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처럼 진한 붉은색 음식…신께 바치며 “잡귀야 물렀거라”
피처럼 진한 붉은색 음식…신께 바치며 “잡귀야 물렀거라”
  • 김종현
  • 승인 2021.06.0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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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음식 세계로> - (18) 인간공희(人間供犧)를 대신한 수수(高粱)
수수의 효능
소화 잘되고 장기 활성화 역할
씨눈엔 천연항암 성분도 포함
출산처럼 피 말리는 고통 뒤
수수팥떡 먹으며 치료하기도
벽사의식에 활용
수수·팥 이용한 음식 만들어
각종 질병·사악한 운세 몰아내
수수떡
대명신앙에 사용됐던 ‘수수.’ 그림 이대영

중국에서 좁쌀의 소중함은 BC 168년 서한(西漢)시대로 올라간다. 어사대부 조조(BC 220∼154)는 ‘논귀속소(論貴粟疏)’를 작성하여 먹거리혁명을 제창했다. 당시 식량은 조(粟)로 총칭되었다.

“백성이 가난하면 간사한 마음이 생기고, 가난은 부족한 데서 오며, 부족함은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곳에 머물지 않게 되면 고향을 떠나 가정이 경시됩니다. 결국 백성들은 마치 새와 야수들처럼 되고 맙니다(不地著則, 離鄕輕家, 民如鳥獸).”라며 서민안정화 정책을 강력히 주장했다. 당시에도 오늘날 낙수효과를 주장했다. “백성들이야 말로 윗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경제란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편익이 넘쳐흐르게 된다(民者, 在上所以牧之, 趨利如水走下).”라고 언급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도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공자가 52세에 미관말직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하면서 봉록(俸祿)을 좁쌀로 받았다. 주유천하(周流天下)할 때에 할머니로부터 조밥(黍)을 얻어먹었다는 논어의 기록이 있다. 춘추(春秋)나 전국책(戰國策) 등의 기록을 보면 귀족들 대부분의 주식은 조밥(黍)이었다. 중국에서 쌀(米)을 식량의 대명사로 사용하기에 좁쌀(黃米 혹은 小米), 옥수수(玉米), 땅콩(花生米), 감자(거미), 도토리(橡實米) 혹은 콩(菽米) 등을 모두 쌀(米)이라고 표현했다. 쌀미(米)자만 보고 한문을 해석한다면 이런 큰 착오를 불려온다. 오늘날 중국의 ‘샤오미(Xiaomi, 小米)’라는 대기업의 명칭은 중국인의 주식이었던 좁쌀(小米)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는 지구촌에서 가장 먼저 벼농사를 경작했으며, 다른 농사에서도 비교적 풍작을 이어왔기에 중국처럼 조밥을 많이 먹지 않았으나 귀족이 아닌 일반백성들은 고려, 조선시대, 일제식민지시기 때에도 조밥이 주식이었다. 광복 이후에도 화전민이나 빈농가는 쌀 구경을 못 했다. 1970년대까지 빈농가의 가족들은 쌀을 섞지 않는 ‘깡 조밥’으로 연명했다. 1963년도 13만8천600ha 조 재배, 7만4천톤의 좁쌀을 생산했으며, 20년 뒤에는 1천526ha 재배로 1천558톤 정도, 99%가 격감했다.

◇ 벽사의식에 활용된 수수

노벨상 수상자의 27% 가량을 차지하는 유대민족의 전통인 베드타임 스토리(bedtime story) 혹은 베드사이드 스토리(bedside story)처럼 어릴 때에 잠드는 손자에게 들려주던 할머니의 ‘별순달순’시리즈 가운데 ‘호랑이와 수수깡’ 이야기가 있다. 내용은 “엄마가 오는 길목을 지켰던 호랑이가 불쑥 엄마 앞에 앉았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떡 다 빼앗아 먹고 난 뒤에 엄마까지 잡아먹었다. 얼굴을 분칠하고, 떡함지를 머리에 이고, 싸리문을 발로 차면서 ‘엄~마~ 왔~다. 애들아~ 문~ 좀~ 열어라.’ 우리 엄마 손은 비누로 씻어서 깨끗한데 더러운 털이 있는 걸로 호랑이임을 알아차리고, 하늘에 빌었더니 굵은 동아줄이 내려왔다. 오누이에겐 굵은 줄이, 호랑이한텐 가늘고 썩은 줄로 올라가다가 떨어서 수수밭에 떨어졌는데 추수한 수수깡 칼날에 엉덩이가 베여서 수수깡(수숫대)에 빨간 피가 묻어있다.”고. 이렇게 어린이들에게 소중한 엄마까지 희생시키는 호환(虎患)에 대해 평생 경계하라고 각인시켰다.

