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지고 또 피는 꽃
피고 지고 또 피는 꽃
  • 여인호
  • 승인 2023.11.1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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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차 한잔 마시기 좋은 계절이다. 국화는 피어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고 나서도 차로 기쁨을 준다. 담백한 차 맛도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물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국화를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국화처럼 통꽃이 아니라 꽃잎 낱개가 차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히비스커스가그 예이다.

요즘 히비스커스차가 다이어트에 좋다고 해서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상큼한 차 맛도 색다르거니와 적포도주색 차 색깔은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흔히 하와이무궁화로 불리는히비스커스는 새빨간 색, 샛노란 색 등 화려한 종이 많다. 히비스커스는 태국의 국화인 부상화를 비롯해서 하와이에 자생지를 둔 히비스커스 코기오, 병솔나무 꽃 같은 시초페탈루스, 부용, 황근, 로젤, 틸리아세우스 무궁화 등 생긴 모양도 여러 가지이다. 문헌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클레오파트라가 목욕할 때 입욕제로 히비스커스를 사용하고 차로 음용하였다고 전해온다. 히비스커스차는 이집트인이 애용하는 국민차이기 때문에 개연성 있는 이야기이다.

히비스커스는 동남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일본 오끼나와, 중국 남부지역 등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다 보니 흔히 남국의 꽃으로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무궁화도 히비스커스의 한 종류이다. Hibiscus syriacus(히비스커스 시리아커스)가 학명인 무궁화를 우리나라에서는 관습적으로 국화로 인정하고 행정안전부의 국가상징 문양으로 사용하여 왔다. 최근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무궁화가 친일의 꽃이라는 이야기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제국주의 상징인 일본의 욱일기는 무궁화의 변형이고 무궁화는 조선의 역사성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욱일기는 에도시대부터 일본의 전통적인 상징처럼 사용되어 왔고 욱일은 해가 빛나는 모양이라는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욱일기와 무궁화 관계에 대한 오류뿐만 아니라 무궁화의 역사성도 책의 내용과는 다르다. 무궁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문헌 곳곳에 등장한다.

중국의 기원전 고서인 ‘산해경’에 한반도에 무궁화가 많이 자란다는 기록이 있고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외교문서에 근화향(槿花鄕)이 있다. 또, 19세기 초 조선팔도를 지도로 그리면서 ‘근구팔폭(槿邱八幅)’이라 하여 조선이라는 이름 대신 근구(槿邱)라고 사용하였다. 무궁화의 한자 표현인 근(槿)을 사용하여 우리나라를 무궁화나라(槿花鄕), 무궁화동산(槿邱)이라고 오래전부터 표현하였다.

애국가 후렴구인 무궁화노래는 1897년 8월 13일 오후 3시, 조선 개국 505회 개원절 행사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부른 노래가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날 불렀던 무궁화노래는 ‘우리나라 우리 임금 황쳔이 도으샤/ 임금과 백성이 한가지로 만만세를 즐거하야/ 태평 독립하여 보세’라는 내용이다. 독립신문 영문판에 윤치호가 작사했다는 이 무궁화노래는 조선 왕실을 찬양하는 황실가이지 무궁화노래가 아니다. 무궁화노래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가 후렴구로 등장한 것은 1899년 6월 29일 배재학당 방학식이었다. 무궁화노래가 불리워지기 전에 ‘무궁화는 삼천리에/ 백두산은 높고 동해는 넓나니/’라는 시가 “삭방풍요(1777년)”의 연작시인 토우기에 등장하였다. 시가 노래였던 점을 감안하면 오래전부터 무궁화노래가 구전될 수 있었던 점이다.

조선왕조에서도 공식적으로 무궁화를 사용하였다. 1528년 중종 23년 10월 14일 실록에 ‘어사화는 길고 가는 참대 오리 둘을 비틀어 꼬아 그사이에 만든 무궁화를 끼어 만들고 그 한끝을 복두 뒤에 꽂고 다른 한 끝에서 실을 매어 앞으로 휘어 넘겨 입에 문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어사화로 무궁화를 사용한 것으로 오늘날 대통령 표장에서 무궁화가 가운데 자리 잡은 기원이라 할 수 있다.

무궁화가 대중적인 꽃이라는 것도 실록에서 확인된다. ‘우리 일생 잠깐인데 참죽나무는 오래 살고 무궁화는 쉬이 떨어진다(연산군일기)’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무궁화는 일찍 죽은 연산군의 후궁을 말한 것이다. 또, 광해군 복위가 탄로 나자 유몽인이 인조를 무궁화에 빗대서 ‘무궁화 꽃같은 멋진 남자였어(광해군일기)’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무궁화를 비유법으로 사용한 것은 청자와 화자 사이에 통용되는 일반적인 꽃이었기에 가능하다.

이 밖에도 ‘무궁화로 술을 빚고’라는 말이나 ‘삼천리 무궁화 속에서 한양성 무궁화는 오백여년 아름답다’ 등의 무궁화 관련 내용이 대한매일신보 외 여러 곳에 등장하고 ‘무궁화 삼천리 우리 강산에’라는 광복가 가사의 내용도 있다. 무궁화는 오랜 시간 한민족의 마음속에 대표하는 꽃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에 학생, 독립운동가, 기자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히비스커스속 식물 중 세계적으로 가장 추운 곳에서도 피고 지는 무궁화를 벌레가 있고 지저분하다는 등의 이유로 소홀히 대하기도 했다. 병충해에 강한 다양한 모양의 무궁화 개발로 겹꽃무궁화 등이 등장하였고 차로 마실 수 있는 품종도 나왔다. 최근에는 나무 한 그루에 세 빛깔을 뽐내는 삼색 무궁화를 선보였다. 이 글을 읽는 분은 포털사이트에서 삼색 무궁화 이미지를 검색하셔서 삼색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색, 연분홍색의 우리 무궁화에다가 하와이무궁화가 함께 핀 삼색히비스커스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히비스커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색무궁화, 겹꽃무궁화 등이 방방곡곡 퍼져 무궁화동산에 앉아 무궁화꽃차 한잔 하는 날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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