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꿈·접·외·돌 청년에게 말걸다, 이신호 소묘전
[화요칼럼] 꿈·접·외·돌 청년에게 말걸다, 이신호 소묘전
  • 승인 2022.05.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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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문학박사
꽃피어야 하는 것은

꽃핀다

자갈 비탈에서도

돌 틈에서도

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



한국의 한 기획자가 성대한 행사의 시인으로 모시고 싶다고 정중히 초대했지만 두 차례나 거절했던 시인, 그러나 학생들이 그의 시를 듣고 싶어한다는 말에는 한 치 망설임 없이 “그럼 가야지요” 하면서 자비로 한국행 항공표를 끊어 날아오던 시인, 자신의 시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들려주고 그렇게 날아가는 시인, 라이너 쿤체의 시 「녹슨 빛깔 이파리의 알펜로제」를 읽으며 ‘꿈·접·외·돌 청년’을 생각한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들이닥친 코로나의 대혼란이 지구를 덮기 시작하던 그 해, 부푼 꿈을 안고, 타국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이 쫓겨나듯 본국으로, 또는 외국에서 모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즉 꿈을 접고 외국에서 돌아온 청년들이다. 그 가운데 한 명인 CY는 어려서부터 미술을 잘해 촉망받던 꿈나무였지만 현재는 외국유학에서 돌아온 후 꿈을 접은 스물다섯의 여성 청년이다.

희망의 키는 낮아지고 절망이 불쑥 솟아오르는 주말, 커피숍 옆 갤러리에 시선이 멈췄다. 『이신호 소묘전』, 연필 하나로 그려나간 사물, 식물과 동물, 풍경들이었다. 규칙을 따르면서 선과 선이 서로 조율하고, 통제의 단순한 사슬에 매몰된 듯 하지만 최선의 노력은 오히려 자신만의 미학과 철학으로 승화된 작품이 되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신호 작가는 미생물학을 전공한 학자이다. 교수(대구가톨릭대학교)로 정년 퇴임한 그는 지난해 칠순이었다. 그동안 삶과 미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조합이기에 스무 살 청년에게는 느닷없고, 의아한 놀라움을 주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생물들이 어떻게 우리 몸을 건강하게 도와줄 수 있는지 궁금해서 미생물학을 전공했다는 이신호 작가는 미생물 중에서 유산균을 제일 좋아한다. 유산균은 창자 속에 숨은 듯 살지만 해로운 세균을 물리치는 성질이 있어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세균이라고 엄지척! 올려 자랑한다. 퇴임을 앞두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동네 평생교육원에서 데생 공부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9월이면 만 5년이라고 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참 즐거웠고 생동감을 얻었으며, 그동안 다 쓴 스케치북은 무려 25권, 연필은 56자루의 심이 닳도록 그림을 그렸다. 작품전시회를 위해 정리하다가 자신도 그림과 연필의 개수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신호 작가의 인생관, 혹은 삶의 심지가 되어준 가훈이 궁금해 질문했다. “뭐, 그런 거 없습니다. 그때 그때 해야 할 일 열심히 하며 사는 거지요.” 매일의 성실함을 이기는 현답은 없다는 진실을 웃음 속에 버무려놓고 집안 보물에 대해 들려준다. 세종대왕께서 어필로 하사한 가훈이다. 세종의 어필은 전의이씨 족보 권두에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世守仁敬)’ 여덟 자가 적혀 있다. “충과 효를 가문에 전하고, 어질고 공경하는 정신을 대대로 지켜 나가라” 는 뜻이다. 이정간(李貞幹)[1360~1439]은 전의이씨로 사헌부 요직과 내외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강원도관찰사로 재임하던 중, 100세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특히 자신도 80세의 노령이면서 어머니 앞에서는 색동옷을 입고 병아리를 희롱하여 어머니를 즐겁게 하는 등 하늘이 내린 효자로 이름을 날렸다. 세종이 이 사실을 알고 이정간의 품계를 정2품으로 올리고, 노모는 정대부인(貞大夫人)으로 봉하였다. 이때 이정간에게 궤장을 하사하고 내린 어필이 가훈이라는 것이다.

‘꿈·접·미·돌 스물다섯 청년’에게 ‘꿈·펼·생·돌 일흔의 청년’은 소년미소로 백세인생을 말한다. 모름지기 제 꿈을 펼치면서, 어제와 내일의 생을 즐겁게 돌아보고 돌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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