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신명연의 산수화훼화도, 첩섬세한 붓질에 놀라고 따스한 가을꽃 향연에 취하다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신명연의 산수화훼화도, 첩섬세한 붓질에 놀라고 따스한 가을꽃 향연에 취하다
  • 이상환
  • 승인 2022.10.05 22: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음력 8월에 피는 ‘목부용’
모란 오해살 만큼 풍성한 잎
안평대군 정원서 가장 빛나
조선 후기 中서 들어온 ‘추해당’
가녀린 아름다움으로 큰 인기
별명은 ‘애간장 끊어지는 꽃’
해를 바라보는 향일화 ‘황촉규’
꽃잎 벌어지기 전 술잔 모양
왕실 술잔 빗대어 충심 내포
흔히들 말하는 나들이하기 좋은 10월이 되었다. 전국 어디를 가든 자연의 색이 다채롭고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3년 만에 대면으로 열리는 가을축제도 한창이다. 가을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단풍이 시작되기 전에 봄에도 못한 꽃놀이를 떠나봐야겠다. 인터넷 검색어로 가을정원이라는 키워드를 치니 의외로 많은 화초들이 나왔고 또, 가을정원 축제도 많이 있었다. 봄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서늘해진 기온을 견디어 피우는 가을 화초의 빛깔이 말쑥하고 또 산뜻해 보인다.

오늘은 가을 정원의 화초를 주제로 아름다운 가을빛을 찾아보기로 했다.

조선 시대 19세기 문인 화가로 다양한 화초를 채색으로 표현했던 화가 애춘(靄春) 신명연(申命衍, 1809~1886)의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가을꽃의 색조를 그 시절의 감각으로 감상해보자.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신명연의 꽃 그림을 응용한 디자인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신명연의 작품이 전해주는 색조 배합은 화려하고 새끗한 색채에 익숙해져 버린 현대인들에게 색의 정서를 차분하게 일깨워주고 파스텔 톤의 따뜻함이 안락함을 안겨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신명연의 꽃 그림을 대표하는 작품이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산수 화훼화도첩(山水花卉畵圖帖)》이다. 이 화첩에 그려진 가을꽃은 <목부용>, <추해당>, <황촉규와 안래홍> 그리고 <국화>이다.
 

목부용-신명연필국립중앙박물관-1
신명연 필 산수화훼도(山水花卉圖) 중 일부 세로 33.1 X 20cm, 견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1·목부용(木芙蓉)>

가을바람 속에 화사한 분홍색으로 탐스럽게 흔들거리는 꽃이 ‘부용(芙蓉)’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꽃을 ‘부용’이라 칭하는 전통이 매우 굳어서, 이 꽃은 특별히 ‘목부용’ 혹은 ‘목련(木蓮)’이라 불렸다. 또 다른 이름은 거상화(拒霜花, 서리를 물리치는 꽃)라고도 한다. 조선후기 실학자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를 보면 목부용, 목련, 거상화가 모두 같은 꽃이며, 음력 8월에 핀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봄날에 피는 목련은 일본어 목련의 유래했다. 가을날 주변을 살피면 목부용을 찾을 수 있는데, 대개는 홑꽃잎으로 핀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 속 꽃잎 무성한 품종의 목부용은 많은 이에게 모란으로 오해받는다. 이 그림 속 꽃이 모란이 아니라 목부용인 이유를 들자면, 꽃 위로 층층으로 맺혀 올라간 꽃봉오리와 그 모양, 넓적한 잎사귀, 미세한 주름이 있는 꽃잎 등이다. 조선 초기 성삼문이 안평대군의 정원 비해당(匪懈堂)을 장식한 멋진 꽃들 가운데 거상화를 들어 최고로 사랑하노라고 읊었을 만큼, 목부용은 가을 정원의 으뜸이었다. 신명연이 목부용을 이 화첩에 이렇듯 정성스레 그려 넣은 이유도 그러하다.
 

추해당-신명연필국립중앙박물관-2
신명연 필 산수화훼도(山水花卉圖) 중 일부 세로 33.1 X 20cm, 견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2·추해당(秋海棠)>

오늘날 베고니아(Begonia)로 알려진 꽃의 한 종으로, 추해당은 그 이름이 말해주듯 가을꽃이다. 연보라색 동그란 꽃잎이 방울같이 앙증맞지만, 자칫 햇빛을 오래 받으면 꽃이 힘을 잃고 수그러져 그 모양이 눈물방울 같아진다. 추해당은 중국에서도 16세기에 이르러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며, 17세기말~18세기 초에 문인화가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을 필두로 한 주변 문인들에 의해 수국, 수선화와 더불어 국내에 유입된 화초이다. 조선 후기에 중국에서 들어온 이 꽃의 가녀린 아름다움에 조선의 문인들은 따뜻한 관심을 표현했다. 신위(申緯, 신명연의 아버지)는 홍색 노을에 물든 추해당을 바라보며, 눈물로 시를 쓴 중국 여인과 문사를 떠올렸고, “인간 중에 나 또한 정이 많은 사람이라 흰 이슬 내린 정원에서 슬퍼 읊조리네”라고 노래했다. 추해당은 일명 ‘단장화(斷腸花, 애간장이 끊어지는 꽃)’라고도 한다. 그 사연을 들어보면, 옛날에 한 부인이 님을 사모하며 늘 북쪽 담장 아래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훗날 그곳에서 풀이 자랐고, 그 꽃이 아름다워 단장화라 불렀으니 이가 곧 추해당이라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원나라 도종의(陶宗儀, 1329-1410)가 엮은 <채란잡지(採蘭雜志)>에 전한다.
 

