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쿵' 의성 국가지질공원 이야기] (1)빙계계곡, 한여름 더위 쫓고 겨울엔 온기 뿜는 ‘천연 에어컨’
['심쿵' 의성 국가지질공원 이야기] (1)빙계계곡, 한여름 더위 쫓고 겨울엔 온기 뿜는 ‘천연 에어컨’
  • 윤덕우
  • 승인 2024.03.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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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의 신비
무수한 결빙과 해빙 과정
바위 틈 진흙서 이류현상
연중 최고 온도 5℃ 이하
국내 최장 결빙기간 가져
얼음 구멍(빙혈) (1)
빙혈(氷穴, ice cave)기온은 영하 0.3℃로, 외부 기온보다 10℃ 이상 낮다. 연중 최고온도는 5℃이하이며, 국내 최장 결빙기간(3월 초~ 10월 초)을 가진다.

의성 국가지질공원(Uiseong National Geopark of Korea)은 보면 볼수록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스러움에 빠져들게 만든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노래처럼 “정말 멋진 세상(What a Wonderful World)이다!” 2023년 6월21일 의성군(義城郡)은 정부로부터 국가지질공원(國家地質公園)으로 인증받았다. 중생대 백악기 경상퇴적분지 면적 1,174.68㎢에 금성산(金城山, 해발 531m), 제오리(堤梧里)공룡 발자국,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 등 학술적 가치가 높은 지질명소 12곳이 포함됐다. 지질공원은 지구(地球)라는 미녀의 치맛자락 헤진(뚫린) 곳에 비유된다.

이제부터 의성국가지질공원 지질명소로 선정된 12곳의 지구아가씨 하얀 속살을 글쓰는 순서대로 하나씩 들여다보자.

첫번째는 삼복더위를 녹이고, 엄동설한에도 봄 입김을 토해내는 춘산(春山) 빙계계곡이다. 두번째는 지금부터 7천만년 전 백두·한라산보다 아버지 화산이었던 금성산. 세번째는 하얀 쌀밥 같은 안계분지(安溪盆地). 네번째가 비옥한 초승달 모양의 쌍호리 퇴적층(雙湖里堆積層)이다. 다섯번째는 엄마 손등처럼 갈라진 해망산(海望山, 해발 400m)의 거대건열구조(巨大乾裂構造). 여섯번째가 술 생각나게 하는 석탑리(石塔里) 누룩 바위(麴巖), 일곱번째는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삼베를 짰던 치선리(致仙里) 베틀 바위(機巖)다. 여덟번째는 걸 섶 낭떠러지(河蝕絶壁)에 지구지질 역사책을 쌓아놓은 점곡퇴적층(點谷堆積層). 아홉번째는 금성산 칼데라 호수에 모여들었던 제오리(堤梧里) 공룡들의 발자국, 열번째가 아기공룡 둘리가 천진난만하게 찍어놓은 만천리(晩川里) 공룡발자국이다. 열한번째는 화산 뻥튀기에 날렸던 팝콘(pop-corn)이 거북이 모양으로 쌓인 구산동(龜山洞) 응회암(凝灰巖), 마지막으로 지구역사를 측정하는 '고대 미생물학 시계' 스트로마톨라이트(藍細菌)를 살펴본다.

지질공원은 지구에 살아가는 인류와 동·식물의 터전이 되는 지질·경관(지형)에 핵심명소다. 또한 지역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생태환경, 문화인류, 향토역사, 고고학뿐만 아니라 지질학을 모두 배울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지속 가능한 공존을 추구한다. 의성국가지질공원 명소 12곳은 의성군을 상징하는 노란 12개 꽃망울의 산수유화라 할 수 있다.
 

경북팔승지일 비석 (1)
빙계계곡이 1933년 10월4일 “경북팔승지의 제일(慶北八勝地之一)”로 선정돼 큰 빗돌(碑石)이 세워졌다.

중국까지 전해진 그 유명한 빙계계곡은 의성군 춘산면(義城郡 春山面)에 있다. 빙계계곡은 빙혈(氷穴)과 풍혈(風穴)이 있어 빙산(氷山)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춘산면의 옛이름은 빙산면(氷山面)이다. 1855(哲宗 7)년에 사실상 빙산은 “추운 겨울에도 김이 모락모락 봄기운을 풍긴다(雪寒溫風, 此溪吹春)”고 해서 춘산면으로 고쳤다.

