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프라인’은 국가가 관리하는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기름을 빼돌리는 도유 범죄에 관한 이야기다. 다소 생소한 도유꾼을 소재로 한 영화는 대체불가의 천공 기술자 핀돌이(서인국)가 수천억 리터의 기름을 빼돌리기 위해 판을 짠 정유업체 대표 건우(이수혁)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작업이 펼쳐지는 곳은 경상도와 전라도로 석유를 보내는 경부선과 호남선 두 개의 송유관이 지나가는 지역의 허름한 관광호텔이다. 그곳에서 만난 멤버들은 거대한 판의 규모와는 거리가 먼 허점투성이의 인간들이다. 인간 굴착기 큰삽(태항호), 용접공 ‘접새’(음문석), 땅 속 지리를 속속들이 안다는 ‘나과장’(유승목), 그들을 감시하기도 하고 비상상황에도 대처하는 ‘카운터’(배다빈) 등 한 팀으로 묶인 멤버들의 면면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그들을 뒤쫓는 순경 만식(배유람) 역시 허술하긴 마찬가지다.
화려한 장비와 특수효과로 무장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익숙한 요즘의 시대상과 걸맞지 않게 곡괭이와 삽, 드릴을 들고 땅을 파는 것이 전부인 아날로그 스타일의 영화는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도유꾼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이 피상적으로 나열될 뿐이라 아쉽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등을 연출한 유하 감독의 전작과 비교한다면 실망스러울 정도로 평이한 전개를 보여주지만 의외의 웃음 포인트가 많아 킬링타임용 영화로는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배수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