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덕질예찬
[데스크칼럼] 덕질예찬
  • 승인 2022.05.1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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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뉴미디어부장
배수경 뉴미디어부장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주접이 풍년'(KBS2)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나이와 성별 상관없이 스타에 대한 덕질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일명 '주접단'을 재조명한다.

사전적 의미로 '주접'은 '욕심을 부리면서 추하고 염치없게 행동한다'라는 '주접떨다'에서 나왔다. 부정적 의미가 더 강했던 '주접'이라는 단어는 덕후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스타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애정 표현이나 칭찬을 뜻하는 긍정적인 의미로 통용되며 프로그램의 타이틀에까지 거부감없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덕질', '덕후'는 무엇인가? 덕후는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일본어 오타쿠(オタク)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꿔부른 오덕후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특정분야나 사람을 열성적으로 좋아해 파고드는 행위를 두고 우리는 덕질이라 부른다.

'주접이 풍년'은 첫 방송이었던 송가인 편을 시작으로 그동안 임영웅, 영탁 등 트로트가수부터 몬스타엑스, 신화, 하이라이트 등 아이돌그룹, 개그맨 이진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의 팬덤이 출연을 했다. 연예인만 팬덤이 있는 건 아니다. 6회에는 스타강사 김미경이 출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덕질이란 누군가를 통해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덕질을 응원한다.

'주접이 풍년'은 스타보다는 팬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간간히 팬덤을 다뤄왔던 여타 프로그램의 접근 방식과는 차별을 둔다. 팬덤의 상징색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갖춰입고 그들이 좋아하는 스타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도 반응하는 팬들을 처음 봤을 때는 너무 과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주접단의 반대편에 선 가족과 친구들의 감정에 더 동조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방송이 끝날 무렵에는 주접단들의 이유있는 덕질에 응원을 보내게 된다.

덕질을 통해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건강이 좋아지고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 이들의 사연은 심심치 않게 만난다. 덕질의 순기능은 개인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단순히 자신의 스타를 응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쪽방촌 봉사나 산불피해복구, 우크라이나 긴급구호 지원 등의 공익활동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과거에는 10대, 20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팬덤문화가 최근에는 중장년층을 넘어 노년층에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다. 아이들이 다 크고 시간도 많아지고 갱년기로 삶이 무의미해지는 시기에 시작된 덕질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스타의 소식을 챙기고 음원스트리밍과 각종 투표 등 덕질의 기본을 제대로 하려면 자유로운 스마트폰 활용은 필수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성취감과 활력도 자연스레 생겨난다. 

실제로 덕질의 대상은 제한이 없다. 마음을 다해 몰입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덕질이다. 다양한 방면의 덕후로 알려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라톤, 재즈, 야구, 티셔츠 등 덕질의 대상도 다양하다. 그는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덕질라이프를 풀어내는데 최근에는 자신이 소장한 클래식 LP를 예찬하는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를 펴내기도 했다. 가까운 지인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골프 덕후로 거듭났다. 골프의 좋은 점을 100가지라도 댈 수 있다며 골프예찬론을 펼친다. 

이쯤에서 필자 역시 '라포엠'이라는 크로스오버그룹을 덕질 중임을 살포시 고백해본다. '라포엠'은 팬텀싱어3의 우승팀이다. 누군가를 만나기만 하면 라포엠 예찬론을 펼쳐 ‘기승전라포엠’이라는 놀림을 받기도 한다. 

2년 여의 성악가 덕질은 필자 스스로도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덕질 덕분에 처음 해보는 경험도 늘어간다. 라포엠의 무대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야외 페스티벌에서 추위에 떨며 하루종일 앉아 있기도 하고 낯선 도시로의 여정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끔씩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에너지로 가족과 지인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한다. 덕질을 몰랐다면 얼마나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을까 아찔해질 때도 있다. ‘이 좋은걸 왜 안하지’싶어 덕질을 모르는 이들이 안타까워질 때도 있다. 현실도피가 아니라 현생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바로 덕질이다.

뇌과학자 정재승 박사는 '집사부일체'에서 피실험자에게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보여줬을 때 뇌의 전부분이 활성화되는 재미있는 실험결과를 보여준 적이 있다. 심지어 남자친구의 사진을 보여줬을 때 보다 더욱 활성화된 뇌의 모습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덕질 그 자체만으로도 뇌 곳곳을 자극하는 풍성한 자극을 얻을 수 있다니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 건강한 덕질은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강원대 간호대 박현주 교수팀은 2020년 한 박람회장을 찾은 대학생 23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덕질그룹 대학생의 행복감이 눈에 띄게 높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100세 시대다. 이왕 살거라면 재미있게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기에는 덕질만큼 좋은게 없다. 오늘부터라도 자신이 몰입하고 '추앙'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덕질을 해보시라. 삶이 아주 재미있어질거라 장담한다. 

필자를 포함한 모든 이의 덕질을 응원한다. 세상의 모든 '덕후'들이여. '어덕행덕'(어차피 덕질하는 것 행복하게 덕질하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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