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2Q20
[문화칼럼] 2Q20
  • 승인 2020.03.1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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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지금 이 장면, 이 상황. 분명히 언젠가, 어디선가 겪은 적이 있는 듯한 느낌. 이를 기시감, 데쟈뷰 라고 부른다. 이것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가 가끔씩 상상하는 세계가 있다. 평행우주 또는 평행세계. 어떤 우주(세계)에서 분기하여 그에 병행해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를 의미하는 이론이다. 나이면서도 나 아닌 또 다른 내가 다른 세계에 존재할 수도 있다. 이를 소재로 한 여러 영화를 통하여 우리는 이 세계를 상상 해본 적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도 이 이론을 바탕에 깔고 있다.

처음엔 이 제목 뭐지, 어떻게 읽지 라고 생각했다. 생소한 제목 이었다. 1984년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어느 날 자신도 모른 채 일상과는 다른 세상에 들어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알 수 없는 지금을 ‘1Q84-일큐팔사’로 스스로 명명하고 우여곡절 끝에 1Q84에서 빠져나오는(주인공 덴고와 아오마메 두 사람만) 이야기다. 요즘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만 할 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지내야만 할 때. 이 책은 대단히 유용하다. 두꺼운 3권으로 된 총 2천 페이지 정도의 긴 분량이지만 이야기 전개가 매우 스피디하며 재미있다.

수학선생이자 소설가 지망생인 ‘덴고’ 헬스 강사이자 암살자인 ‘아오마메’ 이 두 사람을 삼인칭 시점에서 각각 한 장씩 교대로 풀어가다가 3권부터 ‘우시카와’ 라는 인물까지 세 사람을 한 장씩 차례로 그려나간다. 덴고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아오마메는 한 장씩 건너뛰고 덴고를 죽 읽을까 하는 유혹을 받게 될 정도다. 왼쪽 페이지를 읽는 중 다음 장면이 궁금해 눈길이 자꾸만 오른쪽 페이지를 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마냥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본 현대의 격동기, 혼란기 그리고 어두운 세상을 소재로 삼았지만 이 소설을 관통하는 가치는 사랑과 희망이다.

“만나고 싶은 마음을 각자 소중히 가슴에 묻은 채, 끝까지 떨어져 지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면 언제까지나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희망은 몸의 깊은 곳을 따뜻하게 해주는 자그마한, 하지만 소중한 발열이다. 손바닥으로 소중히 감싸서 바람으로부터 지켜온 작은 불꽃이다. 현실의 난폭한 바람을 받으면 훅하고 간단히 꺼져버릴지도 모른다” 이 장면은 약속장소 겨울 밤 공원 미끄럼틀 위에서 이십년만의 해후를 기다리며 아오마메를 생각하는 덴고의 떨림의 독백이다.

이십년 전, 초등학교 같은 반 동급생 아오마메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덴고. 어느 날 그런 덴고의 손을 말없이 꼭 잡은 소녀. 10살 소년 소녀의 인연은 단지 이것뿐이었다. 그 후 이십년간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마주잡은 손의 감촉을 잊은 적이 없다. 둘은 말 한마디 나눈 적 없지만 맞잡은 손의 감촉은 서로의 가슴에 깊이 품은 채 살고 있다. 그 어떤 말보다 진심을 담은 친절, 마음을 담은 손길. 이것이 긴 세월동안 서로를 잇는 강한 끈이 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진심으로 존중할 때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오페라 투란도트 중, 망명길의 아버지를 끝까지 모시고 온 ‘류’에게 왕자는 묻는다. 왜? 라고--- 이에 류는 “왕자님께서 자기에게 미소를 보냈기 때문” 단지 그것뿐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말이 있다. 덴고 아버지의 죽음에 그를 돌보던 간호사 ‘아다치 구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하나가 죽는다는 건 어떤 사연이 있건 큰일이야. 이 세계의 구멍하나가 뻐끔 뚫리는 거니까. 거기에 대해 우리는 올바르게 경의를 표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구멍은 제대로 메워지지 않아” 코로나19로 인한 우리의 모든 대처. 의료진의 대단한 헌신, 방역체계 그리고 침착하고 의연한 국민들,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다소간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훗날 우리의 저력을 확인하는,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사태라고 생각한다. 다만 섣부른 평가보다 단 한명의 죽음에도 엄숙한 애도가 먼저다.

어느 날 밤하늘을 쳐다보니 달이 두 개가 떠있다. 1Q84의 세계인 것이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이 세계로 넘어온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1984의 세상이 아니다. 위험이 도처에 널렸다. 시시각각 두 사람을 향해 조여 온다. 빠져나갈 방법도 없다. 하지만 오랜 옛날의 작은 마음을 소중히 간직할 줄 아는 사람. 그 작은 마음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빠져나갈 길이 열렸다. 물론 그곳이 1984인지는 불확실하지만 1Q84를 벗어난 것은 틀림없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현실 ‘2Q20-이큐이공’도 우리는 벗어날 것이다. 기꺼이 자신을 바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우리는 2Q20에서 2020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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