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갤러리] 오정향 작가의 '기록된 기억'
[대구갤러리] 오정향 작가의 '기록된 기억'
  • 승인 2023.10.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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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향작가의-기록된기억
오정향 작가의 ‘기록된 기억’


작품의 소재가 되는 공간은 주로 용도가 바뀌어 새로운 모습이 되었거나 시간의 지남에 따라 사라진 공간이다. 재개발로 사라진 50년 된 아파트,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모교, 이제는 볼 수 없는 골목 안 동네 빵집, 대형 상가가 들어선 학교 앞 작은 분식집이 그런 곳이다. 작품의 프로세스는 간단하다. 공간에 대한 기억과 이미지를 연결하여 하나의 풍경으로 만드는 것이다. 작업의 첫 번째 공정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라진 공간에 대한 기억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만드는 일이다. 공간의 기억을 영상 시각언어로 변환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 기억을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만드는 작업으로 재현과 창조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사람의 기억은 기록된 데이터와는 달리 기억 당사자의 감정이나 생각, 삶의 역사가 모두 반영되어있다. 사람의 기억은 상당히 자의적이고 선택적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미세한 오류가 생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인간 기억의 특성은 기억의 주인공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한 특징을 만들어 내게 되고 이 부분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같은 공간을 기억하더라도 공통적인 부분과 함께 미묘하게 다른 개개인의 개별적 기억이 존재한다. 기억을 받아들이고 작품화하는 작가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작가 본인의 경험과 생각, 감정이 또 다시 반영된다. 이런 기억의 전달 과정에서 개별 기억들 안에서 공통성, 유사성을 발견하여 작품에 반영하게 된다. 작품의 뿌리는 실제 기억에 있지만, 작업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은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서 나아가 기억을 공유하는 행위와 이해, 공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은 기억 진술을 기반으로 창작을 시작하지만 작업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새로운 공간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영상이 만들어지면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 작품의 두 번째 공정이다. 이 단계에서는 인터렉티브(interactive)라고 부르는 상호작용 장치를 적용하게 되는데 관객이 영상에 관여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내고 영상 콘텐츠와 결합한다. 예를 들어 관람자가 작품에 다가가면 센싱을 통해 영상이 변하거나 관람자가 의자에 앉으면 압력이라는 자극을 통해 목소리가 전달되는 방식을 통해 관람자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인터렉티브(interactive)방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작품의 시작과 끝에 모두 사람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작품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작품이 놓인 전시장에서 시각적으로 보이는 유일한 사람은 작품을 보고 있는 관람자이고 또 다른 사람은 시각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작품 제작 과정에서 기억을 공유해준 기억 공유자이다. 물리적으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작품을 중심으로 유사 기억을 통해 공감하고 또 자신만의 특별한 기억을 찾아내고 소환하는 과정을 차례로 겪게 된다. 이 과정은 작품에서 아주 중요하다.
공간의 풍경에는 그곳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공간의 의미는 그 안에서 매일의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무게와 같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 공간에서 만들어지고 부서지고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일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 생각해본다. 아름다운 외관이 주는 강렬한 인상인지 아니면 일상적이고 소소하지만 삶의 의미가 담긴 찰나의 풍경일지.

오정향 작가
※ 오정향 작가는 경북대 예술대학 미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대구 문화예술회관, 대구 봉산문화회관 등에서 8회의 개인전과 대구미술관과 대구예술발전소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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