수수(黍)는 중국고전 시경(詩經, BC 10,000 ~ BC 600)엔 ‘저 수수이삭만 우겨져 있네, 피도 같이 자라서 한 밭이 되었네. 이를 보니 걸음에 맥까지 다 풀리고 마음까지 술렁인다네. 수수이삭만 우거졌고, 피 이삭은 알차게 우거졌네. 가는 걸음이 맥이 다 풀리네, 마음은 술에 취한 듯이 정신이 없네(彼黍離離, 彼稷之苗, 行邁靡靡, 中心搖搖.彼黍離離, 彼稷之穗, 行邁靡靡, 中心如醉).’라는 민요가 기록되어 있다. 수수이삭이 꼿꼿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과객은 수수로 고량주 빚어 한잔 마시기는 어렵게 되었네 하는 맘으로 정신까지 놓고 말았다.

수수(高粱, sorghum)는 고고생물학에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자생하고 있었기에 주식(主食)보다는 양조주(高粱酒)용으로 많이 사용했다. 아프리카 수단, 에티오피아에선 BC 3000년경 재배했던 고고학적 흔적이 있는데 인도를 거쳐 중국에 들어와서 동아시아에 전파된 걸로 보인다. 중국에선 고량(高粱)이라는 말 이전에 촉서(蜀黍)라고 했다. 촉(蜀)이란 산동반도와 한반도주변에서 최초 재배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촉서전병(蜀黍煎餠)이란 기록도 있다. 이를 종합하면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전파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옛날 중국에선 여자아이들이 울 때에 “예쁘게 울어야지, 예쁘게 울어야지(淑淑)”라고 했기에 여자아이들의 이름에 ‘촉서(蜀黍, Shu, shu)’를 사용했다. 발음이 ‘수수(Shu, shu, 叔叔)’와 같은 발음이다. ‘아저씨(삼촌)’라는 뜻도 있다. 최근엔 ‘이상한 아저씨(怪蜀黍)’라는 말이 2010년 이후 중국본토에서 유행하고 있다. 이말은 1958년 발표된 러시아 망명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 1899~1977)의 소설 ‘롤리타(Lolita)’에 나온 소아성애 편집증 환자와 연관돼 있다. 그래서 ‘롤리타 컴플렉스(Lolita Complex)’라는 심리학적 용어가 생겨났다. 우리나라의 말 수수는 촉서(蜀黍)의 중국어 발음이 ‘수수(Shu, shu)’라는 데 유래되었다. 이와 유사한 곡물명칭으로는 양자강(楊子江) 이남에서 재배했다고 강남(江南)을 강조해서 ‘강남콩(江南菽)’ 혹은 ‘강냉이(江南)’혹은 옥(玉)색이라고 해서 옥수수(玉蜀黍 혹은 玉米)라는 말이 중국지역명과 색깔에서 나왔다.

미국에선 수수(sorghum)의 알곡보다는 수숫대를 찧어서 시럽(sirup)을 만든다. 비스킷을 수수시럽에다가 찍어 먹는다. 중국, 한국 및 일본 극동아시아에서는 고량주을 만들어 마신다. 많은 나라에서는 생(生)수수에 시안화물이 들어있어 건조해 동물사료로 쓴다. 일본은 오키나와에서 재배한 ‘도나친’을 식용한다. 중국인으로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모옌(莫言, 1957년생)은 ‘붉은 수수가족(紅高粱家族)’이란 장편소설을 1986년 ‘인민문학’에 발표했다. 1987년 장이머우(張藝謀, 1950년생) 감독은 ‘붉은 수수밭(紅高粱, Red Sorghum)’영화를 제작 상영했다. 이렇게 하여 세계적인 작품으로 부상되어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 영화(Red Sorghum)에선 일본제국군에 저항하는 중국인들을 다 잡아 꽁꽁 묶어놓고 지인을 협박해, 뜨거운 물을 알몸에다가 덮어씌우고 살가죽을 벗기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살가죽을 벗기는 작업을 일본제국군은 인간개혁(人間改革)이라고 했다.

