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낡은 양말이 남아 있다니
구멍 난 양말 알전구를 넣어
짜깁기해서 신었던 유년의 한때
지금도 양말은
따로 바닥을 비벼야 때가 빠지는
거추장스러운 빨랫감
지친 발을 보호해 주는 더없이 고마운 물건인데
남 앞에 내보이는 걸 부끄러워하네요
그런 양말을 잘 위로해 주는 우리가 될 수 없을까
양말에 까다로운 남편 양말
알아서 챙기라고 한 번도 사 준 적 없는데
비 내리는 날 짙은 냄새 베고 누워
서로 걸어온 먼 외곽을 생각하며
덤에 덤을 얹었다고 낡은 양말처럼 툭툭 털고
아무 데서나 스르르
잠들 수 있다면
◇박경순= 1998년 시집 ‘물푸레나무의 신화 속에서’로 작품 활동시작. 2008년 문예진흥기금 수혜. 시선사 한국대표서정시 100인선 선정. 시집 ‘네가 부르는 소리에 내가 향기롭고’, ‘디테일이 살아나는 여자’ 외 다수.
<해설> 양말이 시가 되고 있다. 땀내 밴 양말을 통해서 걸어온 먼 길이 그려지고 발의 소중함을 감싸주는 양말의 의미가 한층 되새겨지고 있다. 자신이 아닌 남편이 신고 벗어놓은 양말을 베고 눕는다면 남편이 걸어온 빗길의 냄새가 나지 않을까? 그러나 대부분 왠지 새 양말에 발을 끼워 넣을 때는 새로운 기분이 생기지만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말은 아내의 찡그리는 인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번쯤 당신 발에서 먼 길 걸어 나에게 오기까지의 어떤 설레임의 냄새가 난다고 말하면 남편은 속마음 들킨 듯, 피곤해도 다시는 냄새 나는 양말을 아무렇게나 방바닥에 내팽개치듯 벗어놓지는 않을 듯.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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