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좋지 아니한家] 애비규환, 엄마의 귀환
[백정우의 좋지 아니한家] 애비규환, 엄마의 귀환
  • 백정우
  • 승인 2022.03.1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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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비규환'스틸컷

“왜 내 사진만 있어?” “너 찍어주느라 그랬겠지 뭐”

친아빠를 찾아 외갓집에 온 토일이 왜 엄마 사진은 하나도 없느냐고 묻자 날아온 할머니의 대답. 최하나 감독의 데뷔작 ‘애비규환’의 한 장면이다.

오래 전 친아빠는 어린 딸의 학원비를 들고 집에서 나갔다. 토일은 엄마가 재혼한 한문선생 새 아빠와 살며 대학생이 되었고, 과외제자인 효훈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다. 임신 5개월이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고 계획을 세우다보니 갑자기 친아빠가 궁금해졌다. 찾아야겠다. 넌 대체 누굴 닮아서 그 모양이냐는 부모의 힐난과 대체 난 누굴 닮아서 이런 거지, 라는 존재론적 의문을 동시에 풀어내기 위해서다. 미래를 위해 출발한 친아빠 찾기 프로젝트지만 예상과는 딴판으로 흘러간다. 아빠라는 남자들, 하나같이 미덥지 못하다. 힘들게 재회한 친아빠는 변변치 못하고, 오랜 시간 같이 산 새 아빠는 서먹서먹하며 뱃속 아이의 아빠는 철부지다.

한국영화가 가족주의를 언급하자면 부득이하게 가부장을 경유해야 한다. 유교문화권의 오랜 습속인 남성우월주의를 해체하는 과정 없이 가족 문제와 대안을 다루기 힘들다는 얘기다. 예컨대 90년대 이전 가족주의가 가정폭력과 주류 이데올로기와 손잡고 근대화에 한축을 담당한 가장을 성공모델로 삼았다면, 이후로는 가부장이 가족에 끼친 해악과 상처를 전시하고 치유하는 데 치중했다.

그런데 ‘애비규환’은 전혀 다른 길을 간다. 이들 세상엔 나쁜 가부장도 없고 악역인 남자도 없다. 일상은 남루해도 낭만이 여전하고, 고루하지만 인정 많고, 어수룩하지만 지고지순한 애비들의 향연이다.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아빠라도, 음악에 미쳐 딸의 발레 학원비로 전축을 샀다고, 그게 멋져보였다고 말하는 무책임한 아빠일지언정 밉지 않다. 영화는 (아빠 둘을 하객 석에 앉혀놓고)엄마 손을 잡고 들어오는 토일의 신부입장에서 정점을 찍는다. 자기 사진 한 장 없이 살아온 엄마에게 보내는 뒤늦은 연서이다. 우여곡절 끝에 만나는 해피엔딩이 흐뭇한 건 이들 가족의 모습이 과하게 비현실적이어서인지도 모른다. “영화가 환상적일수록 더 현실에 가까워진다.”고 파스빈더가 말했듯이.

가족주의와 가부장제의 폐해를 전시하는 일이 필요한 만큼 가족이 주는 따뜻하고 안온함을 드러내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 ‘애비규환’의 미덕이 여기에 있다. 최하나 감독은 신인답지 않은 패기로 욕지기 없이, 갈등과 반목 없이, 거칠고 폭력적인 가부장 없이도 얼마든지 가족주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친아빠를 찾아 나섰지만 정작 찾은 건 엄마였다는 묵직한 한방은 얼마나 멋진가.

(추신) 토일이 아빠를 찾아가는 곳은 대구다. 영화에는 동천역과 신천변과 서문시장과 수성못이 등장한다. 지역에서 이만큼 로케이션했으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을 법도 한데, 대구경북 매체를 통틀어 영화 로케이션 관련 기사를 찾기 힘들다. 그 부분이 아쉽다.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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