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판소리 완창 무대
[문화칼럼] 판소리 완창 무대
  • 승인 2021.09.2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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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오랜만에 대구에서 완창 판소리 한바탕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오롯이 혼자서 4시간 넘는 무대를 감당하는 자리다,(오히려 고수는 두 명이 필요하다) 그것도 작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절정기의 소리로 감상할 수 있다. 바로 명창 김영자 선생의 판소리 완창 무대다. 김영자 명창은 워낙 이 바닥에서 유명한 분이라, 나처럼 과문한 사람도 그 명성은 멀리서 나마 듣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중 작년 가을 선생께서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보유자로 지정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여기에 대한 기사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오면서 선생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김영자 명창은 대구의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애기 명창'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니 소리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었으리라. 선생은 소리꾼이 할 수 있는, 국내외 수많은 무대와 권위 있는 상을 모두 섭렵했다. 100여회에 이르는 판소리 완창과, 1000회가 넘는 창극 등에서 주역을 맡았다.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문 장원 대통령상, 제 22회 동리국악대상 등을 받았다. 특히 미국 카네기 홀과 링컨센터 페스티벌,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 등에서 완창 무대를 선보이며 전 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았다는 평이다.

이런 명창이 되기까지 선생은 소리공부에 진력을 다했다. 애기명창 시절 벌써 널리 화제가 될 정도로 될성부른 재목이었다. 하지만 어릴 적 천재로 불리던 사람 중 어른이 되어 대가가 된 이는 몇이나 될까. 결국 타고난 것에 노력에 노력을 더하지 않으면 일가를 이룰 수 없는 것이다. 10세 때 명창 정권진에게 배움을 시작으로 김준섭·김소희·박봉술·정광수·성우향 등 여러 명창에게 판소리 다섯 바탕을 배우며 소리를 갈고 닦는데 남다른 노력을 하였다. 이런 공력 덕에 오늘 날 명창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지금은 전주에 터를 닦아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아직도 최정상의 기량으로 여전히 소리판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저 멀리 진도의 국립남도국악원 판소리 별들의 무대 '2020 판소리 예능보유자 선정기념 축하공연'을 비롯한 경향각처의 다양한 무대에서 소리판을 벌이고 있다. 특히 이번 대구에서 가지는 완창 무대 강산제 '심청가'는 4시간 정도 걸린다. 한사람의 목청으로 끌고 가는 완창 무대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시간동안 소리의 힘과 빛깔을 잃지 않고 무대를 쥐락펴락 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내일 모레, 토요일 오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김영자 명창께서 부를 강산제 '심청가'를 보성소리라고 한다. 선생의 음악적 바탕이 된 정권진 명창이 보성소리 계승자로 인정받고 있다. 오늘 날에는 우리가 명창이라고 칭할 수밖에 없는 조상현 선생이 보성소리를 완성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 보성소리는 대원군의 총애를 받던 국창 박유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즉 그가 여생을 보낸 전남 보성의 마을이름이자 자신의 호인 강산으로부터 이름 지어진 것이 '강산제'다. 어전에서 주로 불린 강산제 '심청가'답게 시정잡배들이나 할 것 같은 사설들은 배제하고, 섬세하고 고급스러운 정서가 살아있는 판소리다.

작년 문화재 지정에 이은 국립극장 완창 시리즈 무대에 오른 선생을 두고 한 관객은 이렇게 표현 했다.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울리는 울음 같은 소리" 나는 이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이것은 소리의 예술적 합이 완벽할 때,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선생을 두고 모든 음역의 소리가 찰지고 힘이 넘친다고 한다. 안정적인 중·저음을 바탕으로 탄탄한 상성까지 갖춘 선생의 소리와 기교는 관객을 숨죽이게 만든다고 한다. 이처럼 소리꾼의 기본인 타고난 목청 뿐 아니라 수많은 창극 무대의 주인공답게 발림과 너름새도 탁월하다는 평이다.

대구에서 판소리 완창 무대는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판소리 눈 대목, 민요 한 구절씩만 불러서는 언제 기초체력을 키우겠는가. 완창 무대를 만들고 또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한때 대구의 소리판은 호남지방 부럽지 않게 넉넉하였다고 한다. 개인적 소견이지만 풍성한 소리판이 받쳐지지 않은 국악계는 항상 뭔가 허전하고 옹색해 보인다. 완창 시리즈는 우리가 부족한 것을 채우고,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시리즈 첫 무대에 김영자 선생을 모시게 된 것은, 어쩌면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선생의 공력과 우리의 뜨거운 호응이 한데 어울려 잊지 못할 심청가가 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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