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은 없다
‘내 것’은 없다
  • 승인 2021.11.1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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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아픔은, 내 것 아닌 것을 ‘내 것’이라 말하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한 사람을 좋아해 본 사람은 안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를. 사랑을 하는 것이 마냥 행복한 일일 수 없다는 것을.

처음 사랑을 할 때, 사랑은 봄날 창가에 비친 햇살만큼이나 따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세상은 온통 꽃밭이 된다. 그때는 세상 어떤 꽃도 예쁘지 않은 꽃이 없다. 그 꽃밭에서 행복한 꿈을 꾼다. 그리고 행복한 삶이 영원할 거라는 꿈을 꾼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그냥 좋다. 보기만 해도 좋고, 생각만 해도 그냥 그 사람이 좋다. 참 행복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속되길 바라겠지만 행복은 우리 곁에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어느 시점을 지나 행복이 머물던 자리에는 새로운 꽃이 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 꽃의 이름은 시기와 질투라는 뿌리를 가진 아픔이라는 꽃이다. 그 꽃은 내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시작될 때쯤, 혹은 그 사람이 내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쯤 꽃망울을 터트린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던 계절, 가을이 지나고 난 후 차가운 겨울이 오듯, 사랑에도 행복이 가고 아픔의 계절이 찾아온다. 조금만 생각을 해봐도 세상 어느 것 하나 내 것일 수 없다는 것을 우린 이내 알 수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까닭인지, 아니면 그러한 생각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내 것’하고 싶다는 고집을 계속해서 부리게 된다. 손에 쥐려고, 뺏기지 않으려고 하다가 우리는 울고불고 난리가 난 후 그때서야 늘 뒤늦게 깨닫게 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늘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손에서 놓고 난 뒤에야 내 것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는다.

댄스 종류 중에 ‘바차타’라는 댄스가 있다. 이 춤은 남녀가 몸을 완전히 밀착하고 추는 춤이라서 나처럼 춤에 대해 일자무식인 사람이 보기에는 민망한 춤이고, 때론 야하게 느껴지는 춤이기도 하다. 예전에 바차타 댄스 동호회에서 활동을 하는 여성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동호회 활동 영상을 보여 주며 자랑하길래 내가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저렇게 자극적인 춤을 남녀가 완전히 몸을 밀착해서 추다 보면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혀 남녀 사이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참으로 초보적이고 무식한 질문이었다. 나의 이런 무식한 질문에 그녀의 대답이 참으로 일품이었다.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다. “내가 한 사람을 선택하고 그 사람하고 남녀 사이로 발전하게 되면 이제 바차타란 춤은 더 이상 다른 사람하고는 출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남녀관계로 발전한 파트너가 내가 다른 사람과 춤추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내 것으로 하지 않으면 세상 모든 남자와 춤을 출 수가 있습니다. 즉, 한 남자를 내 것으로 하지 않으면 모든 남자가 내 남자가 된답니다.”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다.

맞다. 소유하는 삶보다는 누리는 삶이 더 현명한 삶의 태도다. 내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가진 것을 충분히 누리고 감사하며 살면 모두 내 것이 될 수 있다. 잠시 나그네처럼 왔다 가는 세상, 잘 사용하고 잘 나누다가 그렇게 어느 날 지는 석양처럼, 동이 트면 사라지는 빛나는 별처럼, 저기 떠가는 구름처럼, 잠시 머문 바람처럼. 그렇게 살다 가면 될 일이다. 더 많이 가지려 애쓰기보다는 더 많이 누리려 애써야겠다. 움켜쥔 손에는 더 이상 어떤 것도 새로운 것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손가락을 하나씩 펼칠 때마다 새로운 것을 하나씩 얻을 수 있다. 즉, 손을 쫘악 피고 빈손이 되었을 때 세상 모든 것을 가질 기회가 생기게 된다.

세상 어느 것 하나 내 것이 없다. 나의 옆에 있는 사람도, 내가 살고 있는 집도, 타고 다니는 차도, 나의 직업과 역할도 모두 내 것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이 나에게 잠시 맡겨진 것들일 뿐이다. 감사하며 잘 사용해야겠다. 그리고 이 세상 소풍 끝내고 돌아가는 날, 내 곁에서 나를 행복하게 해 준 것들을 다시 제자리로 잘 돌려줘야겠다.

‘내 것’은 없다. 그래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것이라는 ‘착각’과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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