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煙氣)의 연기(演技)
연기(煙氣)의 연기(演技)
  • 승인 2021.02.0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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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탄내가 진동한다. 담장을 넘어 바람을 타고 들이닥친다. 피할 틈조차 주지 않은 채 막무가내다. 안방이며 거실과 주방 아이들 방까지 차지하고 들어와 빚쟁이 빚 독촉하듯 아우성친다. 자고 일어난 휴일아침, 오랜만에 찾아온 햇볕을 맞아들이기 위해 창문을 열던 참이었다. 반쯤 열린 창문을 다시 굳게 닫아 걸었지만 소용이 없다. 무방비 상태인 채로 옷섶이며 머리카락, 이불 속으로 속속들이 탄내가 베인다. 틈이란 틈 새새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오는 그들을 막아설 재간이 없다. 어떤 식으로든 파고든다. 연기다.
연기는 앞집 마당 한켠 후미진 곳으로부터 새어 나온다. 무엇을 얼마나 태우는지는 알 수 없으나 코를 자극하는 매캐한 냄새로 봐선 아마 생활 쓰레기일 확률이 높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탄내가 날 때마다 '연기가 우리 집 안으로 죄다 흘러들어오니 숨쉬기가 어렵다'라며 매번 조심스레 부탁하던 터였다. 오히려 '웬 참견이냐'며 이웃 간에 그까짓 것 가지고 그런다며 서운함을 토로하기 일쑤였다.
도시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쓰레기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한다. 봄이면 뉴스와 신문을 통해 황사와 미세먼지 주의경보가 연일 쏟아질 테다. 미세먼지 발생량 감축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자동차 배기가스와 석탄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추측이 난무하지만 한 번 피운 연기를 막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미세먼지 발생의 원인을 되짚어보고 줄여나가는 예방만이 최선이라 여겨진다. 특히 불법 쓰레기 소각을 신고하는 능동적인 실천이 우리나라의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앞집과 옆집, 주변 이웃들 대부분이 노부부 둘만 남아 사는 집이 적지 않다. 식구가 단출하니 쓰레기양도 적다. 종량제봉투 하나를 채우는 일이 만만치만은 않을 것이다. 가득 채워진 봉투를 문밖에 내다 놓는 시간과 요일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란 주택에 산다는 이유로 더더욱 힘겨울 것이다. 마당 한 귀퉁이 차지하고 앉아 태우는 방법이 더 손쉬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이해하고 봐 드렸음에도 그들은 버리는 일보다 태우는 일이 습관이 된 듯 보였다. 참을 만큼 참았다 싶은 어느 날 한계에 다다랐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네요."
신고를 받고 집을 방문한 시청 환경과 직원이 툭, 던진 말이다. 탄내는 나는데 건너 마당 구석까지 여기선 보이지 않으니 다음에 또 연기가 나거든 곧장 전화 하던지 동영상을 찍어 달라는 말을 남기고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얼마나 빨리 달려와야 볼 수 있을까. 신출귀몰한 그를…. 스스로 자백하기 전엔 잡을 수 없다. 잡히지도 않는다. 잡으려 하면 할수록 모래알처럼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간다. 불꽃 흐드러질 때 잠깐 연기에 취해 어칠비칠, 그 때 뿐이다. 재라는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고 마는 것을. 가장 가까운 1열에서 '연기(煙氣)의 연기(演技)'를 지켜보던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들과 머리카락 새새, 주변의 감나무와 공기, 그리고 내 마음속에 숨어들어 꼬리를 감준 채 발뺌이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딱 잡아뗀다. 먼지와 바람, 쥐도 새도 모르게 담장을 넘어가던 소문처럼.
그 일이 있고 난 뒤 한 참 지나서였다. 이번엔 연기의 움직임이 보이는 낌새를 알아차리자마자 문밖에서 그의 동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늦은 저녁이었다. 그날따라 연기의 냄새가 다른 날에 비해 묵직하고 짙었다. 직원의 말처럼 동영상을 찍어 보냈다. 하지만 직원은 오지 않았다. 다만 문자가 왔다.
"접수를 받고 퇴근길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전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쓰레기를 태운 것이 아니라 오래된 보일러 연통에서 나는 것이었어요. 세 들어 사는 처지라 함부로 바꿀 수 없어 양해를 바란다며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새해가 되면 담배를 끊겠다는 다짐을 수년째 해 오던 남편의 등을 보면서 썼던 '패잔병, 위험한 위로'라는 시가 안개처럼 스며든다.
"가스와 기름보일러 통과 통 사이/ 담배 한 개비 꼬나문 사내가 잠입했다/ 그가, 라이터를 켜 든 이유는/ 연기 한 모금 깊게 빨기 위해서가 아닌/ 등 돌려 차갑게 식은 도시에/ 자신이 설 공간이 없어졌다는 걸/ 나는 그의 표정에서 읽는다// 퇴로가 차단된 재개발 구역, 창고 뒤편/ 쿨쿨, 끓어오르는 연통이 폐 같다며/ (...)// 도시로 재투항하기 위해 그는/ 크게, 여러 번, 심호흡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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