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좋지 아니한家] 막연한 가족주의에 가하는 일침
[백정우의 좋지 아니한家] 막연한 가족주의에 가하는 일침
  • 백정우
  • 승인 2022.01.0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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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좋지아니한가스틸컷
영화 ‘좋지 아니한가’ 스틸컷.

지난 3년간 ‘줌 인 아웃’을 연재했다.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야 할 때도 되었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마냥 화목한 가족이 아니라, 죽어도 해피엔딩이 아니라, 가족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낭만적 사랑에 저항하며 유머러스한 체념의 미학을 보여주는 영화들. 아프지만 진짜배기 삶을 그린 영화, 때론 함께 있어도 ‘좋지 아니한’ 가족과 만나는 시간이다.

누구는 콩가루 집안이라고 한다. 대책 없는 식구들이라고도 했다. 성실하지만 고루한 고등학교 영어선생 심창수와 그의 가족이 벌이는 좌충우돌 코미디 정윤철 감독의 ‘좋지 아니한가’이다. 이 가족, 지독하게 구순기적이다. 카프카에 따르면 “전형적인 하나의 가족이 의미하는 것은 일단 동물적인 관계다.” 즉 가족은 먹고 마시는 동물적인 1차적 욕망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구순기(口脣期)라는 용어대로 풀어내자면 서로를 빨아들이기에 열중할 따름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자. 돈 벌어오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얘기다.

심창수는 가정 내 유일한 경제활동인력이다. 가족에게 심창수는 오로지 빨아들이는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아내는 성적·경제적 욕망의 해소 대상으로 그를 흡입하려하고, 군식구인 처제는 형부의 인정을 빨아먹으며, 친부가 따로 있다고 믿는 아들은 마음에 둔 여학생을 구제하기 위해 제 아비의 주머니를 노린다. 오직 극중 화자인 딸 심용선만이 중간자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심창수는 오로지 빨리기만 하는 수동적 입장인가? 그렇지 않다.

그는 하나 남은 계란말이를 아들의 젓가락으로부터 선취하는 장면에서 가장의 권위를 발휘하며, 벌을 서는 딸의 머리를 때리고 훈계함으로써 학교이데올로기를 표출하고, 연골이 파열되어 입원한 아내에게 보내는 무심한 눈길로 그녀의 소망을 제거시킨다. 게다가 아내 대신 식사를 맡은 처제에게 가하는 우월적 태도는 가부장이 제거된 가족 내에서 경제력을 쥔 자의 권력화를 보여주는 선명한 사례이다. 그러므로 이들 공동체는 콩가루 집안이 아닌 가정 내에서 가부장과 경제력의 역학관계를 설명하는 또 다른 모델일 따름인 즉, 심창수 집안은 각각의 속사정으로 바라본 한국가정의 전형이다. 감독이 심창수 가족을 탈주로 앞에 세운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같은 시간에 모여 가장의 밥상에 순응하기를 포기한 그들은 욕망 성취에의 성공가능성을 타진한다. 엇갈린 욕망에서 비롯된 갈등이 가족공동체 와해로 이어질 일촉즉발의 상황,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완전히 탈주하지 못하고 가정으로 재결집하기 때문이다. 전통적 가족관에 흠집을 내는 듯하더니 슬그머니 제 자리로 돌려보낸다는 것. 달라진 게 있다면 보다 정돈된 모습으로 자기 위치를 고수하려는 각자의 변화가 전부다

‘좋지 아니한가’는 ‘예쁘고 믿을만한 구석 하나 없어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모여 산다는 것이 그래도 좋지 않느냐’는 막연한 낙관주의에 일침을 가한다.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가족구성원의 속내를 알아보겠다고 너무 후빌 필요도 없다. 각자 알아서 제 몫을 할 것이란 믿음을 통해 가족은 구순기를 넘어설 것이다. 이 영화가 새로운 가족주의를 보여주었다고는 말 못하겠으나, 정답이나 모범답안에 집착하는 대신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써내려간 답안지라는 점은 분명하다.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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