를 계기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큰 부담이 없어 좋다.

사실,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은 것을 나누기는 쉽지만 이미 내 차지가 된 것을 다시 떼어 나누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아예 수확을 할 때에 떨어진 나락이나 이삭을 샅샅이 거두지 않았다. 더 궁핍한 사람들이 주울 수 있도록 인정을 남겨두었다. 감나무 위에는 까치밥을 남겼다. 송수권 시인은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라고 썼다. 까치밥이 없으면 하늘은 비고 우리 마음은 허전해 질 것이라 했다.

성경 신명기에는 밭에서 곡식을 베다가 그 묶음을 흘리면 다시 가져오지 말고, 감람나무를 떤 후에는 남은 것을 찾아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아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두어 너의 손으로 하는 일이 복을 받게 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이 나온다. 거둘 수 있다고 속속들이 거두다가는 앞으로 손과 발이 당할 고생을 각오하라는 말인 듯하다.

연말이다. 일년내내 아무리 벌어도 통장은 봉급날 오기 전에 비어버렸고, 아무리 쫓아가고 채워가도 욕망은 도리어 커지기만 했던 한 해였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고도 보이지만 다시 돌아보면 금년에도 많은 친구들이 내게 술과 밥을 사 주었다. 고맙다.

술과 밥뿐이랴. 나를 향한 따뜻한 눈빛과 미소, 격려와 배려의 손길, 관심과 인정의 언어들이 나를 살게 했다. 감사하다. 잡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미 놓쳐버린 것의 아쉬움을 털고, 남의 것인 줄만 알던 것을 내가 누리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지 감사하게 느끼는 연말 어느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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