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김치찌개와 마음의 가난
<대구논단>김치찌개와 마음의 가난
  • 승인 2011.01.09 14: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 민 건 대구대 영어교육과 교수

며칠 전 어느 선술집에서 시킨 황태 안주를 떠올린다. 겨울 내내 그 햇살을 받아 소박한 술상에 오른 황태는 말이 없다. 그 희생의 경이로움에 숙연해진다. 그러는 동안, 눈이 어김없이 내리고 있다. 더불어 작년 겨울의 잔상들이 올해 1월에 머물러 추위가 여전하다. 인간들의 이기로 인해 자연의 순환이 가끔씩 삐걱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술집의 낡은 창문너머 시야에 들어오는 눈의 풍경이 소슬하지만 아름답다.

잠시 마음의 사치를 부리는 동안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남루한 사내가 들어온다. 어디서 빌려 입은 듯 헐거운 외투와,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뒤축을 구겨 끌다시피 하여 들어온 사내는 돈을 구걸한다. 조그만 선술집의 악취를 풍기며 불현듯 나타난 사내에게 사람들은 시선을 외면하거나, 혹 자기 자리로 오지나 않을까 경계의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주인이 어찌어찌하여 이 경계심을 풀어 주리라고 믿고 있었던 손님들은 주인의 반응에 약간 놀란 눈치였다. 그녀는 그를 빈자리에 앉히더니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가 잠시 후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나는 김치찌개와 한 공기 가득 밥을 내어와 숟가락을 이 사내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었다.

설익은 밥을 먹는 사람들에게 하루란 얼마나 캄캄하고 견디기 힘든 시간일까? 현대사회는 이제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사이에 소통의 단절을 앓고 있다. 내가 그에게 보냈던 경계의 시선은 결국 의도적인 소통의 단절에서 비롯된 비루한 마음의 가난이었다. 눈을 흠뻑 맞고 들어온 이 사내가 몸의 가난을 경험하는 동안, 나는 마음의 가난을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그날 밤의 눈은 절망의 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절망의 끝에서 투명한 것들과 투명하게 싸우면서 바라건대 일상이 치열하게 비어가기를 기대하였던 나의 시선은 타인을 향한 이기주의에서 발생한 허위의식 이였던 것이다. 결국 내가 잠시 눈 내리는 풍경을 핑계로 술자리를 만드는 동안, 그는 생애에 가장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칼 권하는 사회라는 말을 듣는다. 신문을 읽다가,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거리의 노숙자를 내려다보다가, 응급실 촌로의 퀭한 눈망울을 바라보다가, 직장 상사의 등 뒤에서 누군가 불쑥불쑥 권하는 칼 한 자루는 평생 나를 이끌고 온 욕망의 칼, 격정의 칼, 분노의 칼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상의 그런 아픔을 다시는 헤엄쳐 돌아올 수 없는 세상 밖으로 밀어내 버린 것이다. 그 날은 나 역시 누군가를 향해 생채기를 내기 위해 칼을 갈고 있었다.

자리를 걷어내고 길을 걷다가 어느 길거리에서 좌판을 벌이고 구두를 파는 노점상을 보게 되었다. 좌판 한구석에 주인을 기다리는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문득 식사 내내 손님들의 경계의 시선 속에서 서둘러 김치찌개를 먹고 있었던, 먼지가 끼고 뒤축이 닳은 그 사내의 구두를 생각한다.

그의 구두처럼 우리가 보냈던 그 불쾌한 시선들이 닳아버린 마음의 가난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느 구두점에서 산 우리들의 구두가 영롱하게 빛이 나듯 바로 여기서 우리는 서로에게 삶의 주목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삶은 소외 될 수 있고, 어느 누군가의 삶은 주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소외와 주목의 시선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감추어진 것이라면 그 시선은 왜곡된 것이고 자기만의 일상에 집착하는 시선의 병(病)인 것이다.

장자의 `대종사(大宗師)’편에 보면 “너는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이고 있구나” 라는 말이 있다. 결국 샘의 물이 마르면 고기들은 땅위에 함께 남게 되고, 서로 수분을 공급해 주기 위해 침을 뱉어내고 거품을 내어 서로를 적셔주지만, 하지만 이것은 강이나 호수에 있을 때 서로를 잊어버리는 것만 못하다.

자본의 노예가 되어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자본으로 무장된 몸의 가난과 마음의 가난을 동시에 경험하는 시선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날의 김치찌개가 그 사내에게는 절망의 끝에서 찾아 온 희망의 동기였고, 나에게는 연민으로 다가 온 마음의 가난 이였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