수수는 식재료로 소화가 잘 되고 장기기능 활성화에 좋은 물질인 프로안티시아딘(proanthocyanidins,C128H122O65)이라는 성분이 있다. 이는 염증제거로 방광면역을 높인다. 씨눈엔 천연항암인 아미그달린(amygdalin, C20H27NO11) 성분도 있다. 이를 이용해 우리의 선인들은 어린아이들의 돌잔치, 백일잔치 에 수수팥떡을 즐겨해 먹었다. 또한 붉은색(赤色)을 이용해 잡귀 혹은 역병 등을 물리치는 벽사음식으로도 이용했다. BC 2000 년경부터 동서양에는 사람의 생명을 대신해서 동물이나 식물의 피를 바쳤던 ‘대명신앙(代命信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서양(구약성서)에서도 ‘흠집 없는 숫양의 피를 문설주에 칠해서 죽은 천사들의 침범을 피함’을 유월(逾越, misfortune-overstepping)이라 했다. 즉 사람의 피를 대신해 동물(희생)의 피로 넘어간다는 대명신앙이었다. 각종질병과 사악한 운세를 물리치는 벽사의식에서 사람의 피를 대신(代命)해 수수 혹은 팥의 붉은색(철분)을 이용한 음식을 신에게 바쳤다. 출혈 혹은 빈혈 때 꼭 먹어야 할 음식이 수수떡이었다. 출산이나 수험과 같이 피를 말리는 고통에는 치료식으로 수수팥떡, 붉은 시루떡 혹은 팥죽 등으로 벽사행위(evil-defeating behaviour)를 했다. 벽사음식(evil-defeating food)뿐만 아니라 벽사도, 도깨비 얼굴 기와(鬼面瓦), 대궐지붕의 용마루 잡물(瓦龍宗雜物)로 삼장법사와 손오공일당을 조각해서 놓기도 했다. 조각상으로 해태상, 불상, 장승, 솟대, 귀불노리개, 벽사노리개 등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가장 흔한 것이 달마도(達磨圖)와 부적(符籍)이다.

중국 사람들은 평시에도 벽사의식을 중시하고 있으나 미국인들은 벽사보다 행운을 불러오는데(招運) 더 치중한다. 지구촌의 인류들이 새해에 행운을 불러 들이기 위해 해먹는 10대 음식(Foods to Eat in the New Year to Bring Good Luck)으로, 1) 극동아시아 중국과 일본에서 부(富, wealth)와 돈의 상징인 돼지고기(pork), 2) 오리엔트지방에서 쌍어신앙(kara)의 행운으로 물고기(fish), 3) 고대 로마인이 행운의 씨앗으로 봤던 콩(beans), 4) 오늘날 비만퇴치와 건강을 의미하는 푸른 해초(greens), 5) 노예의 고단한 삶에서 건강을 유지해주었던 영혼음식 옥수수 빵(corn bread), 6) 유럽인들이 경사스러운 날에 축배를 드는 포도(grapes), 7) 과일이 많은 곳에 미녀들이 많이 나왔으니, 특히 중국 4대 미녀들을 탄생시킨 석류(pomegranate), 8) 일본사람들이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축복음식으로 먹었던 소바((soba), 9) 불교의 윤회사상에서 탄생-사멸-환생을 의미하는 법륜(法輪)의 도넛(doughnuts), 그리고 10) 결혼, 생일 등의 행복한 날에 반드시 축복을 같이했던 케이크(cake) 등이다. 이외에도 11) 중국인들이 돈이 불어나기를 축원한 교자만두(dumplings), 매사에 소원성취와 확실한 결실을 축원하는 귤(oranges)이 있다.

글=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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