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다시 생각한다
시장을 다시 생각한다
  • 승인 2021.02.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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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경소비자연맹 정책실장
박경리 작가는 그의 소설 <시장과 전장>에서 전통시장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묘사했다. "시장은 축제와 같이 찬란한 빛이 출렁이고 시끄러운 소리가 기쁜 음악이 되어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곳이다. … 그곳에서는 모두 웃는다. 더러는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장을 걷어버리면 붉은 불빛이 내려 앉은 목로주점에서 화해의 술을 마시느라고 떠들썩, 술상을 두들기며 흥겨워지고, 대천지 원수가 되어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온갖 인생, 넘쳐흐르고, 변함없는 생활이 그곳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다." 어릴 때 보았던 시골장터의 정겨운 모습을 회상해 준다.

그 시절 전통시장은 대부분 그 지역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장날이면 각 가정에서 생산된 상품을 가져와 시장에서 팔고, 그 돈으로 필요한 상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가격 흥정은 기본이고 덤으로 주고받는 것을 인정(人情)으로 생각한다. '떡본김에 제사지낸다'는 말처럼 장날 시장에 나오면 미뤄놨던 일도 처리하고, 친분이 있는 지역 주민들을 만나 밥 먹고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정보가 교환되고, 여론이 형성되면서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처럼 전통시장은 지역 주민들의 삶의 애환이 녹여져 있는 낭만적이면서도 친숙한 장소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중장년층에게 깊은 향수를 느끼게 한다.

사실 <시장과 전장>은 서정적인 소설은 아니다. 작가가 경험한 6.25전쟁의 모순을 일상에서 삶을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 보는 시장과 이념적 갈등으로 인해 발생한 전쟁의 폐해를 통해 이념의 허망함한 곳으로 보고 있다. 송호근 교수는 <시장과 이데올로기>에서 "자본주의 시장은 사람들을 냉정한 경쟁의 세계로 몰아넣는 긴장의 터전이다. 서로의 약점과 허물을 감싸주는 훈훈한 인정이 사라진 시장에서 온갖 이념적 대립과 투쟁이 싹터나고, 이것이 격해져서 전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장은 곧 전쟁이다."라고 했다.

시장과 전쟁을 같은 개념으로 본 것은 꼭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의 삶 자체가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연속이라고 한다면 시장과 전쟁은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전통시장을 찾다보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시장도 있고, 도시개발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시장도 있다. 다시 말하면 시장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요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시장은 아직도 건제하고 상점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도시 계획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시장은 도시 계획의 유효성이 떨어지면 대부분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시설의 노후화와 상인들의 고령화로 재투자가 이루지 않게 되고, 또한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유통채널이 생겨나면서 시장의 활력은 점점 떨어지게 된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경부선 대구역이 만들어지고, 경상감영 자리에 경북도청이 들어서면서 대구역과 도청을 연결하는 향촌동과 북성로가 북적거린 적이 있다. 6.25전쟁으로 내려온 피난민 수용소가 만들어지고 그들이 생계를 위해 개척한 곳이 교동시장이며, 이후 대구백화점, 강산백화점, 동아백화점, 미용실, 음식점 등이 모여 교동상권을 형성하였다. 반면 경북도청이 산격동으로 이전한 후 도심 재개발사업으로 대구 최초로 주상복합 아파트인 대보백화점과 무궁화백화점이 들어섰지만 대구백화점이 동성로로 옮겨가면서 넘어간 동성로 상권을 되찾아 오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70여년 동안 지역민들 사이에 '대월동백'(대백은 월요일 휴무, 동백은 화요일 휴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랑을 받았던 동아백화점도 상권이 동성로와 반월당으로 넘어오면서 결국 문을 닫았으며, 동성로 상권을 열었고 지역 브랜드 백화점으로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구백화점의 운명도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동안 시장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복지제도를 도입했고, 시장 왜곡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법도 만들었다. 시장에 모순이 생길 때 마다 이념적으로 접근하면 표는 얻을 수는 있겠지만 사회구성원 간의 갈등을 야기하면서 결국 정부실패로 귀결하게 된다. 오히려 관심을 가져야 할 시장은 1970~80년대 인구증가로 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만들어진 전통시장이다. 대부분 주거 밀집지역에서 근린생활시장으로 지역주민들에게 식료품과 생필품을 공급했던 곳이다. 건축된지 오래되어 시설이 낡았고, 상인들의 연령층도 높고, 주변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외딴 섬으로 남게 되면서 주거환경도 매우 열악하다. 그동안 전통시장 살리기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도 사실이고, 시장 내부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가 복잡한 것도 사실이다. 생색은 나지 않고 힘만 드는 이런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데올로기 보다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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