춘산면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하천이 쌍계천(雙溪川)이다. 춘산의 봄은 여기 쌍계천에서 시작된다. 쌍계천은 봄 기운이 타고 오는 춘산의 길목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쌍계천 방죽에 버들강아지를 따먹으며 노래를 불렀다. “봄 아가씨는 멋쟁이, 머리에다 꽃 꽂고, 덩실덩실 춤추며, 나비 등에 업혀 온다.” 고교시절의 추억도 묻어있다. 대구 시내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아지랑이 피는 봄날, 쌍계천변을 걸으며 남몰래 배웠던 팝송 ‘로키산맥에 봄이 오면(When it’s springtime in the Rockies)’를 부르곤했다.

쌍계천(雙溪川) 미르(水龍)가 ‘하늘의 도끼(神斧, Divine Ax)’를 훔쳐 골골이 하식절벽(河蝕絶壁)을 깎았다. 한때 이 일대에는 마그마가 마구 쏟아져 내렸다. 누군가 유황냄새 자욱하도록 풀무질해댔다. 계속하도록 풀무질했던 대장장이들을 얼음골(氷溪)에다가 그대로 가둬놓았다. 지금도 그들은 삼복더위를 찬 바람으로 녹였다. 엄동설한에는 김 모락모락 풀무질해 춘산에다가 봄 입김을 토해낸다. 얼음이 나오는 빙혈의 위치는 춘산면 빙계리 산70번지다. 그곳 기온은 영하 0.3℃로, 외부 기온보다 10℃ 이상 낮다. 연중 최고온도는 5℃이하다. 국내 최장 결빙기간(3월 초~ 10월 초)을 가진다. 찬바람이 불어나오는 풍혈도 있다. 그곳은 천연기념물 지정목록에 “의성빙계리 얼음골(義城 氷溪里氷溪)”로 등록되었다.

외부와 너덜간 공기교환 그림
외부와 너덜간 공기교환 그림. 너덜에서 만들어지는 공기흐름 방향은 계절마다 달라진다.너덜에 저장된 기온과 외부 기온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온현상이 나타나는 건 ‘너덜(崖錐)’에 의해서다. 저온현상의 발생원리는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다. 최근엔 공기 순환에 의한 열 교환으로 본다. 즉 너덜에서 만들어지는 공기 흐름 방향은 계절마다 달라진다. 그런데 너덜이 저장하고 있는 기온과 외부 기온이 교환되기 때문이다.

너덜은 무수한 결빙과 해빙 과정에 바위틈(화강암류)에 진흙이 스며들고 진흙의 이류현상(절리에 의한 분리 혹은 분쇄)으로 바위가 갈라진 돌무더기들이 아래쪽으로 흘러내린 돌 강(stone river)이다. 한자어로는 애추(崖錐)라고 하나 우리말로는 ‘너덜’, ‘너덜겅’, ‘너덜지대’, ‘돌서들’, ‘돌서령’, ‘돌무지’, ‘돌 거렁’ 등이 있다. 경상도에서는 ‘너덜강’, ‘너더랑’, ‘너더렁’, 전라도에서 ‘방석바구’ 등이라고 한다.
 

바람구멍(풍혈) (3)
빙계계곡의 바람구멍 풍혈. 풍혈에는 평균 5도가 높은 바람이 석혈(石穴)에서 불어 나온다.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다.

빙산풍혈빙혈(氷山風穴氷穴)이 있는 이곳은 삼한시대(三韓時代)부터 조선말까지 국내 제일의 영산성지(靈山聖地)였다.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覺), 의성풍화안(義城風化案, 義城守令使令臺帳), 의성현지(義城縣誌), 오주연문(五洲衍文),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 등에 소개되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인조22(1644)년 의성현령(義城縣令)인 종형 후보(厚甫)와 같이 이곳에 와서 한여름을 보낸 허목(許穆, 1595~1682)의 ‘빙산기(氷山記)’가 가장 귀중한 기록이다.

경기도 연천(漣川) 출신 허목은 1617년경 이곳(빙계)에 들려 213자의 ‘빙산기(氷山記)’를 남겼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빙계에 관한 가장 소상한 기록이다. 생각도 못 했던 명나라 왕사의(王思義)가 쓴 ‘속삼재도회(續三才圖會)’에서 “의성현 빙산(義城縣 氷山)”을 소개해 중국에까지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빙혈에는 추하(秋夏)에는 평균 영하 4도, 추동에는 평균 영상 2도의 찬 바람이, 풍혈에는 이보다 평균 5도가 높은 바람이 석혈(石穴)에서 불어 나온다.

풍혈은 세계 여러 곳에 많이 흩어져있고, 국내에도 여러 곳에 있으나 빙혈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외에 봉화, 영덕, 밀양, 제천, 진안 등에 있다. 그러나 모두 춘하(春夏)의 평균온도는 영도(零度) 내에 불과하다. 빙혈의 신비는 아직 해명되지 아니 하였으나 그 원리는 기체를 세공(細孔)으로 분출시키면 온도가 변)하는 ‘줄-톰슨효과(Joule-Thomson effect)’로 인(因)한 현상(現狀)으로 보고 있다.

