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대구라는 명칭엔 투르크·탁록·천계사상 그림자가 깔려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대구라는 명칭엔 투르크·탁록·천계사상 그림자가 깔려
  • 김종현
  • 승인 2022.04.1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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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한반도의 배꼽곳간, 달구벌
신가유익룡달구벌
탁벌이 달구벌이 된 대구. 그림 이대영

 

진시황 핍박에 유민들이 한반도로 와
김일제 후손, 진한에 망국유민으로

흉노족, 중국북방국경 번번이 침입
수나라, 돌궐족 이간시켜 동서로 분열
고구려 유민, 돌궐 독립에 적극 지원
당나라, 이간책 사용 고구려마저 멸망

◇돌궐과 고구려의 ‘형제의 의리(兄弟之義)’

중국 진시황의 만리장성축성의 핍박과 중원통일 이후 수많은 국가의 멸망으로 인한 유민들이 한반도로 들어왔으며, 김일제의 후손은 산동반도(山東半島)에 살다가 왕망(王莽, BC 45 ~AD23)의 신(新, AD8~ 23)이 멸망하자 진한(辰韓, 斯盧國)에 망국유민으로 망명했다.

다른 한편, 중국에서 불구대천지수로 생각했던 흉노족(匈奴族)에 대해서 중국 주나라의 역사서 ‘주서(周書)’에서 ‘신성한 투르크’족을 ‘돌궐(突厥)’로 음차해 표기해, 북방흉노(北方匈奴)를 별종(別種)으로 취급했다. BC 100년 경 한나라와는 4대 미녀 왕소군(王昭君)을 흉노의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에게 화친책의 상징으로 시집을 보냈듯이, 잦은 중국북방국경을 빈번히 침입했다.

돌궐의 선조 ‘아사나씨(阿史那氏)’는 평양(平凉)의 ‘잡스러운 오랑캐 호족(雜胡)’으로 500호 정도가 도주하여 야금업(冶金業)에 종사했다. 그는 스키타이(塞國, Skitai) 출신이었으며, 동으로 진출하여 유연(柔然,251~310)을 멸망시키고, 토먼(土門)에다 건국해 이리가한(伊利可汗,Iliq Qaghan)이라고 칭했다. 제2대 아이가한(阿逸可汗, Ay Qaghan), 이어 3대 무간가한(木杆可汗, Mukhan Qaghan)이 치세를 확고하게 했으며, 서쪽으로 사산왕조(Sassanian Persia,AD226~65)와 연합해 에프탈(Ephthalites)까지 멸망시켰다. 아무다리야(Amu Darya) 강을 국경으로 트란스옥시아나(Transoxiana)에 발을 들여놓았다. 북쪽으로는 키르기스(Kyrgyz)의 모든 국가를 복속시켰다. 이어 제4대 타발가한(Taspar Qaghan) 때는 북주(北周) 및 북제(北齊)까지 조공을 바쳤다. 제5대 사발락가한(沙鉢略可汗)에 들어와선 패망의 기색이 점차적으로 나타났다. 이때를 틈타 수(隋)나라는 과감한 이간책을 써 돌궐족을 582년엔 동돌궐(東突厥, 583~ 644)과 서돌궐로 분열시켰다.

그럼에도 630년 고구려와 수나라 전투에서 돌궐은 종종 고구려와 협력해 원린근공전략(遠隣近攻戰略)을 구사했다. 한때는 당나라에 내분과 봉기를 야기시켰고, 돌궐의 독립에 고구려 유민들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돌궐과 고구려의 ‘형제의 의리(兄弟之義)’를 당나라는 이간책을 사용, 630년 동돌궐을 멸망시켰고, 651년에는 서돌궐까지 멸망시켰다. 이어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으로 668년엔 고구려마저 멸망시켰다.

이런 끈질긴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돌궐 역시 698년 동모산(東牟山)에 대조영(大祚榮)이 진국을 건국할 때에 혈맹관계를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천년이 지난 1950년 6·25전쟁 때에도 터키의 정부군이 아닌 민간의병대(民間人義兵隊)로 형제나라 한국구출에 참전했다. 오늘날도 한국관광객에게 형제국(Brother’s Country)이라고 친밀감을 보여주고 있다.

 

