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경주 최부자’ 400년 신화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경주 최부자’ 400년 신화
  • 승인 2012.12.2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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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식 한국선비문화수련원 전문연구위원 철학박사
대한민국 지성을 상징하는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을 선정했다. ‘세상 모두가 혼탁하다’는 뜻이다. 거세개탁은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B.C 340-278)이 쓴 「어부사 漁父辭」의 한 대목이다. 굴원은 전국시대 초나라의 정치인이자 시인으로 패권을 꿈꾸는 진나라를 경계할 것을 충심으로 간청했다. 하지만 충언은 귀에 거슬리는 법, 주색에 빠진 초나라 경양왕은 그를 멱라강으로 유배 보냈다. 굴원은 “세상이 모두 혼탁하지만(擧世皆濁) 나 홀로 깨끗하리(我獨淸), 모든 사람들이 술에 취해 있지만(衆人皆醉) 나 홀로 깨어있으리(我獨醒)”라고 노래했다. 그는 차라리 상강(湘江)에 뛰어들어 물고기 밥이 될지언정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쓰지 않겠다는 강고한 의지를 표명하며, 멱라강에 몸을 던져 비운의 삶을 마감했다. 결국 초나라는 진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열전』에서 굴원의 지조는 연꽃처럼 진흙 속에 있어도 더럽혀지지 않으며, 일월처럼 빛나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을 선정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굴원과 같은 지조와 충심으로 혼탁한 세상을 향하여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것일 게다. 그렇지 않으면, 초나라와 같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절박한 외침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경주 최부자’ 400년 역사와 신화 속에서 “세상이 모두 혼탁하지만 나 홀로 깨끗하리”라고 외칠 수 있는 우직스러운 용기를 발견하게 된다.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경주 최부자 신화는 혼돈의 극단으로 치닫는 대한민국 사회의 훌륭한 사표가 되고 있다. 경주 최부자 가문은 9대 진사, 12대 만석군 집안으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명문가이다. 흔히 부는 삼대를 유지하기 어렵고(부불삼대富不三代) 권력은 10년을 유지하기 어렵다(권불십년權不十年)는 말이 있지만, 경주 최부자 가문은 조선중기 임진왜란 이후부터 해방 이후에 이르기까지 12대에 걸쳐 400년 동안 만석의 부를 유지해왔다. 우리가 경주 최부자 가문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12대 만석의 재산을 유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사회지도층으로서 져야할 사회적 책임을 단 한 번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주 최부자의 진원지인 최진립(崔震立 1568~1636)은 아우와 함께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참전했고, 병자호란 시에는 69세의 노구를 이끌고 참전하여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러한 선조의 행적과 유지는 “국가가 없이는 부자도 없다”는 가문의 유훈이 되어 전하고 있다. 특히 최부자 가문의 육훈(六訓)은 사회적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사회지도층과 정경유착의 깊은 부패 고리에 익숙하고 서민의 골목상권까지 빼앗아가는 대기업의 후안무치에 경종을 울리는 내용이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이상 벼슬을 하지 말라. 둘째, 만석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셋째,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넷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다섯째,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여섯째,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경주 최부자 문중의 이러한 실천은 국난을 맞이하여 더욱 빛났다. 마지막 최부자 최준(崔准1884~1970)은 독립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백산상회를 설립했고, 광복회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최준의 동생 최완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사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해방 이후 최준은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대구대학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에 헌신했다. 이후 1964년 최준은 무상으로 삼성의 이병철에게 대구대학의 운영권 넘겨주었다. 대구대학을 최고의 대학으로 운영하겠다는 약속이 유일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세칭 사카린 밀수사건에 연루된 이병철은 2년 만에 대학의 운영을 포기했다. 1967년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이 합병되어 영남대학이 탄생하여 정권의 실세들이 학교를 장악하게 됨으로 인해 경주 최부자 400년의 꿈과 이상이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나눔과 공존의 이상을 지향했던 경주 최부자 정신은 서양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전에 이미 실천되었던 인류의 보편적 가치였다. 이렇게 볼 때, 경주 최부자 정신은 한 가문의 영욕을 넘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신이요, 세계인들이 지향해야 할 인류문명의 유산임에 분명하다. 그러므로 조속히 근대사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고통과 좌절의 시대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최부자 정신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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