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부채...금강산 그린 부채 펼쳐들고 언제 어디서나 비경 감상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부채...금강산 그린 부채 펼쳐들고 언제 어디서나 비경 감상
  • 윤덕우
  • 승인 2021.06.1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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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혼례 하는 신랑 신부
차선으로 얼굴 가린 뒤 걷는데
이를 동정 주고받는 의미로 여겨
앗차차. 6월 14일이 단오(端午)절 이었네. 바쁜 일상 중에 무심하게 놓쳐버렸다. 매년 단오가 되기 전에 부채를 그려 단오 부채로 여러분들과 나눠야겠다고 다짐했건만 올해도 그 약속은 다음 기회로 넘겼다.

단오(端午)는 추석, 설날, 대보름과 더불어 4대 명절 중 하나로, 음력 5월 5일이다.

단오의 단(端)은 첫 번째를 의미하고 오(午)는 다섯을 의미하는 오(五)의 뜻으로 통하므로 매달 초하루부터 헤아려 다섯째 되는 날을 말한다. 예로부터 음양 사상에서는 홀수를 양(陽)의 수라 하고, 짝수를 음(陰)의 수라 했는데 양의 수를 상서로운 수로 여겼다. 그래서 양수가 겹치는 날인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은 모두 홀수의 월일이 겹치는 날로 길일로 여겼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날이면 어떤 일을 해도 탈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그중에서 단오는 일 년 중 인간이 태양신을 가까이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큰 명절로 여겨왔다.

단오는 시기적으로 더운 여름을 맞이하기 전의 초여름(初夏)의 시작에 해당되며,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이기도 하다. 수릿떡을 해먹거나, 여자는 그네뛰기, 남자는 씨름을 한다. 또한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하는 때이므로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김홍도의 단오풍경을 담은풍속도 화첩 씨름을 보시라. 이 그림에는 4개의 부채가 그려져 있다. 더운 여름의 필수품이라고는 하지만, 한 장의 그림에 부채를 왜 이리 많이 그렸을까? 아마도 그 시대 단오날 씨름 구경에 부채는 플렉스(Flex)였던 모양이다.
 

씨름- 김홍도
씨름-김홍도 작 지본 담채 26.9cm X 22.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단오부채는 조선 시대 왕이 신하들에게 여름의 무더위를 잘 보내라는 의미로 하사했던 선물에서 유래한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정조 실록 17년 (1793년 8월 29일) ‘매년 단옷날이면 전라도와 경상도의 감영과 통제영에서 부채를 만들어 조정 대신들에게 두루 선물하는 일이 옛날부터 관례이다. 이에 앞서 이윤경이 통제사로 임기가 만료되어 교체되자, 흉년이 들었다고 핑계를 대면서 매년 하는 관례를 폐지해 버렸다.’라고 되어 있어 예전부터 아주 귀한 선물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시초가 되어 단오날 부채 선물이 지금까지 선물로 내려오는데 ‘여름 생색은 부채가 제일이고, 겨울 생색은 책력(책으로 엮은 달력)이다’라는 속담까지 나오게 되었다.

사람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하였다. 그 가운데 무더위를 식히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바람을 이용하였다. 손바닥이나 종이 등을 가지고 바람을 일으키면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간단한 원리를 이용한 도구가 부채이다. 바람을 일으키는 기능과 다양한 상징이 들어있다.

‘겉모습에 미혹되지 말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제갈량은 자신을 유혹하는 학의 꼬리털로 학우선(鶴羽扇)을 만들어가지고 다녔고, 아름다운 날개옷으로 하늘에 사는 선녀들은 손에 부채를 들고 우아한 동작으로 선녀춤을 추었다.

우리나라의 전통혼례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차선(遮扇)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온 뒤 부채를 거두는데 이는 처녀, 총각이 부채를 거둠으로서 동정(童貞)을 주고 받았다는 상징으로 쓰였다.

