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도 배움의 열망은 뜨거웠다
전쟁 중에도 배움의 열망은 뜨거웠다
  • 한지연
  • 승인 2022.06.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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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육박물관 ‘서울피난 대구연합중’ 전시관 개소
어려운 환경에도 ‘배워야 한다’
대구에 피난학교 세우고 교육
한 교실 다른 교복 입은 학생들
계속 공부할 수 있어 고맙기만
가수 현미 “어린 동생 묶어놓고
초가집 학교 등교해 영어 배워”
잊혀진 교가 뒤늦게 발굴 되살려
피란학교
한국전쟁(6·25전쟁) 제72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대구교육박물관은 ‘서울피난 대구연합중학교’ 상설전시관의 문을 열었다. 대구교육박물관제공
“언덕의 큰 나무에 칠판을 걸어 놓고 수업했다. 학교건물도, 책상이나 필기구도 없었지만 그래도 배움에 감사했다”, “그 때 교육 열기는 세계에 자랑할 만 하다. 선을 긋고 학교라 칭하고 나무 막대기를 선생님 삼아도 교육은 일어난다.”

한국전쟁(6·25전쟁) 제72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전쟁 중 대구교육의 힘이 된 피난학교, 그 출신들의 생생한 증언을 만날 수 있게 됐다. 학교를 다녔던 많은 인사들은 당시에 대한 증언과 관련 자료를 내보이며 ‘서울피난 대구연합중학교’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대구교육박물관은 이날부터 ‘서울피난 대구연합중학교’ 상설전시관의 문을 열었다. 대구 시가지 풍경과 학생들 모습, 학교앨범 등 다채로운 유물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특히 피난 학생이었던 여러 인사들의 영상 인터뷰가 눈길을 끈다.

대구교육박물관에 따르면 6·25전쟁이 발발하고 1951년 1·4후퇴 이후 피난민들이 대구로 몰려들었다. 대구는 학교시설을 군에 양도하고 심각한 교육시설 부족을 겪었지만, 교육을 중단하지 않고 교육에 대한 갈증과 어려운 환경에도 배워야 한다는 의지로 피난학교를 세웠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저자인 한동수 전 현대종합상사 전무이사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도 학교에 보내야 된다는 게 부모님 생각이셨다”라며 피난학교 시절을 떠올렸으며, ‘삶을 뒤돌아보며’ 저자 구본안 작가는 “서울피난 대구연합중에선 한 교실에 각기 다른 교복과 모자를 쓴 학생이 다 보였다. 경기중, 서울중 등이 한 데 모인 것인데 열악했지만 고맙기만 했다”고 전했다.

1.4후퇴 때 대구로 가 대구연합중학교 2학년 재학 중 김백봉 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가 꽃초롱 오페라 단원이 된 현미(김명선) 가수는 “초가집에서 배웠다”라며 입을 열었다. 현미 가수는 “다섯 살, 두 살 어린 동생들은 나쁜 사람들이 데려갈까봐 상다리에 묶어놓고 학교에 등교해 영어를 배웠다”고 말했다.

피난학교 출신들이 잊혀졌던 교가를 발굴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마종기 시인은 교가의 가사를 기억해내고 함께 공부했던 재미동포 김동근이 채보해 노래 불렀으며, 이경화 공학박사의 하모니카 연주까지 더해 피난학교 교가를 완벽히 발굴해냈다. 해당 교가는 당시 대구 공군문인단에 근무하던 시인 조지훈이 작사하기도 했다.

마종기 시인(의사, 미국 올랜도 거주)은 “천막 뚫고 들어오던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여름을 싫어했는데, 국어선생님이 세계 명작 소설을 얘기할 때면 너무 좋았다.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라며 “피난학교가 아니었다면 학교를 제대로 다니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지연기자 jiyeon6@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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