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신라초기까지 윷판모양 제천단에 천신제사 지내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신라초기까지 윷판모양 제천단에 천신제사 지내
  • 김종현
  • 승인 2022.08.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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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천신제를 지낼 수 있는 황제국서 제후국 신라로 격하
윷놀이, 농경사회 희노애락을 예술로
28개 별자리 그려 계절따른 지혜 담아
문화적 수단·생활양식 방법으로 사용
망자를 위한 ‘칠성판’ 무덤에 넣어 매장
고인돌의 집단배치도 윷판과 유사해
최초 거석문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고서지학 예기왕제 규정에 제 못 지내
윷판모양 제천단, 지금은 흔적도 없어
천신제제단
천신제 제단은 28수 별자리를 돌 제단으로 배치한다. 그림 이대영

◇옛 고향이었기에 귀천(歸天)해야 하는 별나라

한반도 윷판놀이는 농경사회의 희노애락을 예술(놀이)로 승화시켜 늦어도 고조선시대에 형성되었다.

농경시대의 기상변화(날씨, 기후 및 온도)와 농경기술(돌려짓기, 계절경작, 파종시기 등)을 예술차원에서 농경놀이문화의 전수방법론이었다. 북두칠성을 중심(天元)으로 돌아가는 28개 별자리를 그려서 농사계절에 따른 지혜를 소복이 담았다. 단순하게는 紫微垣(同心圓)으로, 좀 더 명확하게 삼태성(三台星, 南方七宿 太微垣), 북두칠성(北斗七星, 天樞星, 紫微垣) 혹은 남두육성(南斗六星)의 별자리를 새기기도 했다. 더 나아가 ‘시시때때 풍년이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윷판기원(柶板祈願)으로 암각화를 새겼다.

윷판이 농경천문학의 축소판이라는 주장은 조선시대 1600년경 개성송악 출신 김문표(金文豹, 1568~1608)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을 큰 동그라미로 그리고, 우주를 4등분해서 사분월(南東四分月), 햇살이 돋아나 우주의 밥그릇(宇宙飯器)을 마련하는 춘분길인 하반월(下半月), 추분의 길은 동반월(東半月) 모양으로 돌고, 가장 낮이 긴 하지길은 전체를 한 바퀴 도는 보름달의 길(滿月道)이 된다.

윷판이 단순하게 윷놀이(柶戱, stick dice)에만 이용된 것이 아니고 다양한 문화적 수단과 생활양식의 방법으로도 사용되었다. 농경사회에서는 농경책력, 농사일정, 작물휴경, 농경시필기 등에 대한 지혜를 함축시켜 놓았다. 신앙과 자아인식에서도 “먼 별나라에서 와서 이곳 땅에서 살다가 죽어서 다시 돌아가야 할 이상국의 노정도”로 인식되었다. 삶이란 별에서 와 이 땅에 태어나는 것(生還地於星)이고, 죽음이란 이 땅에서 고향 별나라로 돌아가는 것(死歸星於地)으로 믿어왔다. 그래서 윷판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고향 별나라의 노정도(鄕星路程圖)였고, 죽은 사람(망자)에겐 돌아가야 하는 고향 별나라의 귀천노정도(歸天路程圖)”였다. 망자를 위한 윷판을 ‘칠성판(七星板)’이라고 해서 무덤 속에까지 넣어 매장했다.

유사한 오늘날 귀천이벤트로는 미국 중앙정보국이나 우리나라 국정원에서 순국직원들은 하늘의 별이 된다(Martyrs become stars in the sky)고 믿고, 상징전시판(symbol board)에다가 별표(aster)로 표시하고 있다. 2016년 8월 28일 이탈리아 중부산악지대 강진사고로 ‘동생을 품은 9살 소녀의 죽음, 이탈리아를 울렸다’라는 뉴스에서 소방관이 소녀에게 쓴 “…나는 하늘에서 천사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너는 밤하늘의 빛나는 별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안녕, 줄리아. 너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편지쪽지가 관 옆에 꽃과 같이 놓여 있었다.

◇김춘추의 제왕의 꿈

서양의 거석문화(mega-lithic culture)에서도 태양 혹은 별자리를 표시하는 영국 솔즈베리(Salisbury) 스톤헨지(stonehenge) 혹은 프랑스 브리티니(Brittany, France) 지역 등 스톤서클(stone circle)에서 볼 수 있는 BC 3000년경 ‘거석 紫微垣(mega-lithic central circle)’에서 별자리를 표시했다.

