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4가지 기억
[데스크칼럼] 4가지 기억
  • 승인 2023.12.0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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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정경부장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은 독재자를 검증할 수 있는 4가지 신호가 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쓴 책인데 세계 여러 나라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과정을 연구했다. 그들은 다른 여러 나라에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과정을 거쳐 민주주의가 무너짐을 발견했다.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조건에서 선출되는지, 선출된 독재자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책에 나오는 독재자, 전체주의자, 극단주의자를 알아보는 4가지 주요 체크리스트가 흥미롭다. 첫 번째는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거나 규범 준수의지가 부족한지 파악해야한다는 것. 예를 들면 헌법을 부정하거나 위반할 뜻을 드러낸 적이 있는가. 선거 불복 등 선거제도의 정당성을 부정한 적이 있는가. 두 번째 신호는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즉 상대방 정치인 혹은 다른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정치인을 전복 세력, 헌법질서의 파괴자라고 비난한 적이 있는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상대방을 종북 좌파와 적폐 세력이라고 딱지 붙이길 좋아하는지 보면 될 것 같다. 걸핏하면 경쟁자에 대해 국가 안보나 국민의 삶에 위협을 주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이라면 위험하다는 얘기다. 선의의 경쟁을 해야하는 대화의 상대방을 절멸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 하면 곤란하다. 정치 경쟁자가 외국 정부, 적국과 손 잡고 있다거나 그들의 지시에 따라 은밀히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근거도 없이 주장하면 극단주의자라는 것이다. 세 번째 신호는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이다. 개인적으로 또는 정당을 통해 정적에 대한 폭력 행사를 지원하거나 부추긴 적이 있느냐. 즉 폭력에 대한 비난이나 처벌을 부인함으로써 지지자들의 폭력 행위에 암묵적으로 동조한 적이 있는가. 트럼프 대통령 시절 발생한 국회의사당 점거 사건의 경우가 이 예이다. 네번째 신호는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이다. 정부 및 정치 조직을 비난하는 집회를 금지하거나 시민의 자유권을 억압하는 법률이나 정책을 지지한 적이 있는가 살펴보라. 상대 정당이나 시민단체, 언론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독재자가 될 성향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이 4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경우는 히틀러나 차베스가 떠오른다. 히틀러도 총칼로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니라 국민투표를 통해 집권했다. 기존 정당의 눈에 띄어 영입된 인물이다. 당시 그 정당이 히틀러를 영입할 때 위의 4가지를 살펴봐야 했는데 아쉽게도 그 당시 이런 책은 없었다. 이 책을 소개한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는 인터넷 방송에서 “극단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타협을 못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엄청나게 지난하게 협상하고 인내하고 기다려야 되는데 대부분의 극단주의자들이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독재자들은 갑자기 뭔가를 바꾸려고 하고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반대편에 서있는 협상주의자들에 대해 “말만 하고 행동은 안 한다”고 몰아댄다. 언론을 통한 선동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정권을 잡는다. 책은 이런 사람들을 정치적 파트너로 삼으면 큰일 난다고 경고한다.

지난달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투표에서 부산은 엑스포 유치에 실패했다. 그 전날까지 부산유치가 가능하다던 언론의 분석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지난해 5월 취임 이래 총 15회의 해외 순방을 하고 순방비용만 약 651억원, 각 국가 방문 비용이 평균 25억 원을 사용했지만 얻은 것이 없었다는 혹평이 나왔다. 용산 대통령실 내부에서 유치 가능성이 정확히 어느정도인지 대통령에게 제대로 알렸는지 의문이다. 싫은 소리 듣기 싫어하는 대통령이 역정을 내 제대로 보고를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간 윤석열정부의 정책발표는 오락가락했다. 신중해야할 정책이 시시각각 바뀌는 것은 내부 소통이 부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윤대통령은 야당 대표와 아직도 만나지 않고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경쟁자와 끊임없이 타협하려는 자세가 없다면 자신만의 독단에 빠지기 쉽다. 이런 지도자 밑에는 거짓보고를 해서라도 자리를 유지하려는 무능력자들만 들끓게 된다. 엑스포 유치실패가 우리나라의 위치가 흔들리는 신호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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