춘산에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나요. 한 초등학생의 질문에 답하고자 춘산면 효선리(孝仙里)와 사미리(思美里) 일대 청동기시대 고인돌을 답사했다. 2023년 4월28일, 사미리 745의 1번지 오므돌 1기와 효선리 150번지 칠성바위 3기를 실측했다. 그 가운데 칠성바위(七星巖)에다가 청동기농경시대 농사책력(農事冊曆)으로 사용하던 남두육성(南斗六星, Milk Dipper) 별자리를 누군가 새겨놓았다. 암각연도(巖刻年度)를 추정하고자 GPS 측정결과는 북위36도14분42초였다. 지금부터 3천 년 전에 서울에서 보였던 남십자성이 지금은 제주도 이어도에서 보이는 성좌세차(星座歲差, horoscope precession)를 탄성추계(彈性推計)했다. 추계결과는 지금부터 2,279±5년이었다. 바꿔말하면 BC 255년 이전에 이미 이곳에서 선인들이 농사를 짓고 살면서 별자리를 새겼다.

이곳의 사과는 당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춘산사과(春山沙果)는 BC 2,000년 경 천산산맥(天山山脈)에서 중국을 통해 한반도 의성군 춘산 땅에 전해졌고 이곳에 심겨졌다. 산야에 자생했던 사과를 옛날에는 머자, 임금(林檎), 임내(林奈)라고 했다. 고려 일연(一然)스님이 1279년에 저술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처용가(處容歌)’가 있다. 고려시대 작가 미상의 ‘고려 처용가(高麗處容歌)’에서 “머자 외야자 녹리야(오늘날, 사과랑 오얏이랑 배일랑)”라는 구절이 있다. 조선 태종(太宗, 재위 1400~ 1418) 때 태종 자신이 ‘임금(王)’인데 과일을 ‘임금(林檎)’이라면서 바사삭먹는 걸 막고자 ‘능금(陵檎)’으로 부르게 했다. 1527년 최세진(崔世珍, 1473~ 1543)의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사과(사果) 금(檎)’이라고 했다. 인조(仁祖, 재위 1623~ 1649)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麟坪大君, 1623~1658)이 1640년 중국에서 가져온 뒤 핑꾸어(萍果)라고 했다. 그 뒤 1884년경 미국 선교사(宣敎師)들이 관상용으로 키웠다가 모래밭 과수원에서 재배함으로써 ‘모래밭 과일(沙果)’이 되었다. 춘산사과(春山沙果)는 사질양토에다가 밤낮의 기온 차이가 뚜렷한 최적 자연환경에 자랐기에 다른 지역보다 더욱 맛이 좋다. 특히 당도에 있어 일반적인 과일은 10~ 15 브릭스(Brix)인데도 춘산사과는 대략 17~ 19 브릭스(Brix) 정도를 유지한 최고 고품질이다.

“춘산에 눈 녹인 바람(春山雪解風)”이란 고려 충선왕 때 우탁(禹倬, 1263~ 1343)의 ‘탄로가(嘆老歌)’를 고등학교 고문(古文)에서 배웠다. 즉 “춘산(春山)에 눈 녹인 바람 문득 불고 간데없다. 잠시동안 빌려다가 머리위에 불게 하여. 귀밑에 해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 라는 구절이다. 춘산(春山)이란 극동아시아의 지명뿐만 아니라 만주지방(청나라 때 유명한 정치인)의 성(姓, surname)이다. 특히 1542(大永4) 년경 춘산(春山, ハルヤマ)이 일본인의 성씨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현재 5위 수준(level 5)의 성씨로 10,900명(群馬縣, 埼玉縣, 東京都)이나 일본에 살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관향(貫鄕)은 강원도 춘천(春川)이다. 사실은 옛 조문국(召文國)과의 관계를 추적한다면 의성군(義城郡) 춘산(春山)일 확률이 100%다. 참, 여기서 조문국(召文國)의 한자표기가 잘못된 거라고 “조문국(趙文國)”으로 표기하나 이건 바로 “무식의 소치다”. 오늘날 “부를 소(召)”는 신라국자(新羅國字)에서는 “대추 조(棗)” 로 사용했다. 신라 이두(吏讀)는 물론이고 오늘날도 한약 처방전(處方箋)에 “생강 3쪽과 대추(大棗) 2쪽(干三召二, 3 slices of ginger and 2 slices of jujube)”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한자 “召文國”은 ‘조문국’으로 읽어야 한다. 왜 ‘소(召)’자를 꼭 써야 하는 이유는 주나라 귀족(周之支族) ‘소공(召公)’의 후손들이 조문국(召文國)을 건국했다는데 연유했다.
 