황촉규-신명연필국립중앙박물관-3
신명연 필 산수화훼도(山水花卉圖) 중 일부 세로 33.1 X 20cm, 견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3·황촉규(黃蜀葵>)와 안래홍(雁來紅)>

‘촉규’는 백, 분홍, 홍색으로 여름에 피는 접시꽃이며, ‘황촉규’는 노란색으로 가을에 피는 닥꽃의 일종이다. 황촉규는 해를 바라보는 꽃이라고 하여 ‘향일화(向日花)’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으며, ‘향일’은 충성을 상징했다. 이 그림 속 황촉규는 꽃잎이 활짝 피어 벌어진 모습이지만, 이렇게 벌어지기 전에는 오목한 술잔모양이라 옛 황실과 왕실에서 황금과 은으로 혹은 청자로 빚어 황촉규를 만들어 술잔으로 사용하며 ‘충심(忠心)’의 덕목을 노래했다. 규화는 종류가 많지만 황금술잔에 비유되던 황촉규가 가장 아름다운 꽃이며, 가을 규화라고 ‘추규(秋葵)’라 불렀다. 옛 글에 종종 나오는 ‘규심(葵心)’이란 성실하고 충성스런 가을 추규 즉 황촉규의 향일심을 뜻한다. 화조화의 역사 속에서 중국 명나라 초기와 조선시대 초기에 유난스레 유행했던 그림이 맨드라미 홍색과 황촉규의 황색이 어울린 그림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맨드라미와 황촉규의 화면은 그러한 유행의 반영이었다.

이 그림의 황촉규 뒤에 나란히 선 한 포기의 홍색 풀이 안래홍(雁來紅)이다. 기러기가 날라 올 때 붉게 물든다고 ‘안래홍(기러기 안, 올 래, 붉을 홍)’이 되었다. 신명연의 아버지이자 문인화가인 신위(信緯1769~1847)는 안래홍을 아끼어 백자 화분에 심고 감상하며, 「안래홍」이란 시를 남겼다. 가을에 붉어지는 이 홍색 풀의 다른 이름은 ‘추홍(秋紅)’이었다.
 

국화-신명연필국립중앙박물관
신명연 필 산수화훼도(山水花卉圖) 중 일부 세로 33.1 X 20cm, 견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4·국화(菊花)>

그림 속 백색 국화가 몹시 탐스럽고 그 위로 청색 국화가 이색적으로 올라 있다. 옛 문인들에게 국화라 하면, 은일시인(隱逸詩人) 도연명의 이야기와 어울린 황색 국화(黃菊)가 가장 먼저 떠올랐고 시문에서도 가장 많이 읊어졌건만, 이 그림에는 황색 국화가 그려져 있지 않고 백색과 청색의 국화가 그려져 있다. 우선 백색 국화의 사연은 조선 후기 문인들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최고의 위치로 부상한 멋진 국화는 ‘백학령(白鶴翎)’이었다. 학의 하얀 깃털을 떠오르게 하는 백색 국화를 말한다. 신위(信緯1769~1847)도 백색 국화를 바라보며 겨울을 능가하는 아름다운 꽃이라 읊었다. 또한 오행(五行)의 법칙으로 말하자면, 가을은 금(金)의 때요, 금의 색은 백색이다. 차고 엄숙한 가을의 덕목이 백색으로 어울린다. 그리하여 가을의 백색 꽃은 가을의 덕을 온전히 말해줄 수 있다. 이 그림 속 커다란 백색 국화는 백학령의 인기를 반영하면서 가을의 색으로도 의미화 되었다. 그 위의 청색 국화는 신위(信緯1769~1847)가 실로 아낀 ‘남국(藍菊)’이 분명하다. 신위(信緯1769~1847)는 쪽빛 자그마한 국화가 어여쁜데 이름이 없다고 하며, ‘남국’이란 이름으로 거듭해서 읊었다. 신명연은 부친이 사랑한 남국을 그의 국화 그림에 종종 그려 넣었다. 남국은 남보라색 옅은 들국화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가을에 피어나는 꽃들의 그 기원과 빛깔을 보시고 마음이 좀 훈훈해 지셨는지...그 사연도 깊다는 사실을 아셨는지....

가을에 피어난다고 그들이 가을부터 싹을 틔운 것이 아니다. 이른 봄부터 싹을 틔우고, 아주 오랜 시간 준비하여 꽃 한송이를 내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가을꽃의 향기는 봄꽃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아마도 그것은 꽃 한송이를 피우기 위해 수고한 시간이 훨씬 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는 지난 계절의 모든 순간들이 들어있어 향기가 더 깊은 까닭이다.

그런 의미로 가을꽃에 대한 깊은 사연과 고운빛깔과 향기를 여러분의 가정으로 보내드린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