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말다말
아말다말
  • 승인 2021.10.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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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그 날은 마지막 여름 날씨였다. 아들은 짧은 반팔과 반바지를 입었다. 까만 운동화를 신발장 앞에 준비해 두었다. 고등학생동안 사용했던 까만 가방 속에 입대에 필요한 물품을 챙겨 넣었다. 신분증, 입영통지서, 나라사랑카드, 로션, 연고, 휴대폰과 충전기, 두꺼운 양말이었다. 친구가 사준 깔창도 있었다. 가방은 가벼웠다. 혹시나 잊은 물건이 있나 다시 한번 꼼꼼히 체크했다. 손목에 찬 방수시계까지 확인했다. 아직은 실감이 안 나서인지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큰 일이 있을 때면 먹기를 좋아하는 카레를 그릇에 가득 담아 먹은 아들은 비장한 듯 가방을 짊어지고, 거실을 한번 휘 둘러보더니, 이제 진짜 가는구나 했다. 홍희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제 정말 아들이 떠나는 구나. 아들이 울기라도 할까봐 미리부터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들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 듯이 몸을 돌리고 신발을 신었다. 아빠도 따라 나섰다. 집 문을 닫고 에레베이터를 눌러 놓자 정막이 흘렀다. 매일 반복되던 사소한 행동들이 20개월 동안은 할 수 없는 금지된 행동이다. 아주 가끔 휴가를 나올 때만 할 수 있는 소중한 행동이다. 홍희는 아들에게 집 문 앞에 서 보라고 했다. 집 앞에 서 있는 아들을 보고 싶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곧 돌아오리라 여기고 싶었다. 아들은 사진 찍는 것을 싫어했고, 엄마가 의미를 부여하는 특별한 장소에서 사진 찍는 것을 더 이상하게 여기고 사진 찍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었기에, 이번에도 거부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아들은 이런 데서 왜 찍냐고 말은 하면서도 걸어왔다. 자기도 '집'앞에 서 있는 자신을 남겨두고 싶었는가 보다. 기쁘게 사진을 두 장 찍었다.

아들은 해군을 지원했다. 진해에 있는 해군교육사령부로 향했다. 대구에서 승용차로 1시간 30분 거리다. 아들은 차를 타자마자 간밤에 잠을 한 시간도 못 잤다며 잠을 청했다. 긴장이 되어서 그럴 것이라고 했지만, 그건 아니라고 했다. 아들은 피곤해했고, 진해에 도착해 점심이 나올때까지도, 해군교육사령부 앞에서 입대시간까지 기다릴 동안에도 차 안에 누워있었다. 걱정이 되었다. 너무 긴장하는 것이 아닐까. 군생활은 잘 할 수 있을까.

입대시간이 가까워 해군교육사령부 정문으로 걸어갔다. 7분 정도 거리였다. 이래라 저래라 라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들이 듣기 싫어할 것이 분명했다. 엄마는 아들에게 걱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무사하기만을 바라고, 매일 기도하겠다고 했다. 지금껏 있었던 나쁜 일은 용서하고, 좋은 일만 기억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가족들은 너를 사랑한다고 했다. 아들은 모든 말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다 가는 군대인데 자연스럽게 가면 된다고 했다. 그 동안 체력을 강화하고 몸을 만든다고, 운동하고 닭가슴살을 먹던 아들의 걸음걸이가 듬직해 보였다.

정문에서는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아들 한 명에 여러 명의 가족과 친구가 에워싸고 있었다. 다들 홍희와 아들의 마음과 똑 같으리라. 코로나로 입영식을 하지 않아 가족들은 아들과 정문을 들어갈 수가 없다. 횡단보도 이 쪽에서 헌병이 지키고 있었다. 곧 아들이 혼자서 , 다른 엄마의 아들들과 같이 저 길을 걸어가고 엄마와 아버지는 여기에 남아 손을 흔들 것이다. 아들은 건너고 나서 뒤돌아보지 않고 씩씩하게 들어가겠다고 했다. 결연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래도 뒤돌아보고, 엄마와 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어 달라고 했다. 더 당당하게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서운할 것 같았다. 그 길을 건넜다고 이 쪽으로 뒤돌아보지도 못한다면 더 단절감을 느끼고 더 슬플 것 같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군대라는 일상으로 들어가길 원했다. 아들은 그러마고 했다.

화장실을 다녀오더니 들어가겠다고 했다. 좀 더있다 가지 하니 "그냥 들어갈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힘 찬 손을 아버지에게 쑥 내밀었다. 남편도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아들이 벌써 이렇게 컷나, 이제 떠날 때가 되었나, 아들은 부모를 떠나 국가의 자식으로 살아갈 국민이 되었다.

국가의 품에서 한 가지만 바란다.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를 매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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