한반도에서도 고인돌의 집단배치에 있어 윷판과 유사하게 별자리를 표시했다. 뿐만 아니라 최초 윷판 紫微垣 모양으로 쌓은 거석문화는 기록상 BC 2283년 오늘날 강화도 마니산(摩尼山)에 쌓았던 참성단(塹星壇)이었다. 이후 천신제(天神祭)를 지냈던 제천단(祭天壇)이 원형이 되었으며, 아쉽게도 유적으론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신라초기까지는 윷판모양 제천단에 천신제사를 지낼 수 있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정란황음(政亂荒淫)으로 폐왕이 된 제25대 진지왕(眞智王)의 손자 김춘추(金春秋)의 제왕을 꿈을 실현함에 기인하고 있다. 그는 아들 김인문 등을 인질로 전당잡히고 제후국 서약을 했다. 즉 대당이십이제후국(大唐二十二諸侯國) 가운데 하나로 국왕 지위 보장과 나당연합군 결성을 약속받았다. 대당사대충성을 보이고자 당의 연호사용과 당관복제(唐官服制, 649년)는 물론이었다. 국가의 자존심이었던 천신제를 지낼 수 있는 황제국 지위를 포기하고 제후국 신라로 사직제 혹은 명산제로 격하됨을 감수했다.

고서지학(古書誌學) ‘예기왕제(禮記王制)’에 따르면 “천자는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제후들은 사직단에서 제사를 지낸다(天子祭天地, 諸侯祭社稷)”라는 규정에 따라 신라는 천신제를 지내지 못하고, 사직단이나 명산제만을 지냈다. 따라서 조선 ‘국조오례(國朝五禮)’에서도 천신제에 대해선 일체 기록하지 않고 있다. 특히 신라시대 오악제(五岳祭)는 제후국으로 명산대천에 제사를 올렸다(諸侯祭名山大川之在其地者). 신라 중악이었던 달구벌의 팔공산(中岳公山)도 명산제를 올렸다. 중악공산은 통일신라 때엔 윷판에 비유하면 북극성 혹은 자미원(紫微垣)에 해당하는 천원(天元)이라는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신라는 ‘금성의 나라(金星國)’임을 자칭하면서도 성신제(星神祭)마저 지낼 수 없었다.

만약 통일신라 이후라도 천신제를 지냈다면 제천단배치도는 윷판과 같았다. 28수 별자리를 돌 제단으로 다 배치하며, 만약 돌 제단으로 다 배치할 수 없으면 신선돌(神立石), 솟대(蘇塗) 혹은 신목(神木)이라도 설치했다.

구닥다리 같은 소리일지는 모르나 학문적인 연구를 위해 제천제의 의식절차(笏記)를 소개한다면, 개의(開儀), 참영(參靈), 전폐(奠幣), 진찬(進餐), 주유(奏由), 주악(奏樂), 원도(願禱) 및 사령(辭靈)이란 순서로 거행했다. 제단에 진설(陳設)은 천수(天水), 천래(天來), 천과(天果), 천탕(天湯), 천채(天菜), 사지(絲贄), 곡지(穀贄), 화지(貨贄), 천반(天飯)을 올렸다. 인간에게 제전(offering)이란 인간의 ‘피의 되갚음(血報復 : bloody revenge)’을 ‘동물의 피를 대신해서 속죄(代贖, atonement on behalf of animal blood)’하는 의식이었다. BC 1445년경 이와 같은 사실들이 모세(Mose)가 기록한 레위기(Leviticus)에서 천신제에 대한 내용으로 기록돼 있다. 보다 자세하게 언급하면, 목적, 제물 및 방법에 따라 번제(燔祭, burnt offering), 소제(素祭, meal offering), 화목제(和睦祭, peace offering), 속죄제(贖罪祭, sin offering) 및 속건제(贖愆祭, guilt offering) 등으로 구분했다.

한반도의 기록은 이보다 앞선 BC 2283년경 “마니산에 참성단을 만들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築祭天壇於摩理山).”라고, ‘단군세기(檀君世紀)’의 기록이 있다. 당시 대부분 제물(供犧幣物)을 태워 ‘간절함(기원)을 하늘에 닿게 하고자(懇祈傳于天) 번제(burnt offering)를 지냈다.

시골에서 어릴 때에 자주 봤던 기우제(祈雨祭)마저도 땅이 갈라진 개벌에다가 나뭇가지와 그 위에 온갖 제물을 올려놓고 태워 하늘에 올라감을 하늘에 닿는다고 믿었던 번제였다. 과거에도 속죄 이후의 화목을 도모하고자 제물을 나눠먹는 음복(飮福)의식을 가졌다. 주자가례에서 음복을 “신으로부터 받은 복을 나눠가지는 의식(神福分儀)”으로 봤다. 조상에 대한 제사에서도 강신(降神) → 참신(參神) → 진찬(進饌) → 초헌(初獻) → 아헌(亞獻) → 종헌(終獻) → 유식(侑食) → 합문(閤門) → 계문(啓門)→ 진다(進茶) → 철시복반(撤匙覆飯) → 사신(辭神) → 분축(焚祝) → 철찬(撤饌) → 음복(飮福) 순서를 지켰다. 음복을 위해 제사가 존재했기에 가장 중요시했던 게 이렇게 복합한 절차였다.

글=권택성<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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