다양한 부채 속에 그림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부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5~6백년 된 부채에도 부채에 그림을 담아 사용한 흔적들이 보이고 궁중화가나 명필들이 부채에 그림을 남겼다. 그중에도 겸재 정선의 금강산을 그린 부채가 남아 있다. 부채를 들고 다니다가 금강산이 보고 싶으면 부채를 활짝 펼쳐 감상했으니 ‘금강산이 내 손안에 있소이다’ 할 만 하지 않겠는가.
 

부채에그린산수화-정선
선면산수도-정선 작 지본 담채 47.5cm X 19.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장사꾼 부채에 글씨 쓴 왕희지
“내가 쓴 글씨라고 말하고
기존값의 열배를 부르시오”
눈 깜짝할 사이에 물건 동나
이때부터 ‘부채 그림’ 유행
우리나라에도 영향 끼친 듯

부채에 그림과 글씨와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307-365 진나라)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부채를 팔러 다니는 노파가 “부채사려~”하고 골목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바람에 잠에서 깨었다. 그때 부채 장사 노파가 한 보따리 부채를 맡기며 “부채 다 팔면 찾으러 올 터이니 잠시만 맡아 달라”하고는 가버렸다. 잠에서 깨어 부채를 보고 있자니 심심해서 부채 하나를 꺼내어 글씨를 써보니 재미가 있어 한 보따리의 부채 모두 붓글씨를 써넣었다. 노파가 부채를 다 팔고 와 보니 모든 부채에 낙서를 한 것이 아닌가. 화가 난 노파가 부채 값을 물어내라고 하자 왕희지가 껄껄 웃으며 “할머니, 사람들이 많이 모인 저잣거리에 가서 황희(황희지의 호)선생이 글씨 쓴 부채 사라고 외치면 서로 사갈 것이오. 그때 부채 값이 얼마요 하면 열 배를 부르시오. 만약에 안 팔리면 내가 그 부채 값을 모두 물어드리리다” 라고 말했다. 그래서 부채 장사 노파가 왕희지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정말 10배를 불러도 순식간에 팔려 이 노파는 횡재를 했고, 그 후부터 부채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국에서 유행했다고 하니 그 영향이 우리나라까지 미쳤을 것이다.

민화작가가 주인공인 드라마 등장
둥근모양부채에 모란 그려넣어
부채·민화의 콜라보 관심 집중

최근 부채가 우리의 생활에 공간 장식용 예술품으로 유행을 이끌었다.

모 방송국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민화 작가로 등장하며 등장 배경에 윤선(輪扇)에 모란을 그려 액자에 넣은 부분이 시청자들에게 굉장히 이색적으로 보인 듯 하다. 부채는 들고 다니며 시원하게 해주는 용도일거라는 일반 상식을 뛰어 넘어 드라마의 주제(해피엔딩)를 암시하며 드라마의 전체 배경을 화려하게 보여줌으로서 일반 대중의 민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우리 전통의 부채에 민화 그림을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함으로서 민화가 단순히 본을 대고 그리는 모작이 아니라 회화의 독립된 장르 분류 되고,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덕분에 전주에 있는 윤선(輪扇) 선자장(扇子匠)이 몇 해 동안 쌓여 있던 윤선(輪扇)을 그 해에 다 소진했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윤선-오순경 작
윤선(輪扇) 오순경 작 2014년 제작 작가 소장.

요즘은 건물에 냉방시설이 잘 되어 있고, 들고 다니는 휴대용 선풍기 덕에 부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 옛날 더운 여름이 시작되는 단오에 부채를 선물한다는 의미는 더위와 힘든 농사일이라는 어려움을 임금과 웃어른이 함께 이겨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사회의 구성원들과 함께 풍년을 이루어 좋은 결실을 맞이하자는 공동체 의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제 에어콘과 선풍기로 더 이상 부채는 필요 없게 된 세상이지 되었지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 부채의 의미를 좀 더 다르게 바라봐야 할 듯 하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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