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겨울, 뮤지컬 ‘레미제라블’
2012년 겨울, 뮤지컬 ‘레미제라블’
  • 승인 2012.12.2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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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대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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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두드려 깨우는 팀파니 소리, 닫힌 막을 찢는 관현악기 소리와 함께 뮤지컬은 시작한다. 레미제라블의 프롤로그는 죄수들의 합창 ‘Look Down’이다.

처참한 노역장에서 장발장은 죄수들과 함께 ‘고개 숙여/ 쳐다보지 마/ 고개 숙여/ 여기가 내 무덤’을 합창한다. 장면이 웅장하고 합창 소리가 높을수록 노역장 귀퉁이에 서 있는 자베르의 감시 눈길이 사납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의 복역 후 가석방이 된 장발장을 맞아준 사람은 성당 주교뿐이었다.
그런데도 성당의 은그릇을 훔쳐 달아나다가 잡혀온 그를 보고 주교는 은그릇은 자신이 준 선물이라며 장발장을 용서한다. 장발장은 ‘주교의 자비가 예리한 칼이 되어/ 내 수치심을 찌르네’라며 독창한다. 이후 장발장은 자비와 용서의 사람으로 변한다.

장발장은 숨어서 오랜 세월을 인내하며 살다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공장의 사장이자 소도시의 시장으로 거듭난다.

장발장의 변신은 자베르의 집요한 추적에 결국 노출된다. 스스로 장발장이라 고백하면 범인이 되고 입을 다물면 다른 사람을 죽이게 되는 딜레마에 빠진 장발장은 ‘Who am I?’를 테너의 높은 소리로 외치듯이 독창한다. 노래의 마지막은 자신의 죄수번호 ‘24601’이다.

레미제라블의 포스터에는 장발장이 목숨을 걸고 돕는 어린 코제트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깊은 어둠 속에 그려져 있다. 배경은 적색과 흑색으로 나눠져 있는데 ‘적색은 곧 다가올 새벽/ 흑색은 마침내 끝날 밤’을 상징한다. 포스터에는 흑색이 청색으로 되어 있어서 이미 새벽이 도래했음을 보여준다.

코제트의 멜로디는 ‘Castle on a Cloud’이다. 코제트는 여관을 운영하는 못된 떼나르디에 부부에게 맡겨져 콩쥐처럼 시달리고 산다. ‘구름 속에 성이 있네/ 잠들면 그 곳에 가겠네/ 아무도 울지 않는 곳/ 우는 사람이 없는 곳’을 어린이의 미성으로 노래한다. 코제트의 성은 구름에 쌓여 있고 잠들어서야 갈 수 있다. 코제트의 현실은 모두가 울며 사는 곳, 눈을 뜨면 비참하고 가난한 ‘레미제라블’이다.

코제트의 서정적인 노래는 떼나르디에 부인의 험악한 외침에 끊긴다. 어두운 밤에 우물물을 길어오라며 코제트를 쫓아낸 부부는 ‘Master of the House’를 부른다. ‘손님 등쳐먹을 궁리에/ 돈만 보면 기분이 좋아져/ 술에 물 타고 물에 술 타고’라는 익살스런 노래를 여관을 찾은 손님들과 함께 부른다. 지독한 악역이지만 이 부부가 등장할 때마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비장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잠시 쾌활하고 가볍게 바뀌면서 긴장이 이완된다.

이때 밤하늘 별 빛을 보며 자베르가 ‘하늘의 별은 질서 정연한 근위병처럼/ 묵묵히 서서 밤을 지키네/ 나는 신의 길을 가네’라며 ‘Stars’를 부른다. 그러나 장발장의 ‘자비’에 대립되는 자베르의 ‘정의’는 2막에서 ‘검고 차갑게 변한 별이/ 허공을 응시하네’라며 자비 앞에서 죽음으로 사라진다.
레미제라블 최고의 노래는 장발장이 부르는 ‘Bring Him Home’이다. ‘하늘의 주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젊지만 두려움 많은 그를/ 집으로 데려 가소서/ 그에게 평화와 기쁨을 주소서’는 바리케이드 너머의 세계를 위해 싸우던 청년들이 총탄에 모두 죽은 후 목숨만 남은 마리우스를 구원하는 기도이다.

무대 위의 요란하던 인물, 배경, 조명은 다 사라지고 장발장만 남아서 섬세한 감성과 깊은 명상으로 자아올린 독창을 한다. 클라리넷과 하프가 느낌을 더해준다. ‘Bring Him Home’은 극의 마지막에서 장발장이 죽음을 맞이할 때에 ‘Bring Me Home’으로 바뀐다.

피날레, 장발장의 죽음을 애도하듯 시민의 노래가 합창으로 터져 나온다. ‘시민의 소리가 들리는가/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음악/ 심장박동이 북소리로 가득차면/ 내일과 함께 새 삶이 시작되지/ 가련한 사람들을 위한 꺼지지 않는 불꽃/ 검 대신 쟁기를 손에 들리라/ 주의 정원에서 자유롭게 살리라’는 합창이 무대와 객석을 가득 채운다.

주교의 용서가 장발장의 자비로, 그 자비가 자베르의 변화와 마리우스의 성장으로, 그 성장과 변화가 시민들의 내일로, 오늘 객석의 공감으로, 거리의 평화로 바뀌면서 뮤지컬은 막을 내린다. 겨울 거리는 여전히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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