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읽기] 세조의 사주와 천기
[류동학의 세상읽기] 세조의 사주와 천기
  • 승인 2022.05.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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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조선전기의 정치적인 분수령은 1453년(단종1년)10월 10일에 발생한 계유정난(癸酉靖難)이다. 계유정난은 수양대군(1417~1468)과 한명회 등이 고명대신(顧命大臣)이자 단종의 보좌 세력인 3정승인 김종서,황보 인, 정분과 이조판서 조극관,우찬성 이양,민신 등 수십 인을 살해,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사건을 말한다.

그리고 거사에 직접·간접으로 공을 세운 정인지·권람·한명회·한확·양정·신숙주·홍윤성 등 43인(수양대군 포함)을 정난공신으로 책봉하였다. 이로써, 수양대군은 2년 뒤에 강제로 단종의 선위(禪位)를 받아 세조로 즉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던 것이다. 이 세력들은 나중에 훈구파로 약 100년 이상 지배층으로 있다가 나중에 사림파에 의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세조는 14년 동안 재위하다가 병으로 차남 예종에게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난지 하루만에 승하하였다.

세조는 세종(정축 을사 임진 신해시생)과 소헌왕후(을해 병술 기미일생)의 제 2자로 1417년 11월2일(음 9월24일)에 태어났다. 그의 사주는 다음과 같다.

세조는 입동이 지난 3일 만인 무토(戊土) 식신이 사령하는 절기에 권력의지와 도전적이며 수집기능이 강한 해월(亥月,돼지달)에 빛을 방사하여 만물을 화려하게 비추는 태양빛인 병화(丙火)일주로 태어났다. 한편 해수 편관과 자수의 정관의 관살(官殺)이 강하면 자녀운이 불리하다.

실질적으로 장남 의경세자는 세조가 즉위한지 3년 만에 요절했고, 차남 예종의 왕후인 장순왕후 한씨는 첫 원자를 출산하고 사망했으며, 얼마후 원자 인성대군마저 사망하였다. 예종도 즉위 13개월 만에 붕어했는데 의경세자와 예종 모두 20세를 못 넘기고 모두 요절했다. 장녀인 의숙공주는 향년 35세로 자식을 두지 못했다.

그리고 손자들도 그리 오래 살지 못했는데 의경세자의 아들인 월산대군과 성종은 모두 30대에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증손자인 연산군도 폐위당해 30세에 비참하게 병사한다. 그나마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은 장수했으나 바보로 살다가 후손도 남기지 못한 채 사망했다. 예종의 차녀인 혜순공주는 만1살에 죽고 장녀인 현숙공주는 자녀가 없었다.

이렇게 세조의 사주는 수기가 강한데 무토의 식신이 사령하는 기간에 태어나 친화력이 좋고 연구,분석력이 좋은 인물이다. 그는 당대의 명필로도 유명했다, 수양대군은 부왕인 세종을 도와서 불교서적을 번역하고 간행하는 일, 악보를 정리하는 일 등을 하였다. 수양대군은 무예를 비롯한 음악, 불교, 어학 등의 다방면에서 깊은 조예를 보였다. 이런 천기는 해중 갑목 편인과 무토 식신의 영향이 크다.

세조의 근본적인 성향과 사회적인 활동성을 나타내는 격국(格局)은 해수의 병화인 편관격(偏官格)이다. 편관은 나와 아군을 지키기 위한 해로운 외부의 적군을 막아내고 위협으로부터 막아내는 사람과 같다, 월지에 편관이 강하면 의지와 목표가 명확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폭력성이 매우 농후한 인물이 된다.
그는 본인과 본인을 따르는 한명회,신숙주,홍윤성 등의 훈구파를 보호하고 본인에게 반기를 든 수많은 인물들의 저항과 투쟁을 철저하게 제거해 나갔다, 그는 동복형제인 안평대군(무술 임술 병인생)과 금성대군을 살해했다. 또한 형인 문종(갑오 을해 계유생)과 합장된 형수인 현덕왕후 권씨의 무덤을 풍수상 최악의 장소로 이장시키고 조카인 단종도 제거했다. 또한 세종의 후궁이자 계모인 헤빈 양씨와 이복동생(명리에서는 겁재)인 한남군,수춘군,영풍군 등을 제거했고 숙모인 성령대군의 부인을 폐서인했다. 또한 단종의 매형이자 경혜공주의 남편인 정종도 제거했다.

1456년 병자년에 일어난 단종복위운동에 관련된 성삼문,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김문기 등을 죽였다. 이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된 자들은 사육신을 포함해 70여 명에 이르고, 일가까지 포함하면 수백 명이 죽거나 노비로 전락했다.

세조는 정희왕후 윤씨(무술 갑자 정사일생) 사이에 장남 덕종(아내가 인수대비)과 월산대군, 명숙공주, 성종의 손자녀를 두었다. 또한 의숙공주(정인지 며느리)와 둘째 아들인 예종과 인성대군과 제안대군의 손자를 두었다. 한편 후궁인 2명으로 근빈 박씨 사이에 덕원군과 창원군을 두었고, 소용 박덕중 사이에 이아지를 두었다.
한편 세조시기의 과정은 현대사에서 12·12쿠데타와 1980년 5·18광주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집권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비교되기도 한다.

세조는 정당성이 취약하여 공신 집단에 권력을 집중시키고 이들과 자신이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집단이 훈구세력이었다.

지금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전두환 군부세력에 저항한 문재인 정부의 주도세력인 86운동권세력에 대한 퇴진이 부각되고 있다. 아마도 2024년 총선이 그들의 정치적인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역사는 반복된다. 정치세력은 시대적인 소명을 다하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 역사적인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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