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작품은 어릴 적 달빛에 한지를 스치고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또닥또닥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조금은 두려운 눈빛으로 엄마를 기다리며 한지로 된 문을 한없이 바라보는 데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수채화를 즐기던 나는 종이 위에 몽글몽글 맺힌 물방울이 창틈 사이로 비친 햇살에 반짝이는 영롱함을 화폭에 오래도록 유지되기를 바랐다. 그 염원은 종이와 물과 빛이 만나는 순간 색을 사용하지 않고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하면서 종이에 물을 흠뻑 먹여 긁기 시작했다. 종이를 긁고 덧붙이는 과정이 일련의 수행처럼 느껴졌고 그로 인해 색에 대한 욕심 또한 버리고 순수한 그 자체로 자연의 이치를 따르며 그 흐름에 온전히 나를 맡겨 나갔다.
강물이 바다로 흐르듯 자연은 늘 우리 앞에서 겸손하고 질서가 있다. 나의 작업 또한 어떠한 인공도 가하지 않은 본디 그대로의 자연을 닮고 싶었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나를 자연에 맡겼을 때의 편안함과 여유로운 이 마음을 온전히 예술로 승화시켜 나가고자 한다. 어쩌면 이러한 작업들이 나를 찾아다니는 숨바꼭질처럼 자연의 숲을 거닐 때의 ‘쉼’ 같은 것이 아닐까. 빛에 의해 그 모습이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프레임 속의 형상은 자연과의 일체에 해당된다. 오로지 순수한 물과 한지의 고유한 특성을 이용하여 하나의 형상을 만들고 다시 이 작품을 자연으로 되돌려 놓았을 때 빛에 의해 완성되는 과정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의 본질이다.
※ 홍병우는 계명대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개인전 10회와 단체전 아트페어 및 국내·외 250여회의 전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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