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 룸 (war room)
워 룸 (war room)
  • 승인 2022.02.1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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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겨우내 뽁뽁이로 이중 삼중 굳게 닫아걸었던 창문을 힘겹게 열어젖힌다. 입춘 한파특보 발효 속 비어 있던 화단에 봄꽃이 하나둘씩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손목이나 귓등에 향수를 뿌리듯 맑고 은은한 향기가 코끝에 머문다. 봄의 전령사라 불리는 매화다. 매화꽃 향기가 뿜어내는 매향이 방 안 가득 찬다.

조희룡의 ‘매화서옥(梅花書屋)’이 그려진다. 그림 속에는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듯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깊은 산골에 위치한 선비의 집이 등장한다. 둥근 창을 통해 책이 쌓인 책상을 마주한 주인공이 보인다. 책상 위에 놓인 주둥이가 좁고 가는 술병에는 매화 한 가지가 꽂혀 있다. ‘매화가 흩날리는 숲 속에 책이 가득한 집’이라는 뜻을 가진 작품으로 마치 내가 그림 속 주인공이 된 듯 황홀하다.

예전 같으면 개화시기에 맞춘 꽃놀이 계획들로 봄날, 달력을 빼곡히 채웠을 텐데 지금은 바깥나들이 대신 집 안에서 내면의 나를 찾는 방안으로 독서를 즐기는 편이다. 얼마 전, 누구보다 ‘기도의 힘’을 믿는 목사인 남동생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의 생각 또한 나와 다르지 않았음을, 그 내용을 옮겨 적어 본다.

질문) 코로나를 겪으면서 개인으로 혹은 목회자로서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답) ‘코로나 19’ 덕분에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상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두 가지 사실을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면서 깨닫게 된 가장 중요한 교훈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입니다.

마스크 없이 지내 왔던 모든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은혜였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먹고 운동하고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일상의 당연한 누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그 일상이 멈추어지면서 그 어느 하나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저의 장인 장모님이 노환으로 요양원에 입원해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그 위기의 순간에도 가족으로서 옆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결국 마지막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고 엉겁결에 사랑하는 장인 장모님을 떠나보내게 되면서 평범한 일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누려왔던 대면예배와 성도들과의 식탁 교제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음껏, 모일 수 있는 것이 은혜요, 마음껏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축복임을 코로나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코로나를 통해서 깨닫게 된 교훈은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주어진 현실적인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나의 내면을 방치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하여 사회적 거리가 생기면서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부적인 위협이 위기가 아니라 저의 내면에 뚫린 커다란 구멍들이 문제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그러한 문제 인식은 저로 하여금 깊은 독서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동안 방치해두었던 책들을 먼지 속에서 꺼내 한 권 한 권 줄을 치고, 요약하면서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불투명한 미래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목회에서도 그동안 잊고 있었던 영성의 세계로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워 룸(war room)을 만들고 코로나로 인해 생긴 여러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위드 코로나 시대’입니다. 코로나는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해집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위드 코로나 시대에 보통의 평범한 일상이 진짜 보물임을 깨닫고, 이 위기가 오히려 기회임을 믿으며,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여전히 빛나는 그 별을 상상하면서 말입니다.

외따로 서 있는 겨울나무보다는 오종종 무리 지어 핀 봄꽃들이 왠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것들끼리 다정하게 연결되어 더 좋은 날들을 위해 천천히 나아가는 일상이 한 권의 잘 만들어진 책처럼 재미있게 펼쳐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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