고조선 망국 유민들, 아사달로 유입
하늘이 만들어준 복된 땅 ‘닭벌’로
원주민 발음 순화돼 달구벌로 변천

진시황제의 선조가 살았던 흉노의 땅
'신성한 투르크의 언덕' 한자로 大丘

◇‘탁록벌’·‘탁벌’이 ‘달구벌’로

BC 2500년경 7개의 산이 모여드는 천혜 요새지 탁록벌에서 5만 전사자를 내는 참패를 당하고 고조선은 기울어져 유리그릇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고조선 망국의 유민들은 조상들이 살아왔던 ‘해 뜨는 곳(아사달)’로 다시 유입되었다. 그 가운데도 ‘하늘이 만들어준 복된 땅(神皐福地)’인 ‘닭벌(Takbol)’로 찾아들었다. 닭벌은 고향 땅 ‘탁록벌(Takrokbol)’혹은 ‘탁벌(Takbol)’과도 이름까지 같았다. 원주민들의 발음에 순화되어 ‘달구벌(talkubol)’로 변천했다. 신라가 건국되고 흉노 후손인 김씨국왕(金氏國王)이 옹립되고부터, 진시황제의 선조가 살았던 흉노의 땅 ‘신성한 투르크의 언덕(Holy TuruK Hill)’을 한자로 ‘대구(大丘, Great Hill)’라고 했다. 일통삼한(一通三韓)의 꿈은 668년에 고구려까지 멸망시키고, 676년 당나라까지 한반도에서 축출시킴으로써 끝맺었다. 선인들이 망국의 한을 품었고 후손들은 신라에 와서 ‘새로운 세상을 펼치자(新世網羅)’는 꿈까지 이뤘다.

그러나 천계신앙(天鷄信仰)에 따라 겨우 경주들(斯盧伐)의 닭 숲(鷄林)에 머물 수는 없다는 호연지기(浩然之氣)로 689(신문왕9)년 ‘닭벌(達句伐)’로 천도를 기획했으나 689년 9월 26일 국왕이 친히 오늘날 경산성(獐山城)을 순행했다는 소식을 들은 경주 귀족들이 천도기밀을 눈치챘다. 곧 바로 거센 반항을 했고 국왕까지 위험에 처했다. 결국 국왕은 10년 프로젝트를 접고 말았다(王欲移都達句伐, 未果). 그러나 757(경덕왕16)년 진사황제의 선인들 즉 흉노족의 ‘투르크 언덕(大丘)’을 지칭하는 이름을 달구벌현(達句火縣)에다 붙이는‘대구현(大丘縣)’ 작업을 완료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많은 중국지명이 있는 이유는 왕조망국의 한을 안고 왔던 망국유민들이 고향을 생각해서 지칭했기 때문이다. 전한의 유안(劉安, BC 179~ BC 122)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에 안휘성(安徽省) 신선이 살았다던 팔공산(八公山)이란 이름을 중악공산(中岳公山)에 붙였다. 조선시대부터 중악공산(中岳公山)을 대신하는 팔공산이 되었다.

신선도사들이 먹었던 두부도 오늘날까지 생산하고 있다. 이는 마치 미국 뉴욕(New York)은 런던 유민들이 ‘요크(York)’를 옮겨 지칭한 이름이고, 스페인 식민지시대 ‘산타마리아(Santa Maria)’라는 도시이름을 여러 곳에 붙인 것과 같다. 다시금 말하면 오늘날 대구(Taegu, 大邱)라는 명칭엔 투르크(Turk), 탁록, 천계사상(天鷄思想)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지구촌 대자연의 섭리가 인간의 몸속에 숨었다

성경에 “태초에 말씀(섭리)이 있었으니, 그 말씀은 대자연(神)과 함께 한다”고 했으며, 보다 자세하게 “태초의 말씀(섭리)은 인간의 몸(肉身)이 되었다”고 요약정리하고 있다.

인도 삼히타베다(Samhita Veda)에서도 “범천왕(梵天王)이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에게 관련된 길흉화복, 뿐만 아니라 대자연의 모든 섭리를 인간에게 영원히 들키지 않도록 감추고자 고민을 했다. 끝내는 세상을 다 뒤집어 봐도 자신의 몸속에는 볼 수도 없을 것이기에 특히 마음속에다가 감추었다”고 적고 있다.

극동아시아 특히 한반도를 중심으로 말(眞理)과 길(道)에 대해서 보다 깊고 넓게 언급하였다. 즉 “글이 말을 싣고 다니며, 말은 길(도)을 싣고 다님으로써 길이 있는 곳에는 말이 따르게 됨이라(文所以載言也. 言所以載道也. 道之所在,言隨).”, “자연스러움, 참됨 그리고 어지러움은 인간 그 자체이기에 이와 말이 합쳐지면 곧바로 진리이고 길(道)이 된다.”, “말이란 평범하면서도 뜻이 깊은 게 좋은 말이고, 자기를 지키는 건 간략하면서도 효과가 넓고 파급되는 게 좋은 길이다(言近而指遠者, 善言也. 守約而施博者, 善道也).”

특히 말이 인간의 몸이 되었음에도 “(세상엔) 숨긴 것만큼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작은 것만큼 크게 돋보이는 것이 없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혼자 있을 때에 가장 신중하며 조심한다(莫見乎隱, 幕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는 사실까지 속속히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一切唯心造)”이라고 “(마치 오늘날 디자이너처럼) 능히 세상만사를 다 디자인할 수도 있다(能畵諸世間)”는 결론을 내기도 했다. 오늘날에선 “말이란 천하를 다스리는 법도이기에 이게 아니면 불가능하다. 여기서 말이란 법도는 어진 다스림을 말할 뿐이다(此言治天下, 不可 無法度, 仁政者, 治天下之法度也)”라는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글·그림=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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