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우의 미래칼럼] 당근마켓의 올드 보이즈와 성숙 사회
[박한우의 미래칼럼] 당근마켓의 올드 보이즈와 성숙 사회
  • 승인 2022.03.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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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우 영남대 교수 빅로컬빅펄스Lab 디렉터

지방 선거를 앞둔 대구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대구는 '보수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곳이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국민의 힘'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가 시장에 도전했다. '홍'을 막기 위해 쟁쟁한 경쟁자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대표적으로 경선 기간 내내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했던 김재원 최고위원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 보여주었듯이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세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대구 시장 선거에서 보기 힘들었던 여성과 청년 후보도 나섰다. 민주주의 축제인 '찐' 선거를 대구에서 볼 수 있어서 벌써부터 신난다.

선거에서 새로운 후보는 언제나 유권자의 호기심과 기대감을 부른다. 정치입문 1년도 되지 않아 당선된 윤석열 후보를 보더라도, 새 얼굴에 대한 유권자의 갈증이 정말 크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다. 대구는 지금껏 공무원 출신이 시장과 국회의원으로 많이 당선됐다. 그래서인지 여러 경력을 지닌 후보들이 이번 선거에 출마한 것은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반영한 것이다. 신선한 상상력으로 가득 찬 후보들을 보고 싶은 시민들의 열망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이번 선거는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와 선심성 묻지 마 공약이 난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구태의연한 선거판을 다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후보들이 우리들 삶을 개선할 어떤 정책을 준비했는지 검토하고 이에 대해 논쟁하고 토론하는 판을 만들어 보자. 새로운 작가적 상상력이 결핍된 예술가는 과거 작품을 더 크게 만들어서 자신의 초라함을 감추려고 애쓴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 퇴색된 명성과 일기장 업적에만 의존하는 후보는 만나고 싶지 않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새롭다! 혁신이다! 전략은 성장주의 사회에 효과적인 구호였다. 소득 격차, 계층 격차, 지역 격차의 해소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투영된 것이었다. 성장을 통해 경제 규모를 확장해야 더 많은 분배를 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불평등은 여전한데, 사람들의 인식이 흥미롭게 바뀌고 있다.

한국행정학회의 2021년도 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적고 출세하지 못하더라도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라고 응답한 사람들이 45.3%이다. 반면에 '다소 바쁘고 피곤하더라도 돈을 많이 벌고 출세도 하고 싶다'라는 사람들은 28.5%에 불과했다. 국회미래연구원 박성원 박사는 고려대 도시미래 연구센터의 최근 강의에서 이러한 현상을 '성숙 사회'의 징후로 해석했다.

성장 사회의 미덕은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개인 건강과 사회 복지도 조직과 국가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 희생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주의적 선거 전략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힘든 시대이다. 효율성 기반의 성장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서로 모순된 체제가 양립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에 동반되는 자원과 예산을 다룰 수 있는 전천후 시장이 요구된다. 설상가상으로 국가라는 큰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역할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구시도 중앙 정부의 예산 지원 없이 지탱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통령과 국회 등과 협력하지 않고서 지역 균형 발전은 불가능하다.

대구 시장은 성장+성숙 사회에 어울리는 도시산업을 찾는 혜안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싱가포르의 유명 관광지로 높은 빌딩 속 실내 식물원이 있다. 자연에 있어야 할 식물을 건물 안에 가두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성장 사회의 그늘이다. 하지만 도시 사람들도 멀리 이동하지 않고도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감상하고 싶다. 양립되기 힘든 모순적 현상이다. 싱가포르는 첨단 기술을 통해서 식물원을 야생처럼 유지하고 사람들도 삶의 여유로움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소위 '식물과 대화하는 전문가' 영어로 plant whisper라는 새로운 직업도 생겨났다. 싱가포르는 생육에 최적화된 기온, 조명, 바람 환경을 만드는 도시산업을 육성하는 데 성공했다.

싱가포르가 해낸 것을 대구가 못할 리가 없다. 자동차 부품 제조는 성장 사회의 상징이지만, 전기차는 성숙 사회의 징후이다. 우스개로 시작해 퍼져버린 고담 대구는 성장 사회의 꼬리표이지만, 스마트 시티 대구는 성숙 사회로 가는 방향 지시등이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꼴찌는 성장 사회의 낡은 지표이지만, 탄소중립 건강도시 미래비전은 성숙 사회로 가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세계는 지금 성장주의 지표로 도시와 국가를 평가하던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다.

지금껏 대구시가 해왔던 모든 정책들이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성숙의 모순적 시기에 어렵게 도전해서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정책들이 꽤 있다. 누가 시장이 되더라도 이 사업들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 말하자면, 생활 속 실험실로 알려진 '리빙랩' 육성과 청년대구 지원과 국제컨벤션 개최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마라톤에 반환점이 있듯이 이 정책들도 성숙의 전환점을 이제 지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어쩌면 '당근마켓'과 유사하다. '브랜드 뉴' 신제품을 구매할지 집 근처의 중고품을 찾을지 고민이다. 국민 5명 중 약 1명이 일주일에 1번쯤 당근마켓을 거래한다고 한다. 성장+성숙 사회의 이중적 욕구가 당근마켓에 투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중고품 구매의 이유는 좋은 가성비다. 슬리퍼 신고서도 거래할 수 있는 편리한 접근성도 있다. 시민들이 대구로 돌아온 올드 보이즈의 가성비를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선거 벽보에서 만나게 될 얼굴들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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