경북팔승지 중 제일

조선말까지 국내 제일 영산성지
2011년 국가지정문화재 선정
용들이 우글거렸다는 ‘용추’ 등

얼음골 8대 경관 볼거리 가득 

빙계서원(氷溪書院) 마을 앞 계곡 큰 바위에 이여송(李如松)이 썼다는 ‘빙계동(氷溪洞)’글씨가 있다. 오늘날 빙계서원(氷溪書院) 건너편(옛 산에서 옮겼음)에 1933년 10월4일 빙계계곡이 “경북팔승지에서제일(慶北八勝地之一)”로 선정되어 큰 빗돌(碑石)이 세워졌다. 2011년 1월13일 너덜겅으로 형성된 빙계리 일대가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얼음골 8대 경관(氷溪八景)’은 제1경 빙혈(氷穴), 제2경 풍혈(風穴), 제3경 인암(仁岩), 제4경 의각(義閣)이다. 제5경 수대(水대, water-mill), 제6경 석탑(石塔, 보물), 제7경 불정(佛頂)이다. 마지막으로 제8경 용추(龍湫 혹은 龍沼)가 있다. 이들은 주변에 도리도리 있어 걸어서도 1시간이면 넉넉히 들러 볼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들 섶 야영장에서 며칠이고 쉬어감이 좋다.

이곳까지 어려운 걸음 하셨으니. 얼음골(氷溪溪谷, ice valley) 8대 경관을 중심으로 주변을 살펴보자. 우선 얼음골의 들 섶에 용(龍)들이 우글거렸다는 커다란 물덤벙 제8경 용추(龍湫 혹은 龍沼)가 있다. 개울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밑 시냇물이 굽이치는 곳에 깊은 웅덩이가 있었다는데 현재 거의 메워졌다. 부처와 싸운 용의 머리가 부딪쳐 파인 데라 한다.

따라서 그곳으로 흘려 들어오는 개울을 용천(龍川)이라고 했다. 용천의 물줄기는 전설상 금성산 화룡(火龍)과 빙산사(氷山寺, 혹은 氷溪寺)의 부처와 싸움에 빌미가 되었다.

빙계서원에서 얼음골로 올라오는 거랑섶(川邊)에 용천 물길을 이용해 곡식을 찧던 물레방아가 있었다. 그런데 소리 없이 사라졌다가 최근 작은 물레방아모형이 세워졌다. 용천(거랑)을 만드는데 이해당사자(부처)의 허락도 없이 금성산 화룡이 마음대로 했다. 이에 빙산사(氷山寺) 부처가 크게 격분했다. 이때 금성산 화룡이 날카로운 발톱(혹은 쇠스랑)으로 대노하는 부처님의 정수리(佛頂)를 내리 쪼아 무너뜨렸다. 그리고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오늘날 옛 빙산사지(氷山寺址) 뒷산, 가운데가 잘록한 곳을 부처막(佛頂) 혹은 불정봉(佛頂峰) 이라 한다.

옛 빙산사(氷山寺)는 양산 통도사(梁山 通度寺)와 같은때 창건되었다. 고려·조선시대 자복사(資福寺)로 역할을 했다. 오늘날 옛 빙산사(氷山寺 일명 氷溪寺)는 옛터에 5층석탑만 홀로 남아있다. 보너스로 얘기하면 용천(龍川)을 사이에 두고 불정봉(佛頂峰)과 마주 보고 있는 산이 흡사 뱀이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는 모양에 배미산(蛇山, 以法天龍, 得化蛇山)이라 한다. 이어 1556(明宗 11)년 얼음골 들머리에 창건했던 장천서원(長川書院)가 있었다.

임진왜란(1592년7월27일) 때 불탄 빙산사 옛터로 장천서원(長川書院)을 이전했다가 1871년 대원군 때 철폐되었다. 이후 1985년 8월15일 현재 위치에 장천서원의 후신으로 빙계서원(氷溪書院)이 건립되었다. 옛 빙산사 터 아래에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은보(尹殷甫) 의사(義士)를 기리는 의사각(義士閣) 혹은 의각(義閣)은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다. 빙산사지(氷山寺址) 옆에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둘째 따님 요석공주(瑤石公主)와 원효대사(元曉大師)의 사랑 이야기 해설판 있다. 여기서 10m 내외에 옛 빙계서원(氷溪書院, 오늘날 氷山寺址) 터에 폭 1.2m, 높이(혹은 길이) 2.4m 정도의 넓은 바위가 있다. 이 바위 정면에 햇빛으로 정오(正午)에 한문 ‘어질 인(仁)자’모양 그림자가 생긴다. 그래서 ‘어진 바위(仁巖)’라고 한다.

 

글 = 이대영 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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