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문자
엄마의 문자
  • 승인 2021.05.1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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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꽃이 진 자리마다 감이라는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을 감꽃이 지면서 일러준다. 감나무 이파리와 이파리 사이를 비집고 들이치는 햇살이 은하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사방이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 간다. 어버이날, 휴일 오후 대구 근교 '강정보디아크(물고기가 물 밖으로 뛰어오르는 역동적인 순간과 강 표면을 가로지르는 물수제비가 물 표면에 닿는 순간의 파장을 표현)광장'을 찾았다. 강변에 늘어선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깔고 누워본다.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긴 여운을 남기며 별똥별처럼 바람에 스치운다.

몇 통의 전화를 걸었는지 모른다. 부재중이라 떠 있어 분명 확인을 했을 텐데…. 어버이날 아침까지도 기다리던 아들의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서운하던 마음이 어느새 걱정으로 바뀌어 불안해진다. 몇 번이나 휴대폰을 들었다 놓았다 발등에 불이 나도록 서성였는지 모른다. 서녘으로 해가 질 즈음 남편과 나는 떠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길, 다시 전화를 걸어본다. 전화선을 타고 '어찌 그렇게 엄마를 걱정시키느냐'고 다그치려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가 무섭게 금방 잠에서 깬 듯, 아들의 지친 목소리가 건너온다.

"엄마, 며칠 전부터 2주간 자가 격리 중이야."

집으로 달려가던 길을 돌려세워 이 길로 곧장 아들이 있는 집으로 유턴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간다고 해도 만날 수가 없기에. 자식이 아프다는데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심장이 터질 듯 답답할 뿐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는 너나 나나 우리 모두는 그저 '잘 견뎌낼 수밖에 없다'는 다짐만을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얼마 전, 어버이날을 앞두고 올해 팔순인 엄마가 카카오톡으로 보낸 메시지가 톡, 톡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우리딸잘있어요사히엄마가좀궁굼하다"

그 문자를 보내기 전, 몇 통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만 하고는 답장을 보내지 않고 있던 터였다. 걱정이 극에 달한 엄마가 다급한 마음에 띄워쓰기도 쉼표도 마침표 하나 없이 전보처럼 띄운 것일 텐데…. 문자를 받고 그제야 전화를 해야지 하고는 또 그렇게 깜빡 잊고 지냈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만난 자리에서 엄마는 '부재중 전화가 왔다는 걸 알았으면 늦게라도 전화를 해 줬어야지 딸내미가 그래도 되는 거냐!'며 서운함을 토로하셨다. 아들과의 불통을 경험한 후에야 알았다. 엄마를 기다리게 한 그 시간이 끝이 보이지 않은 지리한 장마 속이었다는 것을.

살다 보면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게 될 때가 있다. 잘 모를 수 있다. 우린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모르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잘 몰라서건 미워서, 사랑해서 그랬던 마찬가지일 테다. 잘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그 일을 알려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엄마를 부를 때처럼 듣기만 해도 미소 짓게 하는 말,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주문 같은 말,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에는 '반갑습니다' 와 '고맙습니다'가 있다. '반갑습니다'라는 말을 풀어보면 '반'과 '같습니다'라는 말이다. 여기서 '반'이라고 하는 것은 크다, 밝다, 중심, 근원, 하늘을 뜻한다. 그러기에 '당신을 만나서 반과 같다'는 말은 당신 안에 크고 밝은 중심의 근원인 하늘을 품고 있는 매우 고귀한 존재라는 극존대의 인사말이 되는 것이다. '고맙습니다'는 '고마'와 '같습니다'가 합쳐진 말로 '고마'는 곰을 일컫는 말이다. 곰은 땅의 신으로 추앙받는 신성한 동물이다. 그래서 '고맙습니다'라고 하면 '당신은 대지의 신과 같이 은혜로운 사람입니다'라는 마음을 알리는 것이라 한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고 아무리 힘이 세도 노년의 무게를 이길 수 없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지만 표현하지 않는 것은 선물을 포장한 후에 주지 않는 것과 같을 것이다. 뜻을 헤아리고 나니 '고맙습니다' 와 '반갑습니다'라는 말이 더욱더 정다워지는 감사의 달 오월이다. 이만하길 다행이라며 '언제나 힘이 되어 주는 당신이 곁에 있어 반갑고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가만히 끌어안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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