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 ‘남산의 부장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백정우의 줌인아웃] ‘남산의 부장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 백정우
  • 승인 2020.01.3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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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그날 이후, 보안사령관은 대통령 집무실에 숨어들어 임자 없는 금고를 열고 내용물을 쓸어 담는다. 터질 듯한 군용 더블백을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관객을 응시하는 그의 얼굴. 영락없는 도둑 형상이다. 서서히 고개를 돌려 주인 없는 의자를 주시하는 찰나의 쇼트. 이제 달포가 지나면 그의 시대가 열릴 터였다. 독재자를 겨눈 중정부장의 총구가 엉뚱한 곳을 향해 미소 짓는 순간이다. 국민에게 돌아갈 민주주의를 침탈하려는 도적의 음흉한 미소에는 피도 눈물도 없었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벌어진 대통령 시해사건은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수차례 재현되어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해도 감독은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을 것이다. 영화가 이를 위해 선택한 것은 3인 쇼트에서 2인 쇼트로 전환하는 방식이었다.

영화는 누가 주인공이라 할 수 없을 만큼 비중이 인물들에게 고루 분산되어 있다. 카메라는 수시로 세 사람을 한 프레임 안에 세운다. 대통령과 경호실장과 중앙정보부장 사이를 오가는 묘한 기류. 언제나 세 사람에서 시작해 한 사람이 빠지고 둘만 남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힘의 균형추가 한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결국 프레임에서 이탈된 자는 소외를 느끼고 불안에 휩싸인다. 예컨대 경호실장은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밀리자 문 밖에서 엿듣고, 중정부장은 대통령이 담배 때문에 경호실장을 불러들이자 프레임에 홀로 선다. 창가에 선 대통령과 경호실장을 편심초점으로 잡은 중정부장의 단독 쇼트는 그래서 시사적이다. 영화를 통틀어 유일하게 대통령을 단독쇼트로 잡은 장면 또한 마찬가지이다. 중정부장은 경호실장을 독대하는 대통령을 도청하기 위해 안가로 숨어드는데,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도청을 통해 평생 동안 충성을 바친 혁명동지이자 주군에 대한 연민과 절망과 배신감이 교차할 때의 중정부장을 클로즈업한 1인 쇼트는 심리적으론 2인 쇼트다. 함께 있던 경호실장 자리를 비웠으니 3인 쇼트에서 2인 쇼트로 전환된 것. 관객은 ‘황성옛터’를 부르는 대통령을 보면서 동시에 그 숨결을 느끼는 중정부장을 본다. 파국을 부르는 가장 아름다운 미장센이다.

여기서 예외인 인물이 있다. 극중 부각되지 않고 당시에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 보안사령관이다(관객은 그가 훗날 차기 권력자가 되어 신군부독재시대를 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첫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그는 3인 쇼트에 배제된 채로다. 중정부장과 경호실장이 2인자 자리를 놓고 암투를 벌이는 순간에도, 부마사태로 인한 계엄령 선포를 고민하는 자리에서도 그는 “예”라고만 대답하는 우직한 군인으로 위장한다. 그는 3인 프레임 안으로 들어올 위치가 못된다. 아직 역사의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았고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던 남자가 10. 26 이후 어떻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 경로를 조밀하고 치밀하게 복기한다. 직속상관의 죽음에도 무심했고 피도 눈물도 없는 남자. 모두가 권력놀음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역사는 묵묵히 자기 야심을 키웠던 한 남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권력을 좌지우지하던 한심한 사내들이 대통령을 향한 충성경쟁에 눈이 멀어 발아래 도적을 놓쳤기 때문이다. 감독이 그를 3인 프레임